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희망] ⑤ 40만 우간다 빈민의 주치의…"건강 허락하는 한 환자 옆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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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5.01.05. 오후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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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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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 만류에도 25년간 '봉사의 인술' 펼친 임현석 베네스다 메디털센터 원장
"1달러 없어 숨지는 아이들…어떤 의사 되려는가, 돈 벌려면 의사해선 안 돼"


우간다 의료소외계층-난민 치료, 임현석 원장 아산대상
(서울=연합뉴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인 베데스다 메디컬센터 임현석 원장이 2000년부터 우간다에서 소아 뇌전증 환자 등을 치료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36회 아산상 대상 수상자로 24일 선정됐다. 사진은 베데스다 메디컬센터 임현석 원장과 우간다 소아 환자들. 2024.9.24 [아산사회복지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최원정 기자 = "이제는 한국이 객지가 돼서 잠깐 귀국해도 빨리 우간다로 돌아오고 싶습니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밀린 일도 많고 환자들도 눈에 밟히고요. 짜장면 정도만 꼭 먹고 돌아옵니다."

25년간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의료 봉사를 해온 베네스다 메디컬센터 임현석(59) 원장은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지난달 24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2002년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 베네스다 클리닉을 연 임 원장은 소아 뇌전증 환자를 비롯해 아프리카의 의료 소외계층과 난민을 치료해왔다. 임 원장의 손을 거친 환자는 현재까지 40만여명에 이른다.

임 원장이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크리스천으로서 봉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직업"이라는 담임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공대 대신 의대에 진학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같은 의사를 꿈꾸며 전문의 자격도 소아과로 취득했다. 지금도 여성 1인당 평균 4명의 아이를 낳는 '다산의 땅' 아프리카에서는 소아과 의사가 특히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막연한 꿈이 선명해진 것은 한 대학병원에서 교수로 일하던 1999년이었다. 임 원장은 우간다에서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정부파견의사'로 일하던 경북대 의대 선배가 병원을 짓는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사직서를 냈다.

IMF 외환위기의 여파로 실업난이 극심하던 때였다. 안정된 의사 생활을 뒤로 하고 아프리카로 떠나겠다는 임 원장의 이야기를 들은 친지들의 반대는 거셌다.

더욱이 이디 아민의 잔인한 독재와 끝없는 내전 등 부정적 이미지로 각인된 우간다로 가겠다고 하니 "미쳤느냐"고 되묻는 이도 있었다.

설립 초기 베네스다 클리닉
[임현석 원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00년 6월 의대 동기인 아내와 어린 자녀와 함께 첫발을 디딘 우간다에서의 생활은 막막했다. 병원 부지조차 마련되지 않아 그야말로 허허벌판만이 임 원장을 맞이하고 있었다.

임 원장은 '작업반장'이 돼 청진기 대신 삽을 먼저 잡아야 했다. 부모님 또한 낡은 트럭을 몰고 흙먼지를 날리며 각종 공사 자재를 나르던 아들을 직접 보고는 "이곳에는 희망이 없다"며 한국으로 돌아가기를 여러 차례 권했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사실 회의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1달러가 없어 말라리아를 제때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거나 영구적 장애를 가지게 된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떠날 수가 없었죠.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고 보내셨으니 책임지고 도와주실 거라는 믿음으로 견뎠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세워진 작은 병원은 이제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가 돼 30만여명이 이곳을 거쳤다. 처음에 5명뿐이었던 직원도 지금은 40여명에 이른다.

임 원장은 이곳에서 현지 사립병원의 30∼50%의 비용으로 환자를 진료한다. 임 원장은 "직원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병원이 되자'고 강조한다"고 전했다.

한 달에 한두 번은 수단과 콩고 등 인근 국가에서 내전을 피해 우간다로 들어온 난민촌을 찾아 무료 진료도 하고 있다. 나일강을 건너는 등 이동 시간만 9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강행군이다.

안과 전문의인 아내는 임 원장의 든든한 우군이다. 임 원장은 국제실명구호기구인 '비전케어'의 우간다 지부장으로서 아내와 함께 백내장 환자들의 무료 수술도 지원하고 있다.

"백내장 수술은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들 하죠. 실명된 전파상을 수술해준 적이 있는데 '다시 일할 수 있게 됐다'며 만날 때마다 감사 인사를 받아요. 그럴 때마다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구나' 생각하며 보람을 얻고 마음을 다잡곤 합니다."

임 원장은 "우간다 사람들이 한국보다 물질적으로는 가난할지 몰라도 더 여유 있고 낙천적이어서 배우는 점도 많다"고 말했다.

"한국 돈으로 300원 정도라도 치료비를 받아서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있어요. 우간다 사람들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거죠. 가르치고자 한다는 교만한 마음은 내려놓고 이분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친구가 되려 합니다. 이미 우간다는 제게 제2의 고향입니다."

올해 한국은 의정갈등 장기화로 몸살을 앓았다. 의대 모집 정원이 확대되면서 의대에 지원하는 상위권 학생들도 급증했다.

임 원장은 "돈을 벌려면 사업을 해야지 의사를 해서는 안 된다"며 "스스로 '어떤 의사가 되려 하는가' 묻고 의사의 길을 걷는 학생들이 많아진다면 신뢰도 자연스레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임 원장은 더 나은 환경에서 환자를 진료할 수 있도록 지상 5층으로 병원 증축도 계획하고 있다.

"언젠가 병원 행정과 경영을 담당할 분이 오신다면 원장직에서 물러나 제 전공인 소아과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하고 싶습니다. 뇌전증과 발달장애 환자들의 재활도 돕고 싶고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우간다에 남아 환자들을 계속 돌볼 겁니다."

난민촌에서 환자를 돌보는 임현석 원장
[임현석 원장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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