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퇴치 골든타임 놓치면 ‘약’도 없다

입력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대검 마약조직범죄기획관의 해법은

유통 마약 95% 해외서 유입
n번방처럼 위장 수사 필요
게티이미지뱅크

마약이 대한민국 일상 곳곳에 침투하고 있다. 2020~2024년 전국 17곳 시·도 하수처리장 34곳에서 한 곳도 빠짐없이 필로폰, 엑스터시, 코카인 등이 검출됐다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조사 결과는 마약 오염국의 실상을 보여준다.

올해 마약사범 숫자가 사상 처음 3만명을 기록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올해 1~5월 마약사범은 897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7378명 대비 21.7% 늘었다.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에 더는 마약 안전지대는 없으며 지금이 마약 퇴치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한다.

국민일보는 지난 11일 신준호 대검찰청 마약조직범죄기획관(차장검사)을 만나 한국이 마약 오염국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법을 들었다. 신 기획관은 “아직 마약 문제에 ‘우리 집, 내 새끼’만 아니면 된다’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곧 우리 집 앞에 마약이 배달되고, ‘내 새끼’가 (마약을) 하는 단계가 온다고 본다”며 “그렇게 되는 것을 막는 게 검찰의 최대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마약만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한 국민적 의지와 경각심이 필요하다”며 위장 잠입 수사 범위 확대, 유통사범 전자발찌 부착 등 강력한 정책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신준호 대검 마약조직범죄기획관이 지난 11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사무실에서 진행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마약범죄의 심각성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무엇보다 마약만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한 국민적 의지와 경각심이 필요하다”면서 강력한 수사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현규 기자

신 기획관은 검찰 내 대표적 ‘강력통’ 검사로 16년간 조폭·마약 범죄 등을 전문적으로 수사해 왔다. 지난해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장 근무 당시 브리핑에서 ‘MZ조폭’의 단합대회 영상을 보며 분노하는 모습으로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인천공항서 매일 마약 1㎏ 적발돼”

현재 마약범죄 적발 건수와 규모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증했다. 신 기획관은 “평검사 시절 10~20g 정도 사건이 많았고, ㎏급 사건은 무용담도 됐는데 지금은 ㎏급 사건이 기본”이라며 “인천공항에서 매일 적발되는 마약이 1㎏ 정도인데 놓치는 양은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다”고 말했다.

10대와 여성 마약사범도 급증세다. 대검찰청 ‘2023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마약사범은 2만7611명으로, 처음 2만명을 넘겼다. 이 중 10대는 1477명으로 전년(481명) 대비 3배 이상 늘었다. 여성은 지난해 8910명이 검거돼 전년보다 약 79% 늘었다. 신 기획관은 “육체적·정신적으로 미성숙한 10대가 마약의 위험성을 모르는 채 마약사범이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한 번 마약을 접하면 이후 치료나 재활이 말처럼 쉽지 않다. 애초 발을 못 붙이도록 정부 차원에서 강력한 예방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장수사 확대·전자발찌 부착 도입해야

국내 유통되는 마약의 95% 이상은 해외에서 들어온다. 정부 당국은 밀수 차단에 주력하고 있지만 해외 직구 등을 통한 국내 반입을 전부 차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현재 국내에서 마약은 텔레그램 대화방 등을 통해 손쉽게 유통된다. 신 기획관은 이 같은 플랫폼 구조를 깨기 위해 마약 수사에 ‘위장잠입 수사’를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사방’ 조주빈 사건 이후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서는 신분 위장 수사가 가능하도록 법이 개정됐지만 아직 마약 수사에선 허용되지 않는다. 신 기획관은 “실제 위장 수사를 하면 마약상이 신분증을 요구하는데, 현재로선 위장 신분을 제시할 수 없고 재판에서 증거능력도 인정되지 않는다”며 “어떻게든 제도화해 마약사범들 놀이터를 망가뜨려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마약 수사의 강력한 무기인 CCTV 활용도 확대할 방침이다. 지난 2일 노만석 대검 마약조직범죄부장은 ‘서울시 CCTV 안전센터’와 마약범죄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지난해 검찰은 145건 CCTV 영상을 서울시에서 제공받아 16명을 검거했다. 신 기획관은 “백팩을 메고 두리번거리다 마약을 숨기는 등 특정한 패턴을 검찰이 안전센터에 교육해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서울시와 함께 CCTV에 인공지능(AI)을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AI가 학습한 특정 이상 행동을 CCTV가 자동 식별하는 구조다.

지난 5년간 마약사범 재범 비율은 30% 안팎에서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신 기획관은 “성범죄 등에 비춰볼 때 재범률을 획기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건 전자발찌”라며 “이른바 ‘드라퍼(운반책)’ 등 유통 사범에게 적용해 발을 묶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권 문제 등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국민을 위해 반드시 도입돼야 하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마약범죄, 더는 관용 어려워”

지난해 재판에 넘겨져 집행유예가 선고된 마약사범은 2446명으로 전체의 40%였다. 신 기획관은 마약사범의 양형에 대해 “무조건 처벌이 능사는 아니지만 더 이상 관용을 베풀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마약사범에 대한 강화된 양형 기준을 지난 1일부터 시행하고 있다”며 “실제 실형 선고 비율이 높아질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신 기획관은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국민이 경각심을 갖고 검찰 등 당국 대응에 힘을 실어 달라고 요청했다. 정치권 등에서 추진 중인 검찰청 폐지 등 법안에는 “가장 우려되는 건 수사기관을 쪼개 범죄 대응 역량이 약화되는 것”이라며 “지금 대학교 수준까지 공부해 놓은 실력이 있는데 갑자기 초등학교 6학년으로 돌아가 새로 공부하자는 얘기”라고 반박했다.

신 기획관은 “독일 등 유럽은 이미 마약이 너무 많이 유입돼 하나의 상수가 됐다”며 “우리는 아직 그런 단계는 아니라 이 기조로 계속 민관이 힘을 모으면 K마약방역이 효과를 볼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