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4월22일] <1376> 블루리본상


1838년 4월22일 정오, 미국 뉴저지주 샌디후크항. 석탄부족으로 나무를 때느라 여기저기가 뜯긴 증기범선 시리우스호가 군중의 환호 속에 입항했다. 소설가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1872년작)’에도 영감을 줬다는 시리우스호는 왜 멀쩡한 돛을 펼치지 않고 나무를 땠을까. 증기동력만으로 대서양을 가장 빨리 건너는 여객선에 주어지는 블루리밴드(Blue Riband)상을 의식해서다. 시리우스호의 기록은 18일14시간22분(평균시속 8.03노트). 범선으로 40일씩 걸리던 항해기간을 절반으로 줄인 시리우스호는 최초 수상이라는 영예를 얻었으나 기록은 단 하루 만에 깨졌다. 영국의 그레이트이스턴호가 8.66노트 기록을 세웠기 때문. 미국 이민수요를 타고 황금기를 구가하던 대서양노선에는 이때부터 본격적인 경쟁이 붙어 1843년과 1889년, 각각 10노트와 20노트의 벽이 깨졌다. 각국이 보조금을 퍼부으며 블루리밴드 수상경쟁에 매달린 끝에 1936년에는 ‘마의 30노트’선도 넘어버렸다. 요즘 건조되는 ‘초고속 컨테이너선’의 평균 시속 25노트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다. 경쟁에는 군사적 전용이라는 숨은 목적이 깔려 있었다. 처칠 영국 총리가 ‘블루리밴드를 따내려고 건조한 대형 여객선이 병력을 수송한 덕분에 2차대전을 1년 남짓 빠르게 끝낼 수 있었다’고 말했을 정도다. 대형 여객선으로는 최고 기록인 35.59노트(1952년)까지 도달했던 미국의 유나이티트아메리카호도 유사시 병력수송용이었다. 수상자격이 여객선에서 모든 선박으로 넓어진 후 비공식적으로 50노트 이상을 내는 소형 특수선도 나왔지만 사람들은 초대형 여객선이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리던 시절을 기억한다. 바다와 속도가 주는 로망 때문이리라. 도전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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