여전히 방치된 해외환자 이송… 환자 목숨 다루는 게 ‘개인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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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10.27. 오전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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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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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환자이송 실태

문의 느는데 제도 마련 소극적
결국 개인이 수천만원 부담
문의 2022년 3811건, 1년뒤 4135건
게티이미지뱅크

이성영(54)씨는 지난 7월 31일 오후 1시 일본 여행 중에 후쿠오카 시내 관광버스 안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규슈중앙병원을 거쳐 규슈대학병원으로 이송돼 응급 수술을 받았다. 현지 의료진은 이씨의 생존율을 20% 미만으로 판단했다.

이씨의 아들 기훈(29)씨는 25일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망망대해에 갑작스럽게 던져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열흘 만에 심폐 보조 장치를 제거한 이씨는 희미한 의식을 찾았지만 극도로 불안한 상태였다. 보호자들에게 “가족이 나를 버리고 갔다. 나를 두고 가지 말라”고 호소하는 등 섬망 증상까지 보였다.

기훈씨는 현지 영사관에 이송 및 전원(轉院) 방법을 문의했다. 하지만 ‘해외환자이송 업체를 소개하는 행위는 알선이 될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기훈씨는 사설 업체 3곳을 찾아 문의했지만 결국 직접 환자 이송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업체에서 요구하는 최소 3000만원의 비용이 부담스러운 데다 안전하게 이송을 맡길 수 있는 업체인지도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기훈씨는 “해외환자이송업이라는 업종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며 “환자 목숨을 다루는 게 합법도 불법도 아닌 상태”라고 했다.

기훈씨는 규슈대학병원 의료진의 항공 이송 동의를 받은 뒤 국내 전원에 동행할 의료진을 직접 섭외했다. 현지 의료진이 작성한 ‘항공 운송에 관한 의사 소견서(Medif)’를 항공사에 제출한 뒤 환자용 침대 설치에 필요한 비행기 좌석 6개도 예약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와 간호사 등 의료진 2명이 비행 2시간 동안 그의 아버지 상태를 살폈다. 기훈씨 아버지는 사고 17일 만인 지난 8월 17일에야 국내 병원으로 이송됐다. 같은 달 31일 새벽 급성 패혈증으로 숨졌다.

해외 환자 이송은 개인의 몫
게티이미지뱅크

이씨와 같이 해외의 한국 환자를 국내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이송 자체가 지연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8월 23일 노르웨이 여행 중 심정지로 쓰러진 60대 의사는 현지 병원에서 응급 처치를 받은 뒤 국내 이송을 요청했지만 현지 의료진에게서 ‘항공전문의사’ 없이 이송은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씨 국내 이송 과정을 도운 김호중 순천향대 부천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현재 해외 환자 이송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다. 해외 중증 응급 환자일수록 더욱 취약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해외 환자 이송이 원활하지 않은 배경에는 정부 지원뿐 아니라 관련 제도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 앞서 정부는 해외 응급 환자 문제와 관련해 부처별로 역할 정리를 한 바 있다. 문재인정부는 2021년 6월 심의 확정한 ‘해외 우리국민 환자 이송 보호체계 개선 방안’에서 ‘민간 이송지원 업체 관리’를 보건복지부 소관에 두고 근거 규정 신설을 예고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관련 제도 마련에 소극적이다. 해외 환자 이송에 대한 수요·공급이 많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대신 ‘해외 환자이송 업체 명단’을 제작한 뒤 외교부를 통해 해외 응급 환자·보호자에게 제공하기로 했다. 이 같은 개선 방안이 확정된 지 3년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업체 명단은 만들어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최근 외교부와 협의하는 과정에 있고, (이송 업체에 대한) 정보 제공 선에서 필요한 항목을 조사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이송 문의 쏟아지는데

해외 환자 이송 건수는 한 해 최소 수백 건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정확한 집계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소방청의 ‘재외국민 119응급 의료상담 서비스’ 운영 실적에 따르면 올해 상담 건수는 6월 기준 2488건이었다. 2022년 3811건에서 2023년 4135건으로 늘었다.


상담 통계는 도움을 요청한 사람이 있는 장소를 기준으로 지상, 선박, 비행기 등으로 나뉜다. 올해 상담 건수 가운데 1147건은 외국 지상에서 119에 상담을 요청한 사례였다. 해상 선박에서 도움을 요청한 건 1339건, 비행기 등에서 119에 연락한 것도 2건 있었다.


특히 외국 지상에서 상담을 요청한 건 가운데 61.6%(706건)가 ‘응급의학과’ 상담 요청이었다. 해외 현지에서 발생한 응급 환자에 관해 도움을 구한 것이다. 해외 응급 환자 이송을 지원하는 대한응급의학회 재외국민환자이송연구회에도 매달 최소 10건 이상의 상담·지원 요청이 들어온다.

사설 업체를 이용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해외 환자를 국내로 이송하는 일을 하는 사설 해외 환자이송 업체가 있지만 이송 비용이 제각각인 데다 안전한 이송을 보장받기도 쉽지 않다. 이들은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지 않는다. 현재 에어앰뷸런스(환자이송 전용 비행기) 등을 운용하는 ‘해외환자이송업’은 허가·신고가 필요하지 않은 자유업종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에서 환자를 이송하는 사설 구급차 업체가 응급의료법상 허가제로 운영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송 과정과 절차에 필요한 의료 장비, 의료진 등에 대한 세부적인 법적 기준 자체도 마련돼 있지 않다.

정부는 ‘해외환자이송업’ 제도화를 위한 연구 용역을 진행했다. 국민일보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해외환자이송지원업 제도화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진은 ‘해외 환자 발생 및 이송 현황’을 파악할 데이터가 없는 점과 해외 환자이송 업체 관리체계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2022년 5월 작성된 이 보고서는 해외환자이송업 ‘인증 기준’ ‘관리 주체’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관련 제도 개선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유태규 남서울대 복지융합과 교수는 “(해외환자이송업이) 개인사업자 형태로 운영되다 보니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됐다. 환자 이송의 질 관리가 안 되고 정보 제공에 대한 신용도 낮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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