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정치권이 기업에 대한 ‘규제 장벽’을 높이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경제계에서는 경기침체 장기화로 비상 상태에 들어갔음에도 정부가 지원은커녕 오히려 경영 환경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며 우려를 표한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로까지 확대하는 방향의 상법 개정안, 대통령 거부권으로 폐기됐던 ‘노란봉투법’의 재발의, ‘횡재세’ 도입 등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규제가 현실화할 경우 글로벌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경제계에 따르면 정부와 정치권의 규제 강화 움직임에 국내 기업들의 불안감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상법 개정안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에 나섰다. 현행 상법(제382조 3)에서는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라며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로 정했다. 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겠다는 것이다. 총수 등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선 나머지 주주의 이익을 희생시켜도 책임을 지지 않아 온 국내 기업들의 관행을 고친다는 게 정부와 정치권의 논리다. 특히 정부는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겠다며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 중인데 상법 개정을 핵심 의제로 삼았다.
경제계에서는 경영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며 반발한다. 한국경제인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등 8개 경제단체는 지난 24일 상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공동건의서를 정부와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정부의 상법 개정 계획에 대해 “현행 법체계를 훼손하고 국제 기준에서 벗어나며, 형법상 배임죄 처벌 등 사법 리스크가 막중해질 수 있다”면서 “자본 조달이나 경영 판단 같은 일상적 경영활동에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 개정을 통해 소수 주주 보호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노란봉투법 재도입 움직임도 경제계의 주 관심사다. 노란봉투법은 21대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됐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22대 국회에서 당론으로 두고 우선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내용은 더 강해졌다. 노조 파업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사실상 금지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경제계에서는 노조가 무분별하게 파업에 들어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며 우려한다. ‘파업 리스크’가 기업 경영 환경에 ‘상수’로 자리 잡는 셈이다.
횡재세와 유사한 법인세 인상안도 경계 대상이다. 야당은 세수 확충을 위해 은행이나 정유사 등 비정상적인 외부 요인으로 막대한 초과이익을 거뒀을 때 추가로 법인세 등을 걷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13일 서민 금융에 대한 은행의 출연요율을 높여 횡재세와 유사한 효과를 내는 ‘서민금융지원법’을 당론으로 채택한바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등 주요국들은 자국의 기업을 대상으로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경영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며 보호책을 만드는 상황인데 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면서 “정부 지원이 빈약한 것을 넘어 오히려 경영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가고 있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