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운용사의 애매한 의결권 행사, 변화 재촉하는 금융당국

머니투데이 김창현 기자 2024.08.12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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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운용사 펀드 의결권 행사 현황/그래픽=김다나자산운용사 펀드 의결권 행사 현황/그래픽=김다나


지난해부터 금융당국이 자산운용사에 충실한 의결권행사를 당부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큰 변화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운용사들은 의결권행사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감했으나 인력난, 주주친화적이지 않은 국내증시 환경 등이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최근 외부주주들의 권익을 침해하면서 대주주에게 보탬이 되는 의사결정과 관련해 기관 투자자들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1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자산운용사가 의결권을 행사해야하는 종목(중복 포함)은 19만3136개에 달했다. 이중에서 실제로 의결권이 행사된 종목은 5만5122건으로 29%에 그쳤다. 그나마 의결권을 행사한 기업 중에서도 94%에 찬성표를 던져 자산운용사가 기업의 거수기로 전락한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자산운용사가 의결권행사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문제는 그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금감원은 지난해 상반기 금융투자협회와 함께 '자산운용사 의결권행사 가이드라인 개정 TF(태스크포스)'를 꾸렸다. 같은 해 10월 판단기준을 구체화하고 의결권 자문기관의 최신 지침 사례 등을 반영한 '자산운용사의 의결권행사 가이드라인 개정안'을 발표했다.

의결권행사 지침은 최신화됐지만 자산운용사들은 현실적으로 국내에서 의결권행사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인력부족문제가 대표적이다. 운용사들의 펀드 운용 인력은 수십명에 불과하나 의결권을 행사해야 하는 상장사 숫자는 수백개다. 주주총회도 3월에 집중돼 있는만큼 짧은 시간 안에 모든 의결권을 꼼꼼히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 한 운용사가 3월 한달동안 처리한 의결권은 2000건이 넘었다.



비용 대비 효과가 적다는 점도 자산운용사가 의결권행사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이유로 꼽힌다. 의결권행사를 위해서는 시간과 자원이 소모되지만 국내 증시 환경이 주주친화적이지 않은 탓에 의결권으로 기업에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는건 불가능에 가깝다. 올해 주총에서도 자산운용사들은 실적이 감소한 기업에 대해 이사의 보수 한도를 유지하거나 늘리는 안건에 찬성표를 던졌다.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를 확대하는 등 기업의 변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기관투자자 입장에서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기업의 인식 개선과 변화가 필요한데 국내 기업들은 변화의 속도가 더디다"며 "현재로서는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보다 문제가 있는 종목의 비중을 줄이는 게 더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의결권행사 가이드라인이 보다 구체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의결권자문사 관계자는 "자산운용사가 행사한 의결권에 대한 근거 양식을 규격화하는 등 공시 요건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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