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도 시력도 아님’ 탈영병 잡는 DP 선발 필수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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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9.09. 오전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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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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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 기자가 전하는 ‘진짜’ DP 이야기 ③] 꿈의 보직 DP 되는 법
넷플릭스 'D.P.'의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탈영병 추적기를 통해 군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넷플릭스 드라마 ‘D.P.’의 흥행 여파가 어마어마하다. 여야 대선 주자들이 앞다퉈 군 내부 부조리 혁파를 공약했고, 입대를 앞둔 청년들 사이에선 ‘군무이탈체포조(DP)’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

군 헌병대 현장에서는 DP에 지원하려는 신병들이 폭증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DP는 육군 전체에서 100자리 안팎에 불과한 ‘희귀 보직’으로 통한다. 과연 누가, 어떻게 ‘꿈의 보직’ DP가 되는 것일까.

육군 헌병대 출신 국민일보 기자가 DP 예비역들의 인터뷰와 제보를 녹여 DP 선발 과정과 필요한 조건 등을 자세히 소개한다. 기사 내용은 다양한 사례를 모아 공통된 부분을 추려낸 것으로 소속 부대, 복무 시기별로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탈영병 등 여러 실사례를 담은 만큼 모든 등장인물은 당사자를 특정할 수 없도록 가명으로 처리했다.

‘DP’가 뭔지 압니까?

지난달 25일 배우 정해인, 구교환, 김성균, 손석구가 넷플릭스 한국드라마 'D.P.' 온라인 제작발표회를 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DP는 Deserter Pursuit(탈영병 추적)의 약자로 군사경찰(헌병) 군무이탈체포조를 뜻한다. 현재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며 DP라는 말이 일반화됐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헌병 이외의 병사들 사이에선 ‘사복 군인’ ‘장발 군인’ ‘군인 형사’ 등으로 두루뭉술하게 불리기도 했다.

별칭에서 알 수 있듯 DP는 사복을 입고 머리카락을 기르는 것이 허용된다. DP가 많은 병사로부터 선망의 보직이 된 결정적 이유기도 하다. 이는 DP가 수행하는 임무의 특수성 때문이다. 탈영병 체포에 나선 DP는 신분을 숨기고 현장에 잠입해야 한다. 단번에 군인임이 눈에 띄어서는 곤란하다.

DP로 선발된 병사는 휴가나 외박을 통해 입대 직전 입던 개인 사복과 운동화를 가지고 복귀한다. 민간인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 때가 많은 만큼 단정하고 깔끔한 용모를 항상 유지해야 한다. 그렇다고 민간인처럼 입맛에 따라 머리를 기르거나 아무 옷이나 입을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보통 사단급 규모 부대의 헌병대에서는 1개의 DP조(2인 1조)로 운영된다. 사단 내 헌병 중 단 2명만 DP로 선택된다고 볼 수 있다. 부대 여건에 따라 DP를 운영하지 않는 곳도 있다.

넷플릭스 'D.P.'의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육군 전체에 100여명 안팎의 DP가 활동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해병대와 공군, 해군은 병사로 구성된 DP를 따로 두지 않고 탈영 사건이 발생하면 간부 수사관이 직접 나선다.

DP는 평소 수사헌병과 함께 범죄 수사와 군 사이버 테러 예방 임무를 수행한다. 특별 활동을 나갔을 때만 외부 숙박시설을 이용하며 일과 이후에는 영내 생활관으로 돌아간다.

대부분 DP는 자신의 군 생활에 남다른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DP로 복무한 것에 보람을 느끼고 뿌듯하다는 반응들이다.

2014년 12월부터 2016년 1월까지 1년 2개월간 DP로 근무한 예비역 김성민씨는 “살아가면서 해볼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는 것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며 “DP로 복무했던 경험은 내게 평생 가져갈 큰 행운”이라고 회상했다.

10군번 박영철씨는 “그때도, 지금도 DP는 모두가 욕심내는 보직이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DP에 지원할 것”이라며 “한 번뿐인 군 생활 아닌가. DP를 꿈꾸는 헌병 후배들이 있다면 꼭 도전하라고 자신 있게 권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DP’로 선발된 이유는

국민일보 DB

DP가 되기 위해선 두 가지 필수 조건이 따른다. ①보직은 헌병에 ②그중에서도 수사과 소속 계원이어야 한다.

헌병 보직은 4개로 구분된다. 근무헌병, 수사헌병, MC 승무헌병, 헌병 특수임무대(SDT)다. 이 중 DP가 될 수 있는 보직은 근무헌병과 수사헌병뿐이다. 근무헌병 중 선발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편제 문제로 수사헌병으로만 운영하는 곳도 있다.

MC 승무헌병은 주요 인사 호위, SDT는 군 범인 검거와 주요 인사, 시설 경호경비라는 본래 역할이 있어 DP 임무 수행이 불가능하다.

근무헌병은 헌병의 가장 일반적인 보직으로 전체 헌병 60% 이상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헌병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시력이 좋아야 한다, 키가 커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있지만 절대적인 선발기준은 아니다.

모든 헌병은 기초교육훈련 5주를 마친 후 충북 영동에 있는 종합행정학교에서 4주의 후반기 교육을 받는다. 당시 기자의 종합행정학교 생활관 동기 8명의 평균 키는 170㎝가 되지 않았다.

병역판정검사에서 2급 이상 받은 인원 중 무작위 차출이다. 단 세부적인 여러 제한 조건은 있다. 신체에 3㎝ 이상 문신이 없어야 하고, 기소유예 이상의 형을 선고받았거나 수사 또는 재판을 받고 있어서도 안 된다.

수사헌병의 경우 병무청에 전문특기병 자격으로 지원할 수 있다. 병무청 지원 자격을 살펴보면 수사정보학, 범죄수사학, 과학수사과, 과학수사학과, 경찰행정학 등 18개 전공과 기타 유사전공 2년 수료 이상자가 선발 조건이다.

여기에 토목기사, 건축산업기사, 약사 등 관련 자격·면허 취득자도 지원 조건에 해당한다. 별도로 지원하지 않았음에도 수사헌병으로 차출된 사례도 종종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넷플릭스 'D.P.'의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DP가 되는 정형화된 자격시험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한 선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기자를 비롯해 국민일보 취재에 응한 DP 예비역들 역시 가지각색의 이유로 발탁됐다. 하나같이 “생각지 못한 기회에 우연히 됐다”고 입을 모았다.

이를 종합해보면 누구는 잘생긴 외모 덕에 됐고 누구는 학벌이 좋아서 발탁됐다. 체격이 좋아서, 운동선수 출신이라는 체력적 이점으로 뽑힌 이들도 있었다. 드라마 ‘D.P.’ 속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관내 주요 간부나 DP 전임자 등 선발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사의 눈에 띄어 기회를 얻기도 했다. 공개적으로 선발 공지를 한 후 면접시험을 진행하는 부대도 드물게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DP가 되려면 병역 시기상 운도 따라야 한다. DP는 사수의 주도 아래 부사수가 보조 업무를 하며 임무를 익히는, 사수-부사수 구조로 운영된다. 사수의 전역 일자가 다가오면 부사수가 사수에 올라 새로운 부사수를 교육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전임자(사수)가 전역할 시기가 돼야 업무를 인계받는 게 가능해진다. 예컨대 DP 사수가 부사수에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경우라면 DP로 뽑힐 기회가 돌아갈 확률은 낮다고 볼 수 있다. 시간이 지나 그가 전역을 앞둬 DP를 내려놓을 때쯤이 되면 신입(부사수)으로 들어가기엔 애매한 계급이 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높았던 DP 선발 경쟁률은 드라마 흥행으로 더 치열해졌다는 후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군 헌병대 관계자는 “최근 전입한 신병들로부터 DP에 지원하고 싶다는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면서 “드라마 영향인 듯한데, 드라마 시대 배경이 2014년 이전이지 않나. 일 년 동안 단 한 건의 탈영 사건도 없는 사단이 여럿일 정도로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는 걸 꼭 알려주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넷플릭스 'D.P.'의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부잣집 출신이어야 할 수 있나?

DP 예비역 사이에선 “돈 좀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었다”라는 증언도 들린다. 금전적 여유가 뒷받침돼야 했다는 것인데, 이는 제한된 활동비로 모든 걸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활동비는 체포 과정에서 식대·교통비·숙박비 등으로 사용한다. 영수증과 함께 사용 내역에 대한 사후보고서를 제출해야 해서 사적인 남용은 불가능했다.

주어진 활동비 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경우엔, 결국 개인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실제로 02군번 DP 출신 정창민씨는 “1인당 36만원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그때는 탈영이 워낙 많아 36만원으로는 턱없이 모자랐다.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라고 회상했다.

DP들은 체포 활동 당시 피시방, 찜질방 등 다중이용시설에서 잠을 자는 일이 다반사였다. 상대적으로 비용이 많이 드는 숙박업소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운 좋게 본가가 근처에 있다면 그곳으로 향하기도 했다.

14군번 기자가 복무할 당시 DP가 육군본부로부터 지원받는 활동비는 인당 월 25만원이었다. 부사수까지 DP 한 조당 50만원을 받은 셈이다. 다 쓰지 못한 활동비는 이월돼 이후 탈영이 터졌을 때 사용했다. 활동비가 많이 누적된 DP가 있다면 빠져나가 부족한 DP들에게 넘겨주기도 했다.

활동비가 줄어든 이유는 병영 환경이 점차 나아지며 탈영이 감소하자 이에 맞춰 조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방부가 발표하는 국방통계연보를 보면 2014년 406건에 달했던 군무이탈 건수는 지난해 91건으로 80% 가까이 감소했다.

탈영이 매년 급감하는 추세인 만큼 올해도 줄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역 DP의 경우 활동비 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가능성도 낮아졌다고 볼 수 있다. 개인 비용까지 써야 했던 이전과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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