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외압 의혹'과 '尹 탄핵론'이 맞물리면…[최창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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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칼럼] '양남 웰빙당'에 어쩌면 상상하기 싫은 미래가 온다

한국정당사상 여소야대는 1987년 민주화로 13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이듬해에 치러진 13대 총선 때 처음 경험했다. 당시 집권당인 민주정의당이 125석을 얻어 평화민주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등 야3당의 의석을 합친 숫자보다 적었다.

여소야대는 이전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구도로서 민주화를 실감하게 하는 사례였다. 민주화 이전에는 선별적·집합적 유인 자체가 부족한 야권이 정치적 자원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여당에 승리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민정당은 과반은 획득하지 못했지만 원내 제1당의 지위는 고수했다.

16대 총선 때도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은 115석을 얻어, 야당인 133석의 한나라당에 패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의 패배는 이러한 이전의 여당의 패배와는 비교 불가능한 대참패였다.

이의 심각성을 인지해서인지 윤석열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영수회담을 갖고 그토록 인색하던 기자회견도 가졌다. 여권의 변화 가능성의 단초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대통령과 여당의 행태는 바뀌지 않았다.

현재의 정치 의제 중 핵심적인 해병대원 특검에 대한 대통령실의 인식은 국민의 눈높이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국민 여론은 특검 찬성이 압도적으로 높은데도 불구하고, 대통령비서실장은 이 사건에 대해 "채상병 사건의 본질은 전 국방장관의 정당한 이첩 보류 지시 명령을 박정훈 전 수사단장이 어긴 항명 사건이 그 실체이고 본질의 항명 의혹"이라고 강조했다.(7월1일 국회 운영위원회) 이 사건의 본질은 '해병대원 수사에 대한 대통령의 외압 의혹' 아닌가.

이 뿐만이 아니다. '양남(강남과 영남) 웰빙당'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여권에서 쇄신은 찾아볼 수 없다. 선거 후 비상대책위가 또 꾸려졌지만, 그 흔한 총선 패배에 대한 원인분석이나 어떠한 성찰도 찾아보기 어렵다.

여당 전당대회가 10여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권경쟁은 친윤·반윤의 전선으로 고착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국민 다수가 집권세력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으며, 왜 총선에서 참패했고, 향후 국정방향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 자체가 실종됐다.

2015년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언급했던 '배신의 정치'가 소환되고, 대통령 부인이 여당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보낸 문자가 공개되는 등 노골적 권력투쟁의 모습마저 노정하고 있다. 여당 전당대회는 '윤심'이 어디 있느냐의 지극히 원초적이며 정치공학적인 퇴행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 발의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130만을 돌파했다. 명백한 헌법과 법률 위반이 아닌 경우 대통령을 향한 탄핵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그럼에도 대통령 탄핵이 회자되며 지극히 일상적 이슈로 등장한 형국이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2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여권의 쇄신과 변화의 의지 자체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소야대와 정권의 위기 사이에 반드시 등식이 성립한다고 볼 수 없지만 지금의 여권의 모습은 위기상황이라고 하기에 충분하다. 대통령과 여당 중 어느 한 쪽이라도 유권자들에게 공감하고 조응하는 모습을 보일 때 신뢰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모멘텀을 마련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야당과의 소통을 위하여 정무장관직을 신설하겠다고 했다. 야당과 교감하고 대화하기 위하여 국회 부의장 출신의 중진 거물급 인사를 비서실장으로 앉힌 게 아니었던가. 정무수석에 재선 의원 출신 인사를 기용한 이유 역시 같을 것이다. 정무장관이 없어서 소통이 안되는 게 아니다. 정무장관은 박근혜 정권 때 폐지됐었다. 위기 대처 해법이 과녁을 빗나가 있다는 게 문제다.

해병대원 특검에 대해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는 철 지난 주장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야당의 집요함은 상수다. 야당이 해병대원 특검을 의석으로 밀어붙이는 상황이고 국민여론은 특검 찬성 쪽이 압도적이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는 여권의 정치적 상상력의 빈곤과 현실인식의 부재가 계속된다면 여권의 위기는 대통령 탄핵론과 맞물리면서 비등점을 향해 갈 수도 있다. 당 대표가 누가 되든 혁신적이고 전향적인 변화가 수반되지 않으면 재판 리스크에 잔뜩 노출되어 있는 야당의 공세와 국민여론이 결합되어 여권이 상상하기 싫은 국면을 마주할 수 있다는 얘기다.

대통령 탄핵이 의제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여권은 비상한 각오로 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압도적 의석을 무기로 거칠게 밀어붙이는 야당의 권력은 의석수에서 나오는 게 아니고, 여권의 무능과 민심 이반의 반사이익의 결과다. 順天者(순천자)는 복(福)이요, 逆天者(역천자)는 화(禍)란 말을 새겨야 한다.

▲국민의힘 나경원(왼쪽부터), 원희룡, 한동훈, 윤상현 당 대표 후보가 11일 서울 중구 MBN 스튜디오에서 열리는 2차 당 대표 후보 방송토론회에 앞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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