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용처도 없이 규모만 정한 ‘본말전도 추경’

정부가 고민 끝에 결국 추가경정예산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정부는 28일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추경 10조원을 포함해 총 ‘20조원 α’의 재정 패키지를 동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등 대외여건 악화와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일자리 확충 효과가 큰 사업을 중심으로 예산을 편성하되 특히 구조조정 진행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업과 지역경제 위축에 집중 대응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차질없이 수행된다면 올해 성장률을 0.2~0.3%포인트 정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정부의 기대다.


과연 정부의 기대대로 될까. 추경은 긴급한 필요로 발생하는 일시적 예산이다. 당연히 어느 곳에 얼마나 투입돼야 하느냐가 먼저 결정돼야 한다. 하지만 급하게 추경을 짜다 보니 정부는 ‘20조원 α’라는 규모만 정했을 뿐 용처는 제시하지 못했다. 설명이라고는 고작 “구체적인 분야와 재원 배분은 향후 편성과정에서 결정할 것”이라는 게 전부다. ‘본말전도’ ‘깜깜이 추경’이라는 비판이 등장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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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메르스 추경 때도 똑같은 경험을 했다. 11조원 넘게 책정하면서도 국회 제출 전까지 어디에 쓸지 내용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그 결과 메르스나 가뭄과는 전혀 관계없는 지방 고속도로 건설, 중소기업 및 창업 지원 등이 추경에 끼어드는 것을 막지 못했다. 올해도 야당에서는 예산 일부를 누리과정 예산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투입 효과는 없이 국민 부담만 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추경은 타이밍”이라며 “국회에서 조속히 처리해달라”고 당부했다. 맞는 얘기지만 선후가 틀렸다. 용처에 대한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빠른 국회 통과에 우선돼야 한다. 가뜩이나 추경 무용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치권의 포퓰리즘이 끼어들 여지를 차단하지 못한다면, 예산이 엉뚱한 곳으로 새 나간다면 이번에도 실패작이라는 평가를 받을지 모른다. 추경은 타이밍보다 선택과 집중이 훨씬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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