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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고전 속 가족의 일그러진 모습 파헤쳐

■ 가족기담 (유광수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삼국유사에는 '손순매아'라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가장인 손순이 노모를 더 극진히 모시기 위해 자신의 어린 자식을 땅에 묻으려고 산에 올라갔다. 그러다가 땅에서 돌 종을 발견하게 되고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임금이 손순을 '지극한 효자'로 칭송해 상을 내렸다는 게 줄거리다. 저자의 의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정말 손순은 효도하기 위해 아이를 생매장하려던 것일까. 저자는 손순이 가난한 살림에 하나라도 먹을 입을 덜기 위해 자식 살해를 모의했던 것이고 그것을 '효'라는 명목으로 치장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아무리 손자가 자신 밥상의 음식을 자꾸 집어먹는다 해도 노모가 손자를 땅에 묻어버리길 원했을 리가 없다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이런 잔혹한 얘기가 우리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헨젤과 그레텔'이야기도 계모의 윽박을 못 이긴 무능한 아버지가 깊은 산속에 어린 남매만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흉년이 들어 살림이 궁핍해지자 입 하나라도 덜기 위해 남매를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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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처럼 고전속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을 따뜻하게 이해하는 존재가 아니라 치열한 이해관계로 해석한다. 자식은 언제나 부모를 배반하고 새 질서를 찾으려 한다는 것, 각 구성원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부모에게, 자식에게, 남편에게, 아내에게 무엇이라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효성스러운 아들, 절개를 지키는 열녀, 지엄한 남편과 정숙한 부인은 옛 이야기에 자주 나오는 레퍼토리지만 그 속에 나타난 가족 이야기를 파헤치며 인간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여준다. 악독한 계모에게 모진 구박을 받다 억울하게 죽은 장화와 홍련이라는 두 자매의 원한을 고을 사또가 풀어주었다는 내용의 전래동화 '장화홍련전'. 계모가 전처의 자식인 장화와 홍련을 구박할 때 아버지 배좌수는 뭘 하고 있었을까. 배 좌수는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제일 먼저 딸의 침소를 찾는 등 언제나 두 딸을 감쌌다. 하지만 배 좌수는 딸들이 계모에게 구박받는 것을 알면서도 정작 시집보낼 생각은 하지 않았다는 게 저자의 해석이다. 전처가 죽기 전에 두 딸이 장성하면 시집 보내달라고 유언을 남겼지만 배 좌수는 도무지 딸들을 시집 보낼 생각이 없었다. 저자는 이런 정황을 근거로 "(계모의) 다른 모함에는 끄떡도 않던 배 좌수가 장화가 낙태했다는 계모의 날조에는 순식간에 홀라당 넘어갔다"면서 배 좌수의 성적 학대의 가능성을 제기한다. 결국 '장화홍련전'의 진짜 문제 인간은 계모 허 씨가 아니라 장화 홍련의 아버지 배좌수라는 것이다. 1만4,000원.

정승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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