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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일하는 방식이 즐기는 편이 못 돼요. 외려 스스로 학대하죠.'베를린'을 촬영하면서 식욕도 없어졌어요."
'부당 거래'이후 3년 만, 류승완(40·사진)감독이 신작'베를린'을 들고 다시금 충무로를 찾았다. 21일 언론과 평단에 영화가 첫 공개된 후 다음 날,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류 감독의 얼굴에는 긴장감과 설렘이 혼재돼 보였다.
"10년 넘게 영화 일을 하면서 이렇게 긴장하기 처음인 것 같아요. 영화 완성작을 보니 다시 손 보고 싶은 부분이 계속 눈에 띄더라고요. 고통스러웠죠."류 감독은 "전작들에 비해 큰 예산(약100억원)을 들여 만든 영화에다 혹 좋은 배우들(한석규·하정우·류승범·전지현)을 데리고 이것 밖에 만들지 못하냐는 말을 들을까 두렵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규모에 대한 부담 못지 않게"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높은 영화에 대한 기대치도 걱정이었다"고 했다."경험에 비춰봐도 기대치가 높으면 으레 관객들이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를 미리 머릿속에 그려놓고 영화를 보거든요.'그걸 과연 충족 시킬 수 있을까'두려움이 몰려오더라고요."
영화는 냉전의 열기가 식지 않은 베를린이라는 공간에서 자신을 감추고 살아가는 스파이들이 서로 표적이 돼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첩보 액션물이다. 북한 내부의 권력관계에서 비롯된 갈등과 그로 인한 음모와 배신을 중심 구도로 한국·미국·독일·이스라엘, 아랍권까지 이야기가 얽혀 펼쳐진다.'충무로 액션 키드'라는 별칭에 걸맞게'베를린'의 진가는 현실감이 깃는 액션에서 빛을 발한다. 총은 물론 전기줄, 통조림 등 다양한 생활 소품들을 활용한 액션 연기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고도로 훈련된 사람이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상황을 보여줘야 했고, 거기에 충실 하려 노력했어요. 통조림을 액션에 활용한 것도 촬영 현장에서 정두홍 무술 감독과 즉석에서 고안해낸 겁니다. 자연스럽지만 절도 있고 강력한 액션을 선보이려 했습니다."
공간이 지닌 힘을 중요시 여기는 류 감독의 세밀함은 영화 곳곳에 스며 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부감 샷(높은 위치에서 내려다 보며 촬영한 것)은 물론 극 중 배경이 되는 베를린 특유의 쓸쓸한 기운이 영화 전반에 엄습해 있다. 류 감독은"실제 하는 베를린과 흔히들 우리가 이미지로 그리는 베를린의 모습에는 차이가 있다"며 "베를린 현지 촬영은 물론 스산한 베를린의 느낌을 좀 더 살리기 위해 이 느낌이 많이 묻어난 유럽 라트비아에서도 촬영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제작 여건 상 두 달 간의 해외 현지 촬영 외에 나머지 분량은 실내 세트장에서 그대로 구현해 촬영했다. 이 밖에도 영화는 극 중 스파이들이 하는 연락 접선 방식과 그들이 사용하는 암호, 간첩 식별법, 이스라엘-북한 간 관계 등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류 감독은" 2011년 다큐멘터리'타임-간첩'촬영 당시 실제로 방송으로는 노출되지 않았던 이들이 건넨 생생한 이야기들이'베를린'을 찍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다.
3년 만에 내놓은 류 감독의 신작'베를린'은 그간의 작품에서 보여준 류 감독 특유의 스타일과 강점을 적절히 녹여 폭발시킨 결과물에 가깝다. "유명세가 스스로를 묶는 사슬 같다. 유명한 감독이기보다 유능한 감독이고 싶다"는 류 감독은 자신의 새로운 작품 앞에 아직은 무언가 조심스럽고 주변의 기대가 자못 어색하고 두려운 모습이었다.
"보는 관객이 영화 전반부 한 시간을 얼마나 집중해서 영화 속에 들어오느냐에 따라 후반 한 시간이 즐거울 수 있는 영화죠. '베를린'은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영화 속에 들어와야 파괴력이 생기는 영화입니다. 요즘 영화 소비문화에서 건조하고 냉혹하며 거기다 복잡한 구조가 깃든 이 영화를 사람들이 얼마나 받아들이고 공감할 수 있을지 두렵기도 하고 기대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