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추정', 제이크 질렌할은 해리슨 포드를 넘을 수 있을까

머니투데이 정명화(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4.07.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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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 영화의 아성에 도전한 법정스릴러

사진=애플TV 사진=애플TV


촉망받는 젊은 검사가 한순간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되고 법정에 선다. 수많은 증거가 그를 살인자로 지목하는 가운데, 그는 자신의 무죄를 증명할 수 있을까?

제이크 질렌할 주연의 애플TV 리미티드 시리즈 '무죄추정(Presumed Innocent)'은 동료 여검사의 살인사건 용의자가 된 유망한 검사를 주인공으로 한 법정 스릴러다. 지난달 첫 공개돼 현재 국내에서는 에피소드 4화까지 업로드됐으며 애플TV 시청순위 1위를 기록 중이다.



'무죄추정'은 스콧 터로우 작가의 베스트셀러 원작을 영상으로 옮긴 작품이다. 해당 소설은 1990년 해리슨 포드 주연의 개봉작 '의혹'으로 한차례 영화화된 바 있다. 당시 영화는 시드니 폴락 감독이 제작을 맡아 긴장감 넘치는 법정 스릴러라는 평가를 받으며 제작비 대비 10배 이상의 수익을 거두기도 했다. 실제 로스쿨을 졸업하고 검사와 변호사를 거친 작가는 실감나는 법정 묘사와 탄탄한 전개로 전세계적인 원작소설팬층을 거느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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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원작소설과 앞서 제작된 영화로 이미 결말과 반전의 묘미는 한 수 접고 시작한 이번 시리즈는 원작의 아성과 해리슨 포드라는 걸출한 배우의 그림자를 뛰어남을 수 있을까. 회의적인 물음과 호기심을 가지고 시작한 드라마 '무죄추정'은 원작소설이나 영화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화면을 응시하도록 만든다. 블록버스터 전문가 JJ. 에이브람스가 제작을 맡고 그렉 야이타네스, 안네 세비츠키가 연출을, 데이비드 E. 켈리가 각색을 담당해 작품에 쏟아진 우려와 달리 감각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시카고 검찰청의 차장검사 '러스티 사비치'(제이크 질렌할)는 대학시절 열애 끝에 결혼한 아내 '바바라'(루스 네가)와 십대 남매를 둔 중년의 가장이다. 지방검사 선거 시즌이 다가올 즈음 동료검사 '캐롤린 폴레무스'(레나테 라인스베)가 강간 후 몸이 묶인 채 살해당한 사건이 일어난다. 검사장 레이먼드는 평소 총애하던 러스티에게 이 사건을 배당하지만, 곧 러스티가 캐롤린과 불륜관계였음이 드러난다. 앙숙인 몰토(피터 사스가드)는 러스티를 살인 혐의로 기소하고, 러스티는 범죄자를 처벌하던 검사에서 살인 용의자로 법정에 서게 된다.

이 작품의 결말을 알고 본다면 에피소드 1에서 캐롤린의 살인사건을 맡기 꺼리는 러스티와 이를 바라보는 아내의 불안한 눈빛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의 정보가 없는 시청자라면, 평화로운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가 살인사건을 맡게 되는 1편에 이어 불륜 사실이 드러나는 2편부터 흥미로운 반전의 재미의 느낄 수 있다.


사진=애플TV
'무죄추정'은 자상한 아버지이자 정의로운 검사인 주인공이 직장동료와 파격적인 성관계를 가지며 불륜을 이어오다 스토킹과 집착, 폭력까지 저지르는 양면적인 모습을 담아낸다. 러스티의 회상 신을 통해 그려지는 섹스 신은 꽤 높은 수위를 선보인다. 그리고 아내와의 순탄하고 평화로운 결혼생활과 달리 어둡고 폭력적인 내면을 공유해온 남녀의 치정이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또 캐롤린의 살인범을 찾기 위해 용의선상의 인물들을 조사하던 중 감옥에 수감 중인 범죄자가 "당신이 살인용의자인가?"라고 물으며 비웃는 장면과 러스티가 '머그샷'을 찍고 언론매체에 도배되며 자식들의 냉정한 시선을 받는 장면 등은 한순간에 처지가 뒤바뀐 주인공의 암울함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주인공 러스티를 연기한 제이크 질렌할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남자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단순한 불륜이 아닌 사랑을 느꼈던 여자의 죽음을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과 가정을 지키고 싶은 가장의 절실함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살인사건을 맡은 검사로 수사를 시작한 뒤 캐롤린의 임신사실과 이혼으로 전남편과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 등 그녀에 알지 못했던 사실을 발견하며 느끼는 혼란스러움, 용의자로 지목된 뒤 겪는 수치와 공포를 현실적으로 묘사하며 연기경력에 정점을 찍을 호연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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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공개된 4편까지는 원작의 백미로 불려온 법정 장면이 본격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모든 정황과 증거가 러스티를 살인범으로 가리키고 있지만, 모두가 의심스러운 사건. 남은 4화를 통해 주인공이 배심원과 동료들에게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고 그 과정에서 한편의 명 법정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음울하고 차가운 시카고를 배경으로 배우들의 강렬한 연기와 촘촘한 전개로 '모두가 아는 결말'이라는 약점을 상쇄시킨 '무죄추정'. 앞으로 남은 절반의 에피소드에서 치열한 법정 공방과 진실싸움을 벌이게 될 이 작품이 원작을 능가할 이야기를 보여줄 지 기대어린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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