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원에 꿈 포기한 딸” 장애로, 가난은 대물림된다 [이슈&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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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부모입니다-장애인 25인 양육 분투기] ⑤ 또 다른 장벽, 가난
뇌병변장애인 최혜진(가명·왼쪽)씨와 딸 은혜(가명)양이 지난달 20일 서울 자택에서 딸이 그린 그림을 펼쳐놓고 이야기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우리는 왜 이것밖에 안 돼?”

고3 막내아들이 술에 취해 울먹이며 고함을 내뱉었다. 중증 시각장애인 이용연(55)씨는 그런 아들의 모습을 눈에 담지 못했다. 그저 소리 나는 쪽으로 돌아앉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못살아야 해? 남들처럼 제대로 된 가정을 이루고 살 순 없어?” 울분을 토하던 아들은 이윽고 잠잠해졌고, 용연씨는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방 안의 정적을 깬 건 낮은 신음이었다. “아빠…나 어지러워, 힘들어.”

“왜 그래!” 미끄러지듯 의자에서 내려와 다급하게 방바닥을 더듬던 용연씨 손끝에 서서히 흩어지던 뜨거운 액체가 닿았다. 다급히 수건을 찾아 아들의 팔을 감싸고 구급차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순간의 기억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용연씨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조그만 슈퍼마켓을 운영하던 용연씨는 20대 초반부터 시야가 점점 좁아지는 망막색소변성증을 앓았지만 남다를 것 없는 삶을 살았다. 미용실에서 일하는 비장애인 아내와 결혼해 1년 만에 첫째 아들을 낳았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행복은 지척에 있는 것 같았다.

불행은 첫째가 여덟 살이 됐을 때 연거푸 터졌다. 용연씨는 나날이 떨어지는 시력으로 장애 등급을 받았다. 곧 아내가 이혼을 고하고 떠났다. 그사이 부모가 지병으로 쓰러졌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눈 상태가 악화해 손님이 건넨 지폐가 보이지 않게 됐다. 장사를 접은 그의 곁엔 어린 두 아들만 남았다. 생계와 육아를 혼자 오롯이 떠안았다. 용연씨는 맹학교에서 안마를 배웠다.

아이들이 등교한 시간에만 안마하고 손에 쥔 110만원으로 세 식구가 살았다. 식비로 100만원을 지출하면 10만원이 남았다. 기초생활수급 생계급여를 받으면 일하는 것보다 20만~30만원 더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대가는 너무 컸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수급자 낙인이 찍혀 상처받을 게 걱정됐다. 아이들은 한부모가정 자녀에게 나오는 식당 바우처도 부끄럽다며 쓰지 않았다. 그는 계속 일했지만 빚이 쌓여갔다.


가난은 장애보다 더 양육을 힘들게 했다. 돈이 드는 학교 체험학습을 보내기 어려웠다. 아이들 옷은 주변에서 얻어 입혔다. 중학교 입학 뒤엔 학원이 문제가 됐다. 과목당 30만~40만원을 쓸 여력이 없었다. 두 아들은 학원 가는 대신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들 둘은 사고를 많이 쳤다. 술 마시고 친구와 자주 싸워 용연씨는 자주 경찰서를 방문했다. 작은아들은 고등학교를 3차례 옮겼다. “나도 평범하게 살고 공부도 했으면 좋겠어. 돈 없는 것도, 아빠가 이혼한 장애인인 것도, 날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는 것도 다 싫어.” 아들의 원망에 용연씨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각각 27세와 24세인 두 아들은 대학을 중퇴하고 일을 시작한 뒤에야 아빠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지난 연말엔 셋이 서울 마장동에서 소고기를 구워 먹었다. 두 아들이 그동안 못해 본 외식과 가족사진 촬영을 하자고 했다. 두 아들은 요즘 “키워줘 고맙다”는 이야기를 한다. 용연씨는 자식들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모습을 보면 자기 탓인 것 같다. “남들처럼 키웠으면 더 잘 컸을 텐데… 부모 도움을 못 받아 힘들게 사는 거예요.”

자녀 충분히 지원해주기 어려워


장애인 부모는 가난한 경우가 많다. 장애가 있으면 돈을 많이 버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21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장애인 가구의 근로소득은 평균 2266만원으로 전체 가구 평균(3855만원)의 58.8%다. 소득이 부족한 장애인 상당수는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인 연금에 의존해 산다. 이런 상황에선 자녀를 충분히 지원해주기 어렵다.

부모의 장애를 이해하고 받아들인 자녀도 가난을 안고 청소년기를 헤쳐나가기는 쉽지 않다. 충분한 학습기회를 얻지 못해 학업을 중단하거나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장애는 대물림되지 않지만 장애가 야기한 가난은 대물림된다. 보건복지부의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자녀가 17세 이하인 장애인들은 ‘본인의 장애로 인해 자녀 양육 시 느끼는 어려운 점’으로 ‘자녀 양육·교육비용이 많이 들어서’(17.2%)란 응답을 가장 많이 꼽았다.

두 딸을 키우는 뇌병변장애인 최혜진(가명·41)씨는 첫째 은혜(가명·11)양을 미술학원에 보내지 못한 게 속상하고 미안하다. 은혜는 스케치북에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 색채감이 좋고 잘 그린다는 주위 칭찬을 듣는다. 자연스레 화가를 꿈꿨고 미술학원도 가고 싶었다. 상담하러 간 학원에서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우려면 주3회 월 수강료 30만원에 재료비를 더해 월 50만원은 든다는 말을 들었다.

혜진씨 가족의 수입은 공식적으로 한 달에 약 150만원. 기초생활수급비다. 그 돈으로는 두 딸을 키우기 벅찼다. 그래서 같은 뇌병변장애인이지만 혜진씨보다 몸이 덜 불편한 남편이 경기도 한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을 합해도 혜진씨 살림은 매달 적자다. 반전세집의 월세와 대출이자로 한 달에 50만원을 낸다. 식비 등 생활비에 지출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월 50만원인 미술학원은 말 그대로 언감생심이다.

지난달 20일 뇌병변장애인 최혜진(가명)씨와 첫째 딸 은혜(가명)양이 거주하는 서울 자택 벽면에 은혜양의 어린 시절 사진이 걸려있다. 최현규 기자

미술학원에 못 가는 은혜는 이제 화가가 되기보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 돈을 벌어 큰 집을 사는 꿈을 꾼다. 좁은 방을 동생과 함께 쓰는 은혜는 동생이 예배 수업을 들을 때면 방을 비워줘야 하는 게 불만이다.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고 엄마에게 조르지만 집에는 남는 공간이 없다. “돈을 많이 벌어서 큰 집을 사고 싶어요. 연예인들이 사는 그런 집이요. 위층에는 할머니가 살고, 중간에는 내가 살고, 밑에는 엄마 아빠 살고.”

지적장애인 김민섭(가명·45)·뇌전증장애인 이경순(가명·49)씨 부부도 가난 탓에 열아홉 살 아들과 험난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경순씨는 아들을 낳고 나서 간질 탓에 자주 쓰러졌고, 온몸에 성한 곳이 없었다. 어머니와 오빠를 잃고는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민섭씨는 아내가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외출하면 사람들이 쳐다보고 업신여기는 것 같대요. 심할 땐 식사도 잘 못 해요.”

경순씨가 쓰러지면 챙길 수 있는 건 민섭씨뿐이었다. 일하다가도 달려와 경순씨를 챙기는 일이 반복되자 그는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수급비를 받게 됐고, 간간이 복지관 업무를 도와주는 걸로 생계를 꾸려왔다. 삶은 팍팍했다. 공과금과 월세를 내고 남는 100만원으로 세 식구가 살아야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들은 원하는 게 많아졌다. 하지만 어느 것도 제대로 충족시켜주기 힘들었다. “컴퓨터 사달라, 뭐 사달라 해도 우리가 돈이 없으니까 못 해주죠. 나가서 외식하는 것도 힘드니까요.”

뇌병변장애인 최혜진(가명·오른쪽)씨가 지난달 20일 첫째 딸 은혜(가명)양의 도움을 받아 서울 자택의 계단을 오르고 있다. 최현규 기자

아들은 중학교 때부터 탈선을 시작했다. 자주 집을 나갔고 학교폭력으로 소년원에 다녀왔다. 흡연 문제로 민섭씨가 학교에 불려가는 일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부모와의 갈등은 반복됐다. “돈을 안 주면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하냐’고 큰소리치고 그냥 나가버려요.”

고3 개학을 앞둔 아들은 학교를 자퇴하고 배달 라이더 일을 시작했다. 부모와 대화를 피하고, 자주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민섭씨는 비극이 가난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대학 나와도 계약직 전전

장애인 빈곤은 개선되기는커녕 악화하는 모습이다.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월평균 총가구 소득이 200만원 미만인 장애인 비율은 59%로 2017년(49.1%)에 비해 9.9% 포인트 증가했다. 또 2020년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 현황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7.4%가 수급자인데 장애인 가구는 이 비율이 19.1%다.

취재팀이 인터뷰한 장애인 가족도 22가구 중 40.9%(9가구)가 기초생활수급자였다. 다른 장애인 부모는 일자리가 있더라도 장애인 단체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저임금을 받는 계약직 일자리를 전전하거나 시간제로 일하는 경우도 있었다. 1명만 정규직인 특수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장애인 부모는 만날 수 없었다.


서울 4년제 사립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지체장애인 서성일(가명·53)씨는 경기도 한 병원에 1년 계약직으로 채용돼 하루 4시간씩 재택근무한다. 병원 관련 온라인 기사나 게시글을 모니터하고 성일씨가 받는 월급은 약 70만원. 3인 가구 기준 기초생활수급 생계급여는 약 130만원으로 최저생계비를 보장해주는 정도인데, 성일씨처럼 일을 하면 급여는 30만원이 차감된 100만원이 들어온다. 성일씨는 170만원으로 시각장애인 아내, 중학생 딸과 한 달 생계를 꾸린다.

임대아파트에 사는 성일씨는 보증금 5000만원 중 3000만원을 대출받았다. 한 달 임대료에서 기초생활수급 주거급여를 제외한 16만원씩을 따로 낸다. 이런 상황에서 의식주 외 다른 소비활동을 하는 건 사치다. 급작스러운 병원비 등 목돈 들어갈 일이 생겼을 땐 빚을 져야 한다. 그는 임대아파트 보증금 대출 외에 이미 1000만원의 빚이 있다.

“자녀 키우려면 돈 벌게 해줘야”

전문가들은 장애인이 근로소득 납세자로서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이 아직도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2020년 장애 부모의 자녀 양육에 관한 현안분석 보고서를 작성한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기업에 장애인 고용의무를 줘봤자 과태료를 물고 마는 식”이라며 “장애인들을 게으르거나 무능력하게 보는 사회적 편견이 일할 기회 박탈과 경제적 빈곤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 당사자들은 부모로서 자녀를 키우려면 일자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홀로 두 아들을 키운 용연씨는 “경제력이 바탕이 돼야 애들 학원부터 보낼 수 있다”며 “장애인도 도움만 받으면 회화, 조각, 문학 등 생각지도 못한 영역에서 일할 수 있다.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뇌병변장애인 최혜진(가명)씨가 지난달 20일 서울 자택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던 중 은혜(가명)양의 손등 위에 손을 포개고 있다. 최현규 기자

장애 부모를 돕는 다른 방법으로 보충적 급여 지원이 거론된다. 장애 부모는 일·가정 양립 가능성이 작아지므로 경제적으로 안정된 상황에서 육아할 수 있도록 금전적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8년 발간한 ‘장애인 모·부성권 증진을 위한 실태조사’ 보고서는 장애 부모에게 아동수당을 추가로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현재 아동수당은 8세 미만의 아동을 대상으로 월 10만원씩 지급된다.

장애부모가정 청소년에게 별도의 용돈 지원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있다. 일부 복지 선진국처럼 청소년수당을 지급해 그 돈으로 공부하고 용돈을 충당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허 조사관은 “장애 부모를 둔 아이들은 생애 빈곤에 시달리게 될 가능성이 크고, 이는 결국 국가·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올 것”이라며 “그들의 청소년기 빈곤을 어떻게든 해결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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