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통령실

[기자의 눈] 軍이 손을 떼야 개혁 시작된다

허세민 정치부 기자





“국민들은 군대 내 성 비위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생각합니다. 지휘관부터 솔선수범해 민주적이고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확립해 주기를 바랍니다” (문재인 대통령)



성폭력 피해 공군 여성 부사관의 사망 사건 후 나온 발언이 아니다. 문 대통령의 이같은 지시가 있었던 시점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3년 전 당부가 무색하게 군 성범죄는 재발했다. 결국 문 대통령은 지난 6일 “국민께 매우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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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은 ‘군 셀프 개혁’의 실패를 방증한다. 성폭력 가해자와의 즉각 분리 등 군은 스스로 세운 피해자 보호 대책을 준수하지 않았다. 부사관의 폭로는 솔선수범해야 할 상관들의 위력이 삼켜 버렸고, 결국 죽음을 통해서야 세상에 드러났다. 여성 군인을 ‘전우’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 인식하는 본질적 문제는 건드리지도 못했다. “우리 군 스스로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변화하고 혁신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믿는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에 회의적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군이 신뢰 받는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자정 능력에 기대선 안 된다. 이미 군 검찰이 늑장 대처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방부 검찰단도 큰 틀에서 한 식구나 다름 없다. 민간이 참여하는 군 검찰 수사심의원회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쇼에 불과하다”는 등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개혁을 위해 당·정·청이 머리를 맞댔듯 외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청문회, 특별검사 도입 등 야당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번 단일 사안에서 멈추지 않고 군 사법 시스템을 전면 재검토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부대 지휘관이 군사법경찰과 군 검사를 감독하고 양형 감경권까지 쥐고 있는 한 군의 성범죄 악순환은 반복될 것이다. ‘솜방망이 처벌’이 만연한 고등군사법원의 폐지를 담은 법률 개정안도 이제는 논의될 시점이다. 국회의 조속한 처리를 당부한 문 대통령의 주문은 이번이 마지막이 돼야 한다. 무엇보다 군을 전적으로 믿은 대가로 너무나 큰 고통이 뒤따랐다는 사실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허세민 기자 [email protected]


허세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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