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지배구조 개편 발표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이 두산그룹의 관련 계열사 주식을 팔아 치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산은 지난 11일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밥캣을 인적분할한 뒤 두산로보틱스 100% 자회사로 두는 내용을 담은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두산은 사업 시너지 극대화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투자자 상당수는 동의하지 않고 주식을 처분했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두산이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하고 설명회를 개최한 12일부터 22일까지 7거래일 동안 두산밥캣 주식 약 1942억원,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 지분 약 422억원 총 2364억원어치 주식을 팔아 치운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두산밥캣은 해당 기간 SK하이닉스(-9447억원)와 삼성전자(-5090억원)에 이어 외국인 투자자 순매도 3위에 올랐다.
외국인 매도세가 이어지면서 두산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의 이유로 내세운 시너지와 주주가치 제고가 외국인 투자자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계 펀드 테톤캐피탈의 숀 브라운 이사는 22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마련한 세미나에서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날강도 짓’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날 브라운 이사는 “너무 격분하고 실망해서 홧김에 지분을 대부분 장내 매도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두산의 지배구조 개편안이 지배주주인 두산에 유리하도록 설계돼 있어 소액주주들의 피해가 크다고 지적한다. 미래 성장 잠재력이 반영되긴 했지만 고평가됐다고 평가받는 적자기업 두산로보틱스와 지난해 매출액 9조7000억원, 영업이익 1조3000억원의 알짜기업 두산밥캣의 기업의 가치를 비슷하다고 보는 것이 문제라는 설명이다.
소액주주들을 중심으로 문제제기가 잇따르자 22일 김병환 금융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위원회에서도 이 문제가 다뤄졌다. 김 후보자는 관련 질의에 “제도적으로 우리가 고칠 부분이 있는지에 대해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외국인은 그룹 ‘캐시카우’ 두산밥캣을 품게 돼 지배구조 개편의 수혜를 볼 것으로 전망되는 두산로보틱스도 154억원어치(12~22일) 내다 팔았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펀드 매니저는 “이번 논란으로 두산로보틱스가 고평가됐다는 것이 시장에서 부각됐다. 앞으로도 현 수준의 주가가 유지될 것이냐에 대한 의구심이 작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가도 내리막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지배구조 개편안이 발표된 11일 이후 이날까지 9거래일 동안 9.01% 하락했다. 지난 17일 24조원 규모 체코 원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라는 호재가 있었지만, 지배구조 개편으로 인한 우려로 기존 주주들의 매도행렬이 거셌던 것으로 풀이된다. 같은 기간 두산밥캣도 6.92% 하락했다.
두산은 주주 달래기에 나섰다. 두산밥캣의 기존 보유 자사주와 합병 반대 주주의 지분을 사들여 취득하게 될 주식을 연내 소각할 계획이다. 두산밥캣 자사주가 소각되면 향후 배정될 두산로보틱스 발행 물량이 줄어 주가 부양에 도움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