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010130)이 6월 30일로 만료되는 영풍과의 황산취급 대행 계약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고 종료하기로 했다. 70년 동안 재계의 대표적인 '한 지붕 두 가족'이었던 두 회사는 배당 정책, 정관 변경, 계열사 경영권 등을 두고 분쟁을 이어가는 가운데 상호 얽혀 있었던 사업 분리에도 속도가 붙는 분위기다.
15일 고려아연에 따르면 현재 고려아연 온산제련소는 20기의 황산탱크를 운영하고 있으며 영풍의 석포제련소가 보내는 40만 톤을 포함해 연간 160만 톤의 황산을 처리하고 있다. 이번 취급대행 계약을 종료하기로 한 황산은 아연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부산물로 독성이 강한 유해화학물질이다. 사고 예방을 위한 엄격한 관리와 함께 화학물질관리법에 따른 여러 의무와 부담 등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는 물질이라는 얘기다.
사용 공간이 부족하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이번 결정의 배경이다. 황산관리 시설 노후화에 따른 일부 시설이 폐기된 데다 자체 생산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서다. 특히 2026년에는 자회사 켐코의 ‘올인원 니켈 제련소’가 본격 가동되면서 연간 18만5000톤 규모의 황산이 추가 생산될 예정이다.
석포제련소에서 나오는 황산 물량은 가까운 동해항 탱크로 옮겨 처리하라는 게 고려아연의 입장이다. 다만 고려아연은 기존 계약과 양사 간 지속돼 온 협력 관계를 고려해 영풍 측이 자체적인 황산 관리시설을 마련할 수 있도록 충분한 유예 기간을 주는 쪽으로 상호 협의를 해 나갈 계획이다.
하지만 영풍은 고려아연의 결정으로 인해 국내 아연 시장이 위축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아연 생산능력 기준으로 온산제련소와 석포제련소는 각각 세계 1위, 3위 비철금속 제련소다. 영풍 관계자는 “황산 처리 문제로 인해 석포제련소가 제대로 아연을 생산하지 못하게 되면 국내 아연 공급에 미치는 악영향이 클 것”이라며 “고려아연이 공동으로 영위했던 사업을 일방적으로 중단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황산 처리 협력 관계까지 사라지면서 고려아연과 영풍 간 경영권 분쟁은 더욱 격화되는 모습이다. 앞서 이달 9일 고려아연은 영풍과 진행해 온 원료 공동구매 및 공동영업을 끝낸다고 밝혔다. 그동안 양사는 아연 등 주요 품목에 대해 원료 구매와 제품 판매 과정에서 공동계약을 체결했다. 원료 공동 구매를 맡던 서린상사 경영권 확보 싸움도 이어지고 있다. 서린상사는 고려아연과 영풍의 생산제품을 모두 유통하는 고려아연의 알짜 계열사지만 경영권은 영풍 측이 쥐고 있다. 고려아연은 더 이상 핵심 유통 사업을 영풍에 일임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서린상사 경영권을 찾아오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