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천국을 만들자] 2. 구악의 고리를 끊어라

청탁.로비등 악습 글로벌시대엔 안통해5.16혁명 직후인 지난 62년 당시 박정희 최고회의의장은 H그룹 창업자인 K씨로부터 낚시초대를 받았다. 이 그룹 공장에 큰 연못이 있는데 "고기가 많으니 낚시하러 오시라"는 초대였다. 낚시광이었던 박대통령은 K씨 옆자리에 앉아 이 연못에서 월척을 낚으며 하루를 만끽했다. 그러나 이 연못에 있던 붕어는 K씨가 박대통령의 기분을 좋게하기 위해 트럭으로 사다 집어넣었던 것이다. 이처럼 과거 우리기업은 정치권의 환심, 특히 청와대의 눈치를 보며 사업을 했다. 정부의 도움없이 기업을 만들고 키우기가 불가능했던 시대를 살아야 했던 개발연대 기업인들에게 정부와 밀월관계를 통한 이권청탁은 '선택' 아닌 '필수'였고 기업인들이 이런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경영을 해왔었을까 짐작케 한다. 한 퇴직 경제관료는 "S그룹을 창업했지만 지병으로 일찍 유명을 달리했던 C회장의 근무지는 당시 고위공무원이 자주 드나들던 고급요정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화장실 앞에서 C회장과 우연히 마주쳤는데 막 토하고 나오는 길이라며 또 다른 약속이 있어서 먼저 자리를 뜬다"고 황망이 어디론가 달려갔다고 전했다. 그는 "그 회장이 다른 사람보다 먼저 세상을 등진 원인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아마 좋아하지 않은 술을 너무 많이 마신게 가장 큰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은 개발연대에 우리 기업인들이 필연적으로 겪어야 했던 과정으로 전문가들은 이해하고 있다. 해방후 정부와 기업들은 적극적인 경제개발의지는 강했지만 정작 국내에 축적된 자본이 절대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정부는 부족한 자본을 동원하는 한편 특정산업 및 기업, 기업가를 정해 자본을 배분하는 정책을 폈다. 핵심사업에 돈을 몰아준후 주변산업을 끌어올리는 이른바 '임팩트 폴리시(Impact Policy)'를 폈기 때문에 기업들의 로비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얘기다. 선택된 산업이나 기업이 일정수준까지 경쟁력을 갖추기 전까지는 독과점적 특혜도 부여한 것도 로비를 부추겼다. 기업과 기업인들은 어떻게 하면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것인가하며 기술개발에 매달리기보다는 청탁과 로비에 매달리게 했고 이는 IMF구제금융 직전까지 계속됐다. 이렇다보니 기업들은 세계화, 국제화를 부르짖으면서도 글로벌 시대의 큰 물결을 제대로 경영과 경쟁에 반영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고, 군사독재시절 몸에 밴 정경유착과 금융특혜, 변칙회계로 그룹을 키우는데만 열중했다. 그렇게 키운 부의 세습과정도 투명하지 못했다. 경영권을 2세, 3세들에게 넘겨주는 과정에서도 합법을 가장한 각종 편법을 동원했다. 이 때문에 '단군 이래 세계사적으로 가장 잘사는 사회를 만들었다'는 그들의 노력은 퇴색할 수 밖에 없었다. 이같은 상황은 기업을 부정적으로 보는 불씨를 제공했고 기업과 기업인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정황만 놓고 기업과 기업인들이 경제성장과정에서 보여준 이 행태를 매도만 할 수 있을까. 그들은 암울한 시대상황에서도 신화를 만들어냈고 국가발전에 엄청난 이바지를 했다. 기업이 뭔지도 잘 모르던 시기에 돈을 벌어 국민들에게 기업하는 법을 일깨웠고 동유럽ㆍ동남아ㆍ아프리카등 선진국 경쟁자들마저 좀체 가지않았던 오지에 태극기를 꽂으며 외화벌이에 밤과 낮을 지새웠다. 부정적인 모습도 많지만 이들의 공헌도 이에못지 않을 정도로 컸다는 얘기다. "경제개발 초창기에는 설비투자수익률이나 부동산투자수익률 등이 모두 은행의 이자율을 웃돌았다. 때문에 정책자금을 얼마나 더 많이 확보하느냐가 기업의 사활을 좌우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경제개발 초창기 기업들의 경영형태가 차별화된 경영전략이나 기법을 통한 이윤확보보다, 자금조달과 독점적 지위확보를 위한 이권청탁에 집중돼 있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기업사도 예외가 없었지만 선진 외국기도 초창기에는 이런 형태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금융감독원 이태규 조사연구국장). 국내외 기업성장사를 연구해온 이 국장의 말은 기업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입증해준다. 그의 말은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 기업과 기업인들이 노출해온 비합리적인 구습은 자본주의 발전단계상 당연히 거치는 절차와 상황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폐해는 너무 컸다. IMF체제후 우리 기업과 기업인들이 거대한 공공의 부채를 끌어다 자신들만의 부의 성을 쌓는데 사용했다는 증거와 사실, 규모들이 속속 드러나 충격을 줬다. 지난해말까지 기업들이 설비확장 등의 명분으로 은행에서 무분별하게 끌어다 쓴 후 갚지 못하게 된 부실채권을 메우기위해 투입된 공적자금은 무려 129조원에 이르렀다. 우리나라가 한해 살림을 하는데 쓰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이다. 이것도 모자라 올해 추가로 40조원을 새로 조성했지만 이 돈도 모자란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동원경제연구소 송상훈 연구원은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론'을 거론하고 있다. "슘페터가 얘기한 창조적 파괴는 새로운 도약은 과거질서와 체계의 파괴를 통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기업과 기업인의 비극은 해외 선진기업들과 달리 내부적인 경영혁신과 관행개선을 통한 혁신이 아닌, IMF구제금융을 통해서야 비로소 창조적파괴를 경험했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관행과 구악의 고리를 끊어야 될 상황은 기업 외부환경에서도 강제되고 있다. IMF 3년을 겪은 우리 기업환경은 투명경영ㆍ유리알경영이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 환경에 순응해야만 기업과 기업인들이 그동안 고생해 온 모습들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최근 세계최대의 회계 및 컨설팅그룹인 미국PWC가 주요 35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불투명지수'에서 한국은 5위. 기업경영의 국제적인 정합성을 목표로 구조조정을 추진해왔지만 아직도 우리기업의 투명성은 세계기준에 비춰서는 여전히 낮다는 것이다. 우리 주식시장의 30%이상을 장악한 다국적 자본들이 최대불만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도 투명성 부족이다. 그들은 대우ㆍ현대ㆍ동아등 일부그룹들의 몰락과 쇠퇴를 거론하며 투자한 기업이 불합리한 관행과 경영행태를 보이면 가차없이 투자금을 빼가겠다고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경영인은 과거 '정치는 3류'라는 말로 기업활동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표현했지만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상황도 여전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업과 기업인들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최고경영자는 "잘되는 나라, 잘사는 나라 국민들은 실패한 기업과 경영자를 분노의 단두대에 올리기보다 그의 실패에서 다시는 무너지지 않을 성공의 열쇠를 찾는 쪽에 열중한다"며 과거 관행에서 탈피하려는 우리기업들의 노력을 지켜봐달라고 주문했다. 특히 IMF를 계기로 창업세대와 다른 경영논리로 무장하고 해외에서 합리적인 경영수업을 받은 후계자들의 이같은 노력은 주목할만 하다. 아버지로부터 기업을 물려받은 한 2세경영자는 "우리들은 창업세대가 그 시대상황에서 보여준 역동성을, 투명성이 요구되는 달라진 환경속에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며 "기업들이 청부(淸富)를 추구할 수 있는 사회 전체적인 경쟁환경조성도 우리사회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만큼 그들도 구악의 고리를 끊기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고 이것만이 살 길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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