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4월 8일] 고통분담 '무임승차' 없애야

김진수(연세대 대학원 교수·사회복지)

글로벌 금융위기가 국내 실물경제로 완연하게 넘어온 것 같다. 지난달 실업자가 100만명에 육박한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고 정부 대책에 대한 평가와 대응방안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우리 경제가 위기에 직면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인식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고 실행해야 하는 과제만 남았다. 지금까지 정부 정책의 맥을 짚어보면 일자리 창출과 고용 유지 그리고 빈곤정책으로 구분된다. ‘일자리 창출이 최선의 복지’라는 주장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못된다’는 태도와 일맥상통한다. 대부분의 일자리 창출이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것으로 채워지고 있는 것도 실업사태와 취업난이 매우 심각하다는 인식 탓이다. 임기응변식 고용 창출은 곤란
신규 실업자가 발생하는 것을 억제하면서 신규채용 가능성을 확인하는 일자리 나누기는 중요하다. 그리고 이 같은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빈곤층으로 추락한 계층의 마지막 보루인 사회복지를 굳건히 하는 세 가지 영역에서의 균형적 노력은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정부 정책으로 모든 사회상황을 포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조화된 민간의 역할을 통해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그런데 경제위기에 대한 정부 정책은 아직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미 인턴사원들이 기업이나 관공서에서 근무하고 있는데도 이런 느낌이 드는 까닭은 아직 국민 피부에 와 닿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정책과 현실 간에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은 제대로 된 일자리 창출 비중이 너무 낮은 탓도 있다. 정부가 추경예산 중 2조7,000억원을 들여 만들겠다는 55만개 일자리 중 40만개가 공공근로라고 한다. 문제는 공공근로나 노년층 임시 일자리에 참여한 당사자들조차 이를 ‘일자리’로 생각하지 않는 데 있다. ‘우리가 일하는 척하면 국가에서 임금인 척 하고 주는 것’이라는 게 공공근로에 대한 보편적 인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빚잔치’에 세금을 너무 헤프게 쓰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제대로 된 일자리 창출 정책은 노동수요가 있는 곳에 노동을 공급하는 데서 출발한다. 아무리 급해도 일시적이고 임기응변적인 일자리만 창출해서는 곤란하다. 또한 일자리 나누기 정책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사회적 양보와 합의, 즉 사회적 공감대를 이뤄야 한다. 사회적 공감대는 희생하는 계층의 자발적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자발적 동의는 ‘다른 사람과 공평하다’ ‘형평성이 있다’고 판단할 때 형성될 수 있다. 정부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정부와 재계는 최근 일자리 나누기의 대표적 수단으로 대졸 초임을 삭감하자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그런데 정부는 다른 한편으로 공기업에 정원감축을 지시했고 대기업은 명예퇴직으로 해고를 부추기고 있다. 일자리 나누기로 고용안정을 기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해고를 통해 기업 경쟁력을 갖추자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서로 모순된 정책이 뒤죽박죽 얽혀 있는 점도 무척 혼란스럽다. 신입사원에게만 임금 삭감이라는 희생과 양보를 강요하고 기존 임직원들은 고통분담에서 열외로 비켜가고 있는 것도 불공평하다. 상당수 기업들은 정부의 지원만 챙기고 일자리 창출 및 나누기에는 동참하는 시늉만 하고 있다. ‘고통분담의 사각지대’들이다. 약자들만 희생 강요는 불공평
이처럼 국가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힘없는 계층에 희생을 강요하고 고통분담에 저항하거나 요리조리 피해가는 기득권층을 방치한다면 더 큰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함께 ‘고통분담 무임승차’가 끼치는 해악에 대한 교훈을 얻었다. 경제위기를 일부 계층의 희생과 노력으로 극복하려 한다면 오산이다. 그런 방식으로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어렵고 극복하더라도 속도가 더디며 계층 간 반목과 불신ㆍ분열이 만연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당연히 국민적 통합도 기대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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