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억제·지방흡수 억제제도 시판중
심혈관계·MASH·치매·무호흡에 도전
[서울=뉴시스]송연주 기자 = 비만치료제의 역사는 '흥망성쇠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010년 글로벌 블록버스터 비만약이었던 '리덕틸'(성분명 시부트라민)이 심혈관계 부작용 위험 이슈로 시장에서 퇴출됐고, 2020년에는 '벨빅'(로카세린)이 암 발병 위험 증가 사유로 시장에서 철수했다. 부작용 이슈로 철수한 비만약은 8종에 달한다. 이런 가운데 나온 신약들도 기대 만큼의 효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시장 침체기를 거쳐야 했다.
4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체중 감량 효과 20% 내외의 치료옵션들이 등장하면서 비만 치료제 시장에 다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원래는 당뇨병 치료제로 쓰이다가 비만치료제로 화려하게 변신한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작용제' 약물이 그 중심에 있다.
GLP-1은 음식을 먹거나 혈당이 올라가면 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당초 당뇨병 치료에 사용했으나, GLP-1이 뇌의 포만중추를 자극해 식욕을 억제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비만 치료제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당뇨병 치료제로 쓰여왔다는 건 이 약의 부작용이 예측 가능하고, 안전성이 어느 정도 검증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만약의 오명이었던 안전성 이슈에서 자유로울 거란 기대감이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GLP-1이 각광 받는 가장 큰 이유는 효능에 있다고 볼 수 있다. 2014년 최초의 GLP-1 비만 신약으로 미국에서 허가받은 노보 노디스크의 '삭센다'(리라글루타이드)는 임상시험 결과 56주 투약 기준 9.2% 체중 감량 효과를 냈다.
삭센다의 다음 버전인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는 효과와 편의성이 더 높아졌다. 임상 결과 치료 68주째에 환자들은 평균 14.9% 감소했다. 하루 한 번 주사하는 삭센다와 달리 일주일에 한 번만 투여해도 된다. 위고비는 2021년 미국에서 승인된 후 작년 10월 국내에서도 출시됐다.
GLP-1과 GIP(포도당 의존성 인슐린분비 폴리펩타이드)에 이중 작용하는 '젭바운드'(터제파타이드)는 임상에서 최대 22.5%의 감량 효과를 냈다. 최근에는 젭바운드가 위고비보다 체중 감량 효과가 47% 더 우수하다는 일라이 릴리의 연구 결과도 나왔다.
젭바운드 역시 주 1회 투여제로, 2023년 11월 미국에서 비만치료제로 승인됐으며 젭바운드와 동일한 성분의 '마운자로'가 2022년 당뇨병 치료제로 미국에서 승인된 바 있다. 국내에선 '마운자로'라는 이름으로 2023년 6월 당뇨병에 먼저 허가된 후, 지난해 7월 비만에도 추가 승인됐으나 아직 출시되지 않았다.
비만 치료제 날개를 달고 노보 노디스크의 작년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1% 증가한 713억 덴마크 크로네(약 14조원)를 기록했다. 일라이 릴리의 3분기 매출은 114억3910만 달러(약 16조원)로, 전년 동기 대비 20% 늘었다.
GLP-1 뿐 아니라 식욕 억제제, 지방 흡수 억제제 등의 비만 약도 현재 시판 중이다. 식욕 억제제는 식욕 저하로 인한 음식 섭취 감소를 목적으로 한다. 향정신성 식욕억제제인 펜터민 성분을 기반으로 하는 '큐시미아'(펜터민·토피라메이트)가 많이 판매된다. 비향정신성 식욕억제제인 '콘트라브'(부프르피온·날트렉손)도 있다.
지방흡수 억제제는 지방 분해 효소를 억제해 지방이 체내로 흡수되는 것을 줄이는 작용이다. 해당 약 '제니칼'(오르리스타트)은 지방 흡수 효소인 리파아제를 억제함으로써 섭취한 지방의 일부를 소화 흡수되지 않은 채 몸 밖으로 배출시킨다.
비만 치료제는 체중 감량 이상의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증명하고 있다.
위고비는 국내와 미국에서 비만 환자의 주요 심혈관계 사건 발생 위험을 줄이는 데 쓸 수 있도록 적응증이 추가됐다. 연구 결과, 표준요법에 위고비를 보조요법으로 추가했을 때 위약에 비해 주요 심혈관계 사건(심혈관계 질환 사망, 비치명적 심근경색, 비치명적 뇌졸중)을 20%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엔 미국 FDA가 젭바운드를 수면무호흡증 치료제로 승인했다. 전 세계적으로 수면무호흡증 신약으로 허가받은 최초 사례다. 앞서 발표된 3상 연구 결과, 양압기 사용과 약물 투여를 병용한 집단에서 불규칙한 호흡 빈도가 62.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릴리와 노보는 비만과 연관 깊은 대사이상지방간염(MASH)에도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노보는 작년 11월 MASH 환자에게 위고비를 투여한 3상 결과 1차 지표를 충족했다고 발표했다.
노보는 위고비를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개발하기 위한 임상도 진행 중이다. 앞서 작년 10월 위고비의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가 2형 당뇨병 환자의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을 40~70% 낮춘다는 미국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대 연구가 미국 알츠하이머병 협회 학술지에 발표된 바 있다.
하현수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비만 치료제의 생존 이점이 확인되면서 보험 적용에 대한 환자들의 요구도 커질 것"이라며 "보험 적용은 현재 높은 치료제 가격으로 인해 사용이 어려웠던 환자들까지 사용이 확대되며 시장 확대로 이어질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