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노동자들 “교육 없었다”
법으로 의무화… 현장선 교재로 대체
통역지원 통해 구체적 교육 필요
화재로 23명이 사망한 경기 화성 아리셀 공장에서 일했던 서모씨는 지난 29일 통화에서 “입사 전후로 안전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아리셀 인근 타 공장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인 A씨 역시 “부품 조립, 세척, 포장업무를 다 해봤지만 업무별 안전교육은 없었다”며 “한국어가 익숙치 않아 옆 사람을 보며 눈치껏 일했다”고 말했다.
아리셀 공장에서 안전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작업자들의 증언이 이어지면서 사업주 재량에 맡겨진 안전보건교육 시스템을 개선·감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올해 고용허가제(E-9 비자) 외국인력이 16만명 도입되는 등 대폭 외국인 노동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보호하는 조치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30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에게 정기적인 안전보건교육 의무를 규정한다. 사무직 외 근로자는 반기에 12시간 이상, 일용직 근로자는 채용 시마다 1시간 이상 등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다만 산안법은 교육 시간과 교육 주기, 방법 등을 명시할 뿐 구체적인 교육 내용은 사업주 재량에 맡기고 있다. 이 때문에 형식적인 교재나 온라인 교육으로 대체되는 등 안전교육이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외국인 근로자의 모국어로 진행해야 한다는 의무규정도 없어 언어 장벽 문제도 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현장에서 가장 작동하지 않는 게 안전교육”이라며 “서류에 사인만 하고 넘어가는 등 교육 자체가 형해화됐다”고 말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안전교육을 감독하더라도 내용보다는 법상 시간을 지켰는지 따지게 된다”며 “현장에 맞는 맞춤형 안전교육이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내 산재 사망자 중 외국인 근로자의 비중은 2022년 9.7%에서 지난해 10.4%로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는 3월 기준으로 11.2%를 기록했다. 일용직 근로자의 산재 승인 건수도 2019년 3만4320건에서 지난해 3만8638건으로 12.5% 증가했다. 같은 기간 산재를 당한 일용직 외국인 숫자는 3250명에서 4123명으로 27%나 늘었다.
올해 고용허가제를 통해 비전문 취업(E-9) 비자로 들어오는 외국인력은 16만5000명이다. 지난해 12만명보다 4만5000명(37.5%) 증가한 것으로 최대 규모다. 고용부 등은 16개국 언어로 산재 예방 교육 콘텐츠를 제작하고,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컨설팅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사업장의 자율 안전관리만을 강조하는 현 제도로는 제2의 아리셀 사고를 막기 어렵다는 우려가 크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는 “안전교육에 대한 규제는 강하지만 질적인 평가 기준이 없는 것이 문제”라면서 “정부가 사업장 내에서도 업무별로 안전 교육을 나눠서 하는지 세밀하게 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다야리이 이주노조위원장도 “앞으로 더 많은 외국인이 들어오는 만큼 통역 지원 등을 통해 구체적인 안전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