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외과용 수술기구 →80년대 가정용 의료기기 →90년대 인체 매식재료인 임플란트 →2000년대 ITㆍBT응용 의료기기 및 기술 연구돌입솔고바이오메디칼(회장 김서곤)의 주력 사업부문의 변신 과정이다.
김서곤 회장이 "다각화 보다는 변신이라는 표현이 적합한 것 같다"라고 말한 것은 의료기 및 의료기술이라는 한 우물만 파면서도 그 시대와 시장상황에 맞는 제품을 지속 개발, 출시해 주력부문을 변화시켜왔기 때문이다.
74년 김 회장은 수술용 칼, 가위 등을 제조하는 회사로 창업했다. 당시 쇠톱, 망치, 그라인드, 공원 1명이 다였다.
6.25이후 우리나라 의료기구는 산업자체가 형성되지 못해 가장 먼저 수입자동승인품목으로 지정되어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을 당시였다.
워낙 어려운 상황에서 1%만의 가능성을 가지고 창업한 김 회장은 "벤처는 98년에 지정 받았지만 사실 창업때 이미 벤처였던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은 1만가지이상의 수술기구중 1,800여 가지를 생산하고 수출도 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워낙 인건비 비중이 높은 사업이라 부가가치가 점차 낮아지자 김 회장은 가정용 의료기기로 주력 아이템을 바꿨다.
"당시 88 올림픽 전후해서 자석요가 대유행이었는데 바로 가정용 의료기기 시장의 본격적인 전개를 암시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온열전위치료기, 저주파 치료기, 휴대용 혈압계, 정수기 등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솔고의 변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90년초 뼈나 척추의 고정에 사용되는 금속 매식재료인 임플란트 사업을 개시, 외국산과 비슷한 수준으로 제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국내 의료기관들이 사용을 해주지 않았다. 그러다 97년 환란사태가 터지고 환율이 치솟자 일부 병원을 시작으로 공급이 시작돼 지금은 국내 유명 병원들의 대부분에 공급하고 있다.
"임플란트는 사장될뻔 했어요. 환란 덕을 봤지만 우리제품의 품질이 뛰어나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고 김 회장은 회상한다.
2000년에 들어서는 IT와 BT혁명 시대에 대비에 관련 연구와 의료기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전략은 기존과 달랐다.
수술용 기구나 가정용 치료기 개발때만해도 혼자힘으로 국산화에 주력했지만 이번에는 적극적인 제휴전략을 펼쳤다.
국내 병원가로부터 얻은 솔고의 명성과 영업망, 자체개발 기술을 다른 업체와 제휴를 통해 시장을 적극 개척하고 있다. 가장 먼저 선보인 것이 의료영상정보시스템인 PACS.
이분야 전문업체인 마로테크와 제휴, 병원 영상정보시스템 솔루션과 컨설팅, 네트워그를 구축하고 있다.
이밖에도 이회사는 국내외 유명업체와 제휴 인조피부, 초미세 생체전자시스템, 전기화학 암치료기(ECT) 연구 및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조충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