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영원한 1등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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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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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규 산업1부장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이혼 항소심의 진짜 패자는 최 회장이 아닌 김앤장이란 얘기가 나온다. 최 회장 측 변호인인 김앤장이 승소를 자신했지만 결과는 참패였기 때문이다. 최 회장에게는 상고심이란 기회가 남아 있지만 대한민국 최고 로펌 김앤장은 자존심을 제대로 구겼다.

지금까지 대기업들은 주요 송사가 있으면 당연히 김앤장을 찾았다. 소송에 패소하더라도 김앤장에 수임을 맡겼는데 졌으니 어쩔 수 없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김앤장에 대한 믿음이 깨졌다는 말이 재계 안팎에서 돌고 있다. 질 소송이 아닌데 김앤장이 방심했던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최 회장 사건 판결 당일, 김앤장은 하이브 계열사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가 하이브를 상대로 제기한 의결권 행사금지 가처분 신청에서도 패소했다. ‘김앤장 패배의 날’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단 하루 만에 굴욕을 겪은 김앤장과 달리 삼성은 최근 1년 새 엔비디아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1위 기업이라는 위상을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에서 잃은 지 오래다. 인공지능(AI) 총아라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말 한 마디에 일희일비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만년 2위였던 SK하이닉스가 2022년부터 HBM을 엔비디아에 공급한 반면 삼성은 아직까지 테스트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삼성이 엔비디아 납품에 실패했다, 아니다’라는 확인되지 않는 외신 보도에 주가가 영향을 받는 처지가 됐다.

영원한 1등 같았던 김앤장과 삼성이 위기에 휩싸인 이유를 살펴보면 아이러니하다. 김앤장 내부에서는 본업에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최 회장 사건처럼 본업인 법원 사건보다는 내부의 실력 있는 변호사들이 기업 인수·합병(M&A) 시장 등 돈 되는 곳에 집중하면서 소송 대응력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삼성은 법무라인이 사업라인을 압도하면서 경영 능력이 약해졌다는 지적이다. 이재용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길어지면서 법무라인의 입김이 세졌고, 회사 전체적으로는 그것이 또 하나의 리스크가 됐다는 것이다.

지난 십수년간 김앤장과 삼성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이유는 공격적인 전략에 있었다. 김앤장은 다른 로펌이 공들이는 인재라면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일단 데리고 온다는 원칙이 있었다. 삼성 역시 어느 분야에서든 자신을 뛰어넘을 경쟁자가 생기면 그 분야에서 ‘1등주의’를 잃지 않게 투자에 집중했다.

그랬던 두 집단이 최근 몇 년 새 속된 말로 ‘나이브’해졌다는 평이 나온다. 김앤장은 어느 기업이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제 발로 찾아오는 관행을 즐겼고, 삼성은 반도체 시장에서 선도적 투자를 게을리했다. 삼성에 몸 담았던 관료 출신 한 임원은 최근의 위기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밖에서는 대단해 보였는데 와 보니 의사결정 과정이나 내부 소통 면에서 공무원 조직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김앤장도 마찬가지다. 법조계 내에서는 “예전의 김앤장이지 지금의 김앤장은 다른 대형 로펌과 비교해 별반 다른게 없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런 박한 평가에 대해 김앤장과 삼성도 할 말은 있다. 김앤장은 예전에는 기업들이 송사가 생기면 일단 들고 왔는데, 대기업 법무 조직이 커지면서 쉬운 사건은 내부에서 해결하고, 이기기 어려운 사건만 김앤장에 떠넘기고 있다고 항변한다. 삼성 역시 아직 게임이 끝나지 않았는데 여론이 루저 평가를 하는 데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는 말이 있다. 한국 사회를 이끌어 왔던 ‘투 톱’이 어떻게 반성하고 예전의 위상을 되찾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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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경제부처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틈틈이 '나는 아빠다' 글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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