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100여명’ 그 남자 체포에… 익명 정자기증 재조명

입력
기사원문
강창욱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텔레그램 창업자 “고품질 정자 기증, 내 의무”
“내 자식들이 서로 찾을 수 있게 DNA 공개”
태어나 보니 이복형제자매 수백명 “혼란스러워”
텔레그램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파벨 두로프. AFP연합뉴스

텔레그램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파벨 두로프가 프랑스에서 긴급 체포되면서 그가 정자 기증으로 100명 넘는 자녀를 둔 사실이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익명의 정자 기증으로 태어난 이들은 정체성 혼란과 함께 의도치 않은 근친상간 등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두로프는 지난달 텔레그램에 올린 게시물에서 자신의 정자가 12개국에서 100쌍 이상 부부가 아이를 갖는 데 도움을 줬다고 주장했다. 한 시험관 시술 병원은 여전히 자신의 정자를 얼려 익명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보관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두로프는 “물론 위험은 있지만 기증자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며 “건강한 정자 부족은 전 세계적으로 점점 더 심각한 문제가 됐고 그걸 완화하는 데 내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30대 독신 억만장자 “고품질 정자 기증, 내 의무”
만 39세 억만장자 두로프는 결혼한 적이 없고 혼자 사는 것을 선호한다고 소개한 바 있다. 그는 그동안 유럽 등 텔레그램이 감시받는 지역을 피하며 각지에서 생활해왔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현재 프랑스, 아랍에미리트(UAE)와 카리브해 작은 섬나라 세인트키츠 네비스의 국적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생활을 좀처럼 공개하지 않는 두로프가 전 세계에 많은 자녀를 둔 정자 기증자라고 스스로 밝힌 것은 어느 정도 기행처럼 받아들여졌다. 당시 그는 더 많은 부부가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책임감 때문에 정자를 기증했다고 설명했다.

두로프는 “시술 클리닉 원장은 ‘고품질 기증자의 재료’가 부족하니 더 많은 정자를 기증해 더 많은 부부를 익명으로 돕는 것이 나(두로프)의 시민적 의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고품질 기증자의 재료란 우수한 유전자를 가졌다고 여겨지는 이들의 정자를 의미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자신의 정자로 태어난 생물학적 자녀들이 서로를 더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자기 DNA를 ‘오픈 소스’로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두로프는 “나는 정자 기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없애고 더 많은 건강한 남성이 기증에 참여하도록 장려해 자녀를 갖기 어려운 가족이 더 많은 선택권을 누리도록 돕고 싶다”며 “관습에 도전하라. 규범을 재정의하라”고 촉구했다.

정자기증으로 태어난 딸, 엄마는 증거를 불태웠다
문제는 정자 기증자나 아이를 낳고 싶은 이들과 달리 정자 기증으로 태어난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벌어진 일로 평생 혼란과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정자 기증으로 태어난 미국 뉴욕 24세 여성 재클린 프로솔로네와 이복자매들. USA투데이 보도

14년 동안 정자 기증으로 태어난 사람들을 상담해 심리치료사 자나 러프노우는 USA투데이 인터뷰에서 “가족사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충격을 해소해야 하는 동시에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불안과도 맞서야 한다”며 정체성 위기를 설명했다.

정자 기증으로 태어난 미국 뉴욕 24세 여성 재클린 프로솔로네는 “우리가 겪고 있는 일을 이해하는 사람은 말 그대로 ‘겪고 있는 사람들’뿐”이라며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가 겪고 있는 것과 똑같은 일을 겪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무섭다”고 USA투데이에 말했다.

그는 2021년 1월 유전자 검사로 자신도 몰랐던 최소 200명의 이복 형제자매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모두 한 남자가 기증한 정자로 태어난 아이들이었다. 프로솔로네는 그전까지 자신이 정자 기증으로 태어난 줄도 몰랐다. 이름도 모르는 그 남성의 정자는 여전히 판매되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프로솔로네로부터 확인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사실을 인정하며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는 ‘진실’이 드러나는 걸 막으려고 기증자와 관련된 서류를 모두 태워버렸다고 딸에게 털어놨다.

근친상간 걱정… “내가 ‘아빠 아이’ 가질지도”
같은 남자의 정자로 태어나 프로솔로네의 이복자매가 된 제이미 르로즈(23)는 근친상간에 대한 두려움이 연애 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호소했다. 그는 또래 남성을 보면 거부감이 들어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상대를 주로 만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사귄 남자는 40세였다고 한다.

르로즈는 USA투데이 인터뷰에서 “내게는 아이를 가지기 위해 기증 정자를 이용해야 하는 게이 형제자매가 꽤 있다”며 “만약 그들 중 한 명이 아무것도 모른 채 우리 아빠(정자 기증자)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차라리 죽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USA투데이는 “미국 정자은행 대부분은 형제자매에 대한 기록을 보관하거나 특정 기증자를 이용할 수 있는 가족의 수를 제한할 법적 의무가 없다”며 “그 결과 정자 기증으로 태어난 형제자매가 많은 이들은 종종 이복 형제자매와 우연히 아이를 가질까 봐 두려워한다”고 전했다. 자신이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하려는 경우에는 친아버지의 아이를 가질까 봐 염려하기도 한다.

합병증과 유전병에 대한 우려도 있다. 프로솔로네와 이복 형제자매 대부분이 낭종(물혹)과 부정맥, 심한 습진, 우울증, 다낭성 난소 증후군, 위장병, 강박증, 만성 감염 등 다양한 질환과 증상을 겼었다고 USA투데이는 설명했다. 이런 건강 문제는 정자 기증자의 정보에 나와 있지 않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