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정치적 결정”… 佛 “수사일 뿐”
재산 20조, 자녀 100명 자랑하기도
텔레그램 최고경영자(CEO) 파벨 두로프(39)는 한때 러시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비판적인 반체제 인사로 여겨졌다. 전 세계 10억명의 사용자를 지닌 메신저 앱 텔레그램의 성공도 이 같은 그의 평판이 크게 작용했다. 2011년 러시아 정보 당국은 두로프에게 “반체제 인사들의 텔레그램 계정을 폐쇄하라”고 압박했다. 그러자 두로프는 자신의 프로필에 후드티를 입은 강아지 사진과 함께 “이게 바로 검열 압박에 대한 내 대답”이라는 조롱 메시지를 올렸다.
그랬던 두로프가 최근 프랑스에서 범죄 관련 불법 콘텐츠 방치 혐의로 체포되자 러시아 정부가 나서서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26일(현지시간) “푸틴에게 두로프는 13년 사이에 ‘반드시 손봐야 할 인사’에서 ‘서방의 손아귀에서 빼내야 하는 VIP’로 변신했다”고 보도했다. 국립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을 졸업한 두로프는 2000년대 후반 ‘표현의 무제한 자유’를 표방하며 텔레그램을 만들었다. 어떤 추적에도 뚫리지 않는 보안성과 암호화를 앞세워 텔레그램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러시아에 머무는 게 위험하다고 여긴 두로프는 2014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로 주거처를 옮겼다. 그런데 이때부터 되레 푸틴 정부로부터 환영받는 인사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텔레그램이 러시아 정보 당국의 비밀통신 수단이 돼도 이를 막지 않았고, 러시아 극우 집단이 텔레그램에 혐오 발언을 쏟아내도 방치했기 때문이다. 지금 텔레그램은 마약·무기 거래, 청소년 포르노 유포, 테러리스트 집결 등 각종 불법이 판치는 곳이 돼 버렸다.
두로프는 매달 주거지를 옮기고 술·고기·커피를 일절 입에 대지 않으며, 재산이 155억 달러(20조66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12개국에서 정자를 기증해 100명이 넘는 아이들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된 것을 자랑하기도 했으며, 2012년엔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무실에서 고액권 지폐를 길거리에 날리는 기행을 벌였다. 또 최근 인스타그램에 상체 노출 사진을 올리며 “러시아 남자라면 푸틴처럼 셔츠를 벗고 멋진 근육을 보여줄 줄 알아야 한다”는 글을 남겼다. 지난 4월 보수 성향 미국 방송인 터커 칼슨과의 인터뷰에선 “미국 정부가 정보원들을 텔레그램에 잠입시켜 반미 인사들을 감시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정치적 동기에서 서방의 두로프 체포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수사의 일환일 뿐 정치적 결정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러시아는 두로프 체포로 사회 전체가 술렁이는 모습이다. 텔레그램이 정부와 군의 주요 통신 수단인 데다 국민 2명 중 1명꼴로 사용하는 ‘국민 메신저’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당국은 두로프가 수사 과정에서 텔레그램의 암호화 정보를 푸는 방법을 털어놓을 수 있다고 보고 주요 당국자들의 휴대전화에서 텔레그램을 삭제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