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우크라 전쟁 결정은 합리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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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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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국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존 미어샤이머·서배스천 로사토 지음, 권지현 옮김
서해문집, 400쪽, 2만4000원
2022년 8월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테러리스트’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국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이 ‘합리적’이라는 도발적인 주장을 한다. AP뉴시스

책은 다소 도발적인 주장으로 시작한다. 3년째 이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선택은 ‘합리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서방의 전문가와 언론들은 푸틴을 ‘비이성적인 독재자’ ‘힘에 굶주린 과대망상증 환자’ 등으로 표현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을 뒤집는 주장이다. 책은 푸틴과 러시아의 결정이 합리적이라는 주장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고 증명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미국 외교의 거대한 환상’ 등을 쓴 국제정치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와 그의 제자 로사토 노터데임대 교수는 우선 국가의 전략이나 정책 결정의 합리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한다. 저자들은 국가의 결정이 신뢰성 있는 이론에 근거했고, 심의 과정을 거친 결과물일 때 ‘합리적’이라고 정의한다. 신뢰성 있는 이론이란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미 검증을 마친 이론이다. 국제정치학에서는 현실주의와 자유주의 이론이 신뢰성 있는 이론으로 받아들여 진다. 참고로 저자들은 대표적인 현실주의 이론가들이다. 심의는 두 단계로 이뤄지는데 주요 정책결정자들이 자유롭게 벌이는 활발한 토론과 최종 결정권자의 선택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기준으로 판단했을 때 대부분 국가가 ‘거의 항상’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만일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비합리성이 표준이라면 국가의 행동은 이해될 수도 없고 예측될 수도 없다. 다른 국가들이 ‘합리적 행위자’라고 인정해야만 특정한 상황에서 우방국이나 적국이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자국의 이익을 증진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 수가 있다.

저자들은 그동안 우리가 비합리적으로 여겨왔던 역사적인 다양한 사례들을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을 패망의 길로 몰고 간 1941년 미국 진주만 공격 결정이다. “장기적으로 나타날 끔찍한 전략적 결과에는 눈을 감은” 어리석은 결정이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결정은 역시 ‘합리적’이었다. 저자들의 합리성 기준을 따라가 보자. 당시 일본은 생존의 기로에 서 있었다. 미국은 1940년 7월 일본 경제에 필수적인 철과 같은 원자재의 수출을 통제했고, 이듬해 석유 금수 조치를 단행했다. 일본의 지도자들은 단기적으로는 경제 마비 상황이 닥칠 것이고, 2~3년 안에 삼류국가로 전락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들은 승리할 확률이 미미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이’ 위험한 전쟁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신뢰성 있는 현실주의 이론 가운데 ‘세력균형 이론’에 바탕을 둔 결정이다.

책은 “일본 지도자들은 생존 확률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세력 균형 속에서 일본의 입지를 유지하는 데 열중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일본 정책결정자들은 위기 초기부터 전쟁 초기까지 심의 과정을 거쳤다. 그해 7월 1일부터 12월 1일까지 내각 핵심과 군 지도자들이 참석하는 회의를 38번이나 가졌고, 이 중 4번은 천황이 참석했다.

물론 국가가 항상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된 것이 2003년 3월 시작된 미국의 이라크 침공 결정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정책 결정자들의 판단 기조에는 이라크의 독재자를 강제적으로 제거해 민주주의 국가를 만든다면 다른 중동 지역에도 민주주의가 확산되리라는 ‘강제적 민주주의 증진 이론’과 ‘도미노 이론’이 깔려 있다. 저자들은 이 두 이론은 검증되지 않는 신뢰성 없는 이론들이라고 단언했다. 특히 정책 결정 과정에서도 리처드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부 장관 등 강경파 주도로 제대로 된 토론 없이 반대파 의견의 무시, 억압 등이 이뤄지면서 ‘심의’ 과정은 생략됐기 때문에 ‘비합리적’ 결정이었다는 주장이다.

다시 푸틴의 결정으로 돌아오면, 사실 푸틴과 그의 보좌관들은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에 대한 방어막으로 만들려는 속셈으로 간파하고, 실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신뢰성 있는 ‘세력 균형 이론’을 바탕으로 사고한 것이다. 푸틴은 줄곧 “나토의 동진은 러시아의 이익뿐 아니라 국가의 존립과 주권에 대한 실질적인 위협”이라고 강조했다. 더욱이 전쟁 결정은 푸틴 개인이 아닌 보좌관들과의 치열한 토론의 결과였다.

책은 국가가 서로 상충 가능성이 있는 많은 목표를 갖지만 최우선 순위는 국가의 생존이라고 강조한다. 생존을 원하지 않거나 생존을 다른 목표보다 아래에 두는 행위자는 비합리적이다. 그렇다고 국가가 늘 생존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소련,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 냉전 종식 후 사라졌다. 저자들은 “이때에도 지도자들은 자국을 온전하게 보존하기를 원했지만 그럴 능력이 없었을 뿐이었다”고 말한다.

물론 저자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다만 해제를 쓴 한국학중앙연구원 옥창준 교수의 제언은 새겨들을 만하다. “과연 역대 한국 정부들은 얼마만큼의 신뢰성 있는 이론을 전략적으로 선택했으며, 또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지도자와 정권의 수뇌들은 얼마나 활발한 심의 과정을 진행했는지를 반추하면서 이 책에 소개되는 역사 사례를 본다면 더 흥미로운 독서가 가능할 것이다.”

⊙ 세·줄·평 ★ ★ ★
·신선한 방식의 역사 읽기다
·합리적이어도 실패할 수 있고 비합리적이어도 성공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가치외교는 합리적일까

기자 프로필

국민일보 맹경환입니다. 1997년 입사 이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베이징특파원을 거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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