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귀신은 그리기 쉬워도 개는 그리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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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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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문화재단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최근 구리문화재단과 관련된 잡음이 흘러나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핵심 키워드는 갑질, 인권유린, 괴롭힘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알려진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구체적인 사실이 빠져 있고 대부분 ‘이렇다고 하더라’라는 전언에 그치고 있다. 더욱 문제인 것은 개인의 신상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갑질을 했다고 지목된 사람에게 영문 이니셜을 사용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직함이 적시돼 신분이 그대로 노출되고 말았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부정적 이미지를 얻게 됐다는 뜻이다.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되더라도 최종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판단이 유보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론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결과를 낳은 셈이다.

게다가 특정 직원의 병원 진료 내역과 병명이 드러난다는 점도 문제다. 사망한 직원까지 언급하고 있지만 그의 사망이 조직 내부와 연관됐다는 것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또한 사망한 직원과 관련된 사안은 처음으로 불거진 것도 아니다. 이미 지난 6월에 진행된 구리시의회의 행정사무감사에서도 논의된 사항이다. 당시에도 업무 연관성에 대해서는 드러난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사가들은 자기 마음대로 상상의 날개를 펼치고 소문에 소문이 더해지고 있다. 구리문화재단의 모든 직원들이 고통을 받고 있고 시민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일까. 문제는 구리문화재단이 아직 초보단계의 조직이기 때문이다.

구리문화재단은 2020년에 출범했다. 사람으로 치면 이제 네 살이다. 조직도 사람과 다르지 않다. 아직 성장의 과정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초대 대표는 뿌리를 다지기도 전에 임기도 다하지 못하고 하차했기에 기초를 다질 시간적 여유조차 없었다.

현재 대표가 취임한 것은 지난해 5월이었다. 당시 구리문화재단은 대표가 공석인 상태로 있었으며 코로나19 여파로 삐걱이는 시기였다. 직원들 대다수가 빠져나가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운 상태이기도 했다. 새롭게 직원을 뽑고 흐트러진 조직을 정비하는 데 1년은 매우 짧은 기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문제가 없다면 오히려 죽은 조직이라 할 수 있다. 문제가 적극적으로 드러나고 이를 통해 개선책을 찾아 정비하는 과정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리문화재단은 서서히 긍정적인 성과를 보여주며 보다 나은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직 내부의 갈등이 외부로 표출된 것은 커다란 악재라 아니할 수 없다. 조직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어느 개인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성장을 위한 성장통 정도로 생각하고 개혁과 개선의 계기로 삼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리문화재단을 둘러싼 현재의 논란은 전혀 발전적이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구체적인 빌런을 내세워 그를 타깃으로 삼아 잘잘못을 가리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조직이나 조직 내부에 갈등이 없는 곳은 없다. 만약 갈등이 없는 곳이 있다면 죽은 조직이다. 게다가 본지 취재를 종합해 보면 구리문화재단 내부 직원들 중 대부분은 이번 사태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보도가 나가기 전에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인지한 직원들은 거의 없었기에 보도로 인한 충격이 매우 크다고 호소하는 직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직원 A씨는 “그런 이야기는 처음”이라고 말하며 “사망한 직원도 업무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직원이 사망했는데 그것이 내부에서의 갈등 때문이라면 함께 근무한 직원이 모를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갑질을 한다’라고 지목된 인물에 대해 “업무적으로 꼼꼼하고 깐깐한 스타일이라 쉽지는 않지만 직원들이 반대 의견을 개진하면 합리적으로 따져보아 맥락이 맞는다 싶으면 수용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하며 “개인적으로 불만이 없다. 오히려 배울 게 많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어느 직원은 “대부분 ‘카더라’라는 내용이던데,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일반 직원들도 잘 모르는 이런 이야기들이 어떻게 외부로 흘러나갔냐 하는 점”이라며 “만약 실제로 문제가 있으면 내부에서 해결하거나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도 충분한 것인데…”라고 말하며 아쉬움을 표했다.

모든 조직은 사람처럼 성장한다.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한다. 실수를 통해 배우고 잘못을 개선하며 발전한다. 불법적인 것이 아니라 단순한 대인관계의 갈등이나 사소한 실수와 잘못이라면 해결 과정이 조직을 성장시키는 영양제가 되기도 한다.

개혁과 변화는 조직의 성장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이에 대한 저항과 불만도 따르게 마련이다. 이를 지혜롭게 해결하는 것이 성장의 열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좋은 게 좋은 거다”라며 변화를 거부하면 문제는 더욱 커진다.

이번 구리문화재단의 잡음은 불법적인 것이 실제로 있었는지 따져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구체적인 팩트 체크 없이 ‘이렇게 잡음이 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큰 잘못이다.

중국 전국시대의 학자이자 정치인이었던 한비(韓非, BC 280?∼BC 233)는 한(韓)나라 사람으로 《한비자(韓非子)》를 남겼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문장 중 하나가 바로 “귀신은 그리기 쉬워도 개는 그리기 어렵다”이다.

개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동물이기에 아무리 잘 그려도 그 그림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줄 수 없다. 그러나 귀신은 직접 눈으로 본 사람이 없어서 마음대로 그려도 상관이 없다. 이상(理想)을 말하는 것은 쉽지만 현실에 그 이상을 구현하는 것은 다른 것이라는 뜻이다.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구리문화재단의 장밋빛 미래를 말하는 것은 쉽다. 면밀한 사실 확인도 없이 ‘이러면 안 돼’라고 비판하는 것도 쉽다. 그러나 아직 걸음마 단계인 구리문화재단을 단단한 조직으로 만들고 구체적으로 성장‧발전시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명확하지 않은 귀신을 그리며 소란을 떨 일이 아니다. 구리문화재단이 성숙하고 효율적인 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명확한 로드맵을 세우고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혹시나 구태의 늪에서 편안한 조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적극적인 개혁과 조직정비를 가로막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열심히 일하는 직원을 향해 ‘접시를 깬다’라고 비판하고 있지는 않은지, 변화를 요구하는 직원에게 ‘문제를 만들지 말라’며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

불법이 있었다면 과감하게 도려내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스스로 성장통을 앓고 있으면서 누군가 자신을 때렸다고 변명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불법적인 갑질이 실제로 있었다면 당당하게 밝히고 법적 조치를 받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익명의 가면 뒤에 숨어 내부총질로 자신의 안위를 구하기 위해 조직을 흔드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구리아트홀 전경.ⓒ구리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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