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명성은 곧 내 지위”… 환자들 지역·공공병원 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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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철의 ‘좋은 죽음을 위하여’] ⑬ 상급병원도 호스피스 병동 필요

의과대학 증원 문제로 의·정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빅5’ 병원을 중심으로 상급종합병원의 진료 축소가 이뤄지자 정부는 국민의 병원 이용에 불편을 막고자 공공 의료기관의 진료 시간을 확대했다. 하지만 국민 다수는 아무리 불편해도 공공병원을 찾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 이유는 대학병원 중심의 상급병원 이용을 자신의 신분과 동일시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상위 수준의 배경에 자신을 위치하려는 인간 본성을 지적한 이는 미국의 철학자 어네스트 베커였다.

그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작 ‘죽음의 부정’에서 인간은 위기에 처할수록 상위 집단에 자신을 예속시켜 안정감을 얻는다고 말한다. 출신 가문, 지역, 학벌, 심지어 다니는 교회까지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배경에 자신을 집어넣으려고 몸부림친다. 그런 우월감이 실제로 상위 집단인 듯한 착각을 줘 불안한 자신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 본성은 대한민국 국민의 병원 이용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몸은 가장 원초적인 자존감의 그릇이기에 누구나 병이 생기면 자존감이 흔들리게 된다. 실제 병의 중함과 상관없이 내가 치료받는 병원의 명성, 건물 크기, 시설과 장비는 곧 위기를 관리하는 내 지위가 된다. 그래서 아무리 대기가 길고 거리가 멀어도 사람들은 수도권 상급병원으로 몰려든다. 가깝고 편리한 동네의원, 공공병원, 지역병원들은 소외됨을 넘어서 어느 순간부터 수준도 실력도 낮다는 편견이 덧씌워진다.

질병 앞에서 겪는 불안을 마냥 이기심으로 치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정부의 적절한 통제와 배려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상급병원에서 말기 진단이 된 환자들에게 지역병원이나 공공병원 호스피스를 제안해도 쉽사리 마음이 가지 않는다.

대학병원에서 공공병원 호스피스는 어마어마한 자존감의 추락이다. 수용하기까지 배려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상급병원에도 일정 기간 호스피스를 경험하고 마음을 정리할 수 있는 중간 다리 역할의 호스피스병동 운영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서울의 28개 대학병원 중 호스피스병동을 운영하는 곳은 가톨릭대 병원 외 단 한 곳도 없다. 우리나라 말기 암 환자 4명 중 1명만 호스피스를 이용하고 나머지는 여전히 타지의 대학병원에서 치료에 매달리다 죽음을 맞는 이유다.

박중철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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