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윗선' 못밝힌 특수본…불가피한 군중유체화 초점 '용두사미' 수사

경찰 특별수사본부 출범 73일 만에 활동 마무리…'윗선' 수사 한계
행안부, 서울시, 경찰청 구체적 주의 의무 위반 있다고 보기 어려워
용산서 등 용산 단위 범위에 한정…경찰청도 피해가 "자치경찰, 사무 아니다"
참사 당일 오후 10시 15분 첫 번째 넘어짐 이후, 4차례 전도 발생
'군중 유체화' 현상 발생…피해자 224kg~560kg 힘 받았을 것

지난달 6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참사 현장에 추모객들이 놓은 추모메시지와 국화꽃 등이 비닐에 쌓여 있다. 황진환 기자

'핼러윈 참사' 관련 수사를 진행했던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출범 73일 만에 수사를 마무리했다. 특수본은 용산경찰서, 용산구청, 용산소방서 등이 이번 사고에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고 관련자 23명을 송치했다.

하지만 행정안전부, 서울시청, 경찰청 등 '윗선'에 대해선 구체적 주의 의무 위반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수사를 종결했다. 애초 '성역 없는 수사'를 약속했던 것과 달리, '용두사미' 수사라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때문에 유족들 사이에선 벌써부터 "검찰 수사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탄식이 터져 나온다.

특수본은 당시 인파 밀집에 따른 '군중 유체화 현상'으로 참사가 벌어졌다고 원인을 판단했다. 하지만 이를 넘어 주요 기관과 '윗선'의 조치 등에 대한 더욱 구체적인 진상 규명과 적극적인 수사가 필요했다는 비판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손제한 특수본부장(경무관)은 13일 오전 서울경찰청 마포청사에서 최종 수사 결과 브리핑을 열고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6명을 구속 송치했다. 서울경찰청장, 용산소방서장 등 17명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와 서울시 등 상급기관에 대한 수사는 '혐의없음'으로 결론지었다.

손제한 이태원 사고 특별수사본부 본부장이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이태원 사고 특별수사본부에서 이태원 사고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

우선 행안부에 대해 특수본은 특정 지역의 다중운집 위험에 대한 구체적 주의의무가 부여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특수본은 "대규모 인명 피해 결과 발생에 대한 예견가능성과 회피가능성이 없는 등 사고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서울시 역시 용산구의 특정 지역의 다중운집 위험에 대한 구체적 주의의무가 서울시에 직접적으로 부여돼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의 경우 자치경찰 사무를 지휘할 수 없어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최종 결론 내렸다. 자치경찰제 시행 이후 법령상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사무는 경찰청장의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특수본은 "법령상 서울경찰청장이 자치경찰위원회의 지휘·감독을 받아 관장하도록 규정되어 있다"며 "경찰청장은 관련 내용을 보고받은 바도 없어 예견가능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오른쪽)과 윤희근 경찰청장이 지난 11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 '이태원 핼러윈 참사' 관련 현안질의에 출석하며 인사를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이상민 행안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에 대한 서면조사조차 실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특수본은 "기관별 법리검토 결과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별도 조사는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김광호 서울청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용산경찰서에 비해 서울경찰청은 현장 밀착도가 떨어진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특수본은 참사 원인에 대해 폭 3m 남짓의 좁고 가파른 골목에 인파가 한꺼번에 몰려 넘어지면서 참사가 일어났다고 결론지었다.

특수본 김동욱 대변인은 "오후 10시 15분 첫 전도가 발생한 후 약 15초 동안 뒤에서 따라오던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전도되는 상황이 4차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특수본 설명에 따르면 최초 112신고가 접수된 오후 6시 34분부터 사고 골목에선 옆 사람과 접촉 없이는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몰렸다.

이어 오후 9시 이후부터 이미 세계음식거리 양방향에서 밀려드는 인파로 T자형 골목 삼거리 좌우에 '군중 유체화' 현상이 벌어졌다. 군중 유체화 현상은 사람들이 밀착한 나머지 물 등의 유체와 같은 상태가 됐다는 뜻이다. 즉 자의에 의한 움직임과 거동이 불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부상자들은 특수본에 "대부분 인파에 밀려 강제로 사고 지점으로 가게 됐으며 파도타기처럼 왔다 갔다 하는 현상이 있었다", "뒤에서 미는 힘 때문에 자꾸 공중으로 떠서 발이 땅에서 떨어진 상태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핼러윈 참사 49일을 맞은 지난달 16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핼러윈 참사 시민분향소에서 열린 7대 종단 핼러윈 참사 희생자 합동추모식에서 유가족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

사고 발생 2분 전인 오후 10시 13쯤에는 군중이 더욱 빽빽하게 몰려 군중 유체화 현상이 더욱 뚜렷해졌다고 한다.

특수본의 자문 역할을 한 박준영 금오공대 기계설계공학과 교수는 이날 특수본 수사 결과 발표에서 피해자들이 평균 2200~5500N(약 224kg~560kg)의 힘을 받았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사고 발생 골목에서 158명이 사망하고 196명이 부상을 입었다. 희생자들의 사인은 압착성 질식사, 뇌부종(저산소성 뇌손상) 등이었다.

김준영 금오공과대학교 교수가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이태원 사고 특별수사본부에서 인구밀집도 변화에 따른 압사 사고 위험성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

특수본은 참사 당일 인파가 몰린 이유로 지역적·장소적·시기적 요인 세 가지를 꼽았다. 이태원은 외국인 밀집 거주지역으로 해마다 핼러윈 데이 때면 많은 사람이 몰린다. 또 해밀톤호텔 옆 골목은 이태원역 1번 출구 바로 앞에 있어 지하철로 오가는 인파가 꾸준히 유입되는 곳이다. 해당 골목의 도로 폭 평균은 4m 내외였고 가장 좁은 지점은 3.199m에 불과했다.

이어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되며 실외 마스크 착용, 일정 인원 이상 집합 금지, 식당 영업시간 제한 등 여러 방역 조치가 해제된 것도 사람들이 몰린 원인으로 특수본은 지적했다.

특수본은 각 기관의 부정확한 상황판단과 전파 지연, 협조 부실, 구호 조치 지연 등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를 근거로 과실이 중첩돼 참사에 이른 것으로 '과실범의 공동정범 법리'를 수사에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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