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 산책] 나를 찾아 데려오는 여행


폭염이 한창이다. 아스팔트도 뜨겁고 자동차도 뜨겁고 빌딩의 유리창도 뜨겁다. 뜨거운 것들은 서로 어우러지면 더욱 뜨거워지는 법. 해가 져도 도심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바람길은 이미 콘크리트 절벽으로 가로막혀 있다. 불쾌지수가 벌레처럼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이맘때면 사람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같은 말을 내뱉는다. '올해는 유난히 못 견디겠어.' 해마다 반복되는 우리네 여름 풍경이다. 그러나 이처럼 해마다 유별나게 덥다고 느끼는 것은 온도계의 수은주 탓만은 아닐 것이다. 해마다 더욱 각박하고 급박하게 질주하는 일상성의 회로가 몸의 주체적 대응력을 무력화시키기 때문이다.

충전하고 누리고 가슴에 담아보자


그런 탓일까. 언젠가부터 휴가를 떠나는 행렬이 연중행사로 정착됐다. 자동차 경적과 엘리베이터의 기계음 대신 새와 파도 소리로 귀를 적시고 빽빽한 인공구조물 대신 아득한 별밭을 마음껏 우러러보기 위해 길을 나선다. 몸이 스스로 살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그러나 휴가는 극히 제한된 시간만을 허용한다. 휴가기간이 만료되면 우리는 또 다시 일상의 충실한 식민으로 귀환해야 한다.

그렇다면 일상으로부터 벗어난 여행지에서의 가장 좋은 휴가란 어떤 것일까. 청록파 시인 조지훈이 수필 '술꾼 18단계'에서 술꾼을 술의 진미를 모르는 부주(不酒ㆍ술을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는 사람ㆍ9급)와 외주(畏酒ㆍ술을 마시긴 하나 겁내는 사람ㆍ8급) 등에서부터 열반주에 해당하는 폐주(廢酒ㆍ술로 말미암아 다른 술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ㆍ9단)에 이르기까지 18단계로 나누었듯이 휴가의 여행 등급을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 있으리라.

여행의 가장 초보적인 1단계는 지친 심신의 휴식이다. 이때 여행지의 장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일상의 시간 주기를 이탈해 내생적 몸의 리듬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처음에는 혼란스럽게 느껴지지만 곧 평정의 질서를 찾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일상의 복귀를 위한 일회적인 자기 충전 과정에 그치는 한계를 지닌다. 충전된 힘은 금세 일상 속에서 소진되고 만다.


이보다 좀 더 높은 2단계는 여행지의 풍경을 마음껏 향유하고 감상하고 가슴에 담는 것이다. 이때 타성적 삶에서 잠자던 희귀한 감각이 꿈틀거리며 깨어나는 싱그러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내 마음의 풍경이 된 여행지는 기억의 시간이 다할 때까지 오랫동안 삶의 활력소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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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은 3단계는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여행이다. 이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다음 시편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함축적으로 암시한다.

한나절은 숲 속에서/새 울음소리를 듣고

반나절은 바닷가에서/해조음 소리를 듣습니다

언제쯤 내 울음 소리를/내가 듣게 되겠습니까 (조오현 '내 울음소리')

일상에 휘둘리지 않는 내공 얻기를

시인은 스스로 감각적 청각을 넘어 마음의 청각을 깨우고자 노래한다. 본래의 제 모습대로 빛과 소리를 발하는 무위의 자연 앞에서 문득 자신의 참모습을 찾고 있다. 내 울음 소리를 내가 듣는다는 것은 자신의 근원을 만난다는 것이리라. 밖으로 향한 여행이 자신의 견고한 내면의 오지를 두드리고 있다. 앞의 1ㆍ2연이 2단계 여행 등급에 해당한다면 3연은 3단계에 해당한다. 3연은 낯선 땅에서 찾아낸 진정한 나를 데리고 오는 여행과 연관된다. 이것은 곧 여행지를 일상으로 데리고 돌아오는 것에 다름 아니다. 3단계 여행 등급은 비약적인 신생의 여정이다. 일상 속에서도 일상에 휘둘리지 않는 내공을 얻는 여행이다. 이때 일상과 여행지의 경계는 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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