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아닌 비번'…외부 노출 공동현관 비밀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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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7.25. 오전 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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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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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배달 업무 편의 위해
도어락·외벽에 적어 노출
주거침입 범죄 악용될수도
[전주=뉴시스] 강경호 기자 = 24일 전북 전주시 덕진구 전북대학교 인근의 다세대주택 공동현관 비밀번호가 도어락과 문틀 등에 그대로 노출돼있다. 2024.07.24. [email protected]


[전주=뉴시스]강경호 기자 = 다세대주택에 설치된 공동현관의 비밀번호가 택배·배달기사의 업무 편의성 때문에 외부에 노출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차적인 보안을 담당해야 할 공동현관이 제 역할을 못한 채 범죄에 대한 우려를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4일 전북 전주시 덕진구의 전북대학교 인근 상권.

학교를 끼고 있는 곳인 만큼 음식점 등의 상가들과 함께 학생들이 많이 거주하는 다세대주택들도 모여있다.

한 건물에 많은 가구가 사는 건물인 만큼 건물 자체에 대한 접근을 막기 위해 주택 외벽에는 'CCTV 작동 중' '외부인 출입금지' 등의 표지가 붙어있었으며 건물 입구엔 도어락이 달린 공동현관이 굳게 닫혀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도어락 근처를 유심히 살펴보자 네 자릿수의 숫자가 검은 펜으로 적혀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네 자리 숫자를 도어락에 입력하자 공동현관은 너무나 쉽게 열렸다.

인근의 다세대주택 10여곳을 돌아본 결과 이처럼 공동현관 인근에 도어락 비밀번호가 적힌 원룸은 6곳에 달했다.

도어락 덮개, 외벽 마감을 위해 처리된 실리콘, 도어락 옆 외벽 등 비밀번호가 적힌 위치도 다양하다.

다세대주택에 거주한 적이 있다는 임모(27)씨는 "원룸에 살던 시절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배달기사 분들이 음식을 문 앞까지 배달한 적이 종종 있었다"며 "보안 때문에 공동현관 유무도 집을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인데 이런 식으로 무력화가 된다면 위험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전주=뉴시스] 강경호 기자 = 24일 전북 전주시 덕진구 전북대학교 인근의 다세대주택 공동현관 도어락 옆쪽에 공동현관 비밀번호인 네 자리 숫자가 펜으로 적혀있다. 2024.07.24. [email protected]


노출돼선 안 될 공동현관의 비밀번호가 외부로 드러난 이유는 택배·배달기사들이 빠른 업무처리를 하기 위함이다.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묻는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이같이 비밀번호를 외부에 적어놓는 것이다.

한 배달기사는 "기사들 사이에선 외부에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적어놓는 게 공공연한 일이다"라며 "현관 비밀번호를 일일히 묻는 건 피차 귀찮기에 한 번 비밀번호를 듣고 난 후엔 다들 (비밀번호를) 적어놓는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외부에 현관 비밀번호가 노출될 경우 누구나 공동현관을 출입할 수 있기 때문에 주거침입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

전북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3년(지난 2021년~지난해) 동안 도내에서 발생한 주거침입 범죄는 모두 1195건으로 연 평균 약 400여건에 달한다.

실제로 지난해 부산과 인천 등에서는 외부에 적힌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통해 내부로 침입하거나 입주민의 인적사항을 확인 후 주거침입을 시도한 범죄가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단순히 비밀번호를 외부에 적어놓는 것만으로는 처벌이 힘든 것이 현실이다. 외부인인 택배·배달기사들이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비밀번호를 알아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노출된 비밀번호는 범죄 악용 소지가 높아 입주민들의 지속적인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전북경찰청 관계자는 "편의를 위해 입주민이나 기사들이 적은 공동현관 비밀번호는 범죄에 쓰일 여지가 충분하다"며 "하지만 아직까지 단순히 알고 있는 비밀번호를 적었다고 해서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경찰 역시 지속적인 순찰과 홍보 활동을 통해 비밀번호의 외부 노출을 줄여 범죄 예방에 힘쓰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며 "입주민 분들도 적혀있는 비밀번호를 확인한다면 덧칠을 해 지우거나 하는 등 관심을 기울여주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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