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과 삼성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의 최고위 경영진이 미국·일본 출장길에 오른다. 메모리·파운드리 등 핵심 사업에서 맞닥뜨린 수율 부진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공급망 점검으로 풀이된다. 출장 일정에서 핵심 반도체 고객사와의 만남도 포함돼 있을 것으로도 관측된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전 부회장과 각 사업부장들은 다음 주부터 삼성전자 DS 부문이 일본과 미국에서 개최하는 ‘감사의 날(Appreciation Day)’ 행사에 참석한다. 이들은 주초에 일본에서의 일정을 챙긴 후 곧장 미국으로 날아가 동일한 행사에 참여한다.
‘감사의 날’은 삼성전자 고위 경영진은 물론 회사의 칩 제조에 필요한 소재·부품·장비 업체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다. 협력사와 파트너십을 굳건히 하겠다는 의지를 전달하면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비전이나 현황을 공유하기도 한다. 삼성전자는 이 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해왔다. 다만 최근 회사가 회사 핵심 사업의 제조 라인에서 복합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분위기에서 DS 부문 수장과 최고위 경영진이 총출동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최근 삼성 반도체 부문은 여러 측면에서 주춤하다. 메모리 사업의 경우 D램 수율이 발목을 잡고 있다. 올해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의 경우 삼성은 엔비디아의 8단 5세대(HBM3E) 제품에 대한 승인(퀄)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라이벌인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12단 HBM3E를 납품하기 위해 생산을 시작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경쟁사가 8월에 개발을 끝낸 10나노 6세대(1c) D램도 생산 수율이 10%를 밑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운드리에서도 3㎚(나노미터·10억 분의 1m) 수율이 생산성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대만 TSMC의 독주를 막을 동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삼성전자의 위기는 공급망과도 큰 연관이 있다. 삼성의 주요 반도체 공장 안에는 수만 가지의 장비·부품이 적용됐고 고도화한 기술로 정제한 소재가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과의 호흡과 협력 방향이 생산성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삼성 경영진은 단순히 공식 행사 참석에서만 그치지 않고 출장 시간을 활용해 다양한 공급망 관계자들과 만나 공정별 문제점 파악과 기술 개선 전략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의 방문지인 미국과 일본에는 반드시 협력해야 하는 장비·소재 회사들이 즐비하다. 일본에는 HBM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상당히 밀접하게 협력하는 장비 회사인 신카와가 있다. 삼성이 올해 HBM 생산 능력을 대폭 끌어올리기 위해 신카와 장비를 대량 발주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의 주력 HBM 공정인 TC-NCF에서는 핵심 소재인 비전도성필름(NCF)을 일본 레조낙이 단독 공급한다. 미국에는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램리서치·KLA 등 반도체 장비 업계에서 굴지의 회사, 케이던스·시놉시스 등 설계 소프트웨어를 주름잡는 회사들이 포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전 부회장과 DS 부문 경영진이 미국 출장에서 ‘빅테크’ 기업들을 만날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했다. 삼성은 파운드리 사업부에서 메모리-시스템 반도체 제조-패키징으로 이어지는 회사만의 ‘원스톱 솔루션’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엔비디아·인텔·AMD·퀄컴 등 기라성 같은 빅테크 기업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TSMC와 달리 삼성은 대형 수주로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해 기술 개발과 함께 적극적인 영업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요한 계약 건이 없더라도 핵심 고객사들의 요구 사항을 듣고 매력적인 제안을 하기 위해 빅테크와의 회의를 마련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경영진의 미국·일본 출장 건에 대해 “경영진의 일정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