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무임승차제 개편 피하지 말자

입력
기사원문
남혁상 기자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남혁상 사회2부장

새해 들어 들썩이던 공공요금 인상 논란이 당분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정부는 얼마 전 고속도로, 철도, 우편, 광역상수도 등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공공요금의 올 상반기 동결 방침을 밝혔다. 각 지방자치단체에도 지방 공공요금을 최대한 동결해 줄 것을 요청했다. 서울시도 이르면 4월로 예정됐던 버스·지하철 등 대중교통 요금 인상 시기를 일단 미뤘다.

서울시가 마지막으로 대중교통 요금을 올린 것은 2015년이다. 8년간 물가·인건비가 올랐는데도 요금을 동결하면서 재정난이 가중돼 자구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게 서울시 입장이다. 그런데 시기를 조정했을 뿐 300~400원가량의 인상 자체는 불가피하다고 한다. 이와 맞물려 정부와 지자체 간 지하철 무임승차 갈등 역시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커졌다.

지하철 무임승차제는 1980년 정부가 70세 이상 노인(당시 80여만명)에게 절반 할인을 해주면서 시작됐다. 노인복지법과 시행령을 통해 65세 이상으로 확대됐고, 1984년부턴 100% 할인이 됐다. 문제는 재원 마련 없이 덜컥 시작했다는 데 있었다. 서울 부산 대구 등 전국 7개 광역자치단체 도시철도의 무임승차 인원은 2021년 기준 3억7795만명, 운임손실액은 5074억원이다. 무임승차 인원의 80% 이상이 노인으로 추산된다. 서울교통공사의 지난해 무임승차 비용(2784억원)은 영업손실의 30%에 달했다.

무임승차제 시행 40년이 지나는 동안 지자체들은 무임승차 비용의 일부라도 정부가 보전해 달라고 하지만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나라처럼 특정 연령에 도달했다고 해서 대중교통 무임승차 혜택을 주는 나라는 없다. 관련 개정안 역시 몇 차례 발의됐으나 회기를 넘겨 폐기되거나 정부 반대로 무산됐다.

비용 부담 주체를 놓고서도 정부와 서울시는 해석의 차이를 보인다.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의 법적 근거는 노인복지법과 시행령이다. 노인복지법 26조 1항에는 ‘국가 또는 지자체는 65세 이상에(중략) 수송시설(중략) 등을 무료 또는 할인해 이용하게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정부는 이를 재량권이 있는 ‘임의 규정’으로 해석하지만, 서울시는 사실상 ‘강행 규정’인 만큼 정부가 일부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다.

이렇듯 정부와 지자체가 해석을 놓고 다툴 만큼 법과 시행령 등이 모호한데도 국회와 정부 누구도 먼저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나서지 않는다. 자칫 노인층의 반발을 불러 표를 깎아먹을 수 있다는 판단도 그 배경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구시가 7월부터 만 75세 이상 노인에게 시내버스 무임승차 혜택을 주고, 매년 한 살씩 낮추기로 했다. 반면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은 만 65세에서 매년 한 살씩 올릴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2028년엔 시내버스·지하철 무임승차 연령이 만 70세 이상으로 통일된다. 무임승차 근거인 노인복지법과 시행령에 적용 연령이 ‘65세 이상’으로 돼 있어 문제가 없다는 취지다. 노인들로선 크게 반대할 일이 아닌 데다 대구시가 재정 부담도 추산해 봤을 테니 큰 무리 없이 진행될 듯하다.

대구시의 실험적 정책을 일반화해 적용하긴 어렵지만 다른 지자체 역시 고민은 필요해 보인다. 이미 개선 아이디어는 많이 나와 있다. 할인 폭을 줄이거나, 무임승차 연령을 올리거나, 혼잡시간대에 할인을 제외하는 것 등이다. 전문가들은 비용 부담과 노인인구 증가세를 볼 때 지하철 무임승차제 개선을 더 늦추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 제도도 이제 40년이 흐른 만큼 현실에 맞춰 바꾸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면 더 이상 피하지 말자. ‘지공거사(地空居士)’라는 자조는 이제 뒤로하고, 그 혜택을 받는 사람도 이젠 당당했으면 좋겠다.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오피니언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