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8월29일 경기 용인시 오대양 공예품 공장에서 32명이 사망한 채 발견됐다. /사진='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제공


1987년 8월29일 경기 용인군(현재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북리의 오대양 공예품 공장에서 대표이자 교주인 박순자와 종업원 등 32명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참혹한 모습으로 발견된 시신들은 무게에 못이겨 천장 일부가 무너지면서 실체가 드러났다. 사건 현장은 직원들에게 식사를 공급해주던 이 회사 식당 종업원이 처음 발견했고 이 소식을 들은 사장의 남편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부검 결과 사망자들의 직접 사인이 교살에 의한 경부압박질식사라고 밝혔다. 경찰은 동반자살에 합의한 이들이 약물을 마신 뒤 실신 상태에서 교사주동자가 이들을 목졸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1차 수사결론을 내렸다.

오대양 사장이자 교주 '박순자'는 누구인가

오대양 집단 자살사건은 박순자가 오대양이라는 사이비 종교 단체와 기업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사진=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캡처


박순자는 1987년 대전에서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이름을 떨쳤다. 그녀가 운영하던 공예품회사 '오대양'은 직원 복지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한편 부모 없는 아이들을 위한 최고급 보육시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직원 자녀를 위한 학사를 무료로 지원하는 등 이른바 '꿈의 직장'으로 통했다.


이 회사는 대전에 본사 공장을 두고 용인에 또 다른 공장을 둔 금속공예품을 만드는 전도유망한 회사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 공식 협력업체로 지정돼 사업을 확장한 오대양의 대표 박순자는 종말론을 내세운 사이비 교주였다.

그는 민속공예품 사업과 함께 고아원, 양로원 등을 운영했는데 이는 모두 사이비 종교단체의 외피를 가리기 위함이었다. 고아원과 양로원에 있는 아이들이나 노인들은 모두 직원들의 가족이었다.


신도들의 자녀가 부모를 구타했고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신도들은 '하나님의 은총', '은혜로운 죽음'이라는 박순자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성공한 사업가와 복지단체 대표라는 가면을 쓴 박순자는 이처럼 외부의 의심을 피한 채 오대양을 운영했다.

"사채 끌어와라"… 신도들의 170억원이 촉발제

'오대양사건'은 박순자가 1984년 오대양을 설립하고 종말론을 내세우며 사이비 교주로 행세하다 신도, 자녀들과 집단 자살한 사건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나는 신이다'의 한 장면. /사진=넷플릭스 캡처


더 큰 비극은 1986년 4월 사업 확장을 꾀하던 박순자가 사기를 당해 사업상 큰 손실을 보며 찾아왔다. 박순자는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사채를 빌리는 동시에 신도들에게 사채를 끌어오도록 지시한 끝에 170억원을 모았다.

1987년 8월16일 박순자에게 수억원을 빌려준 한 사업가가 채무 상환 독촉을 위해 오대양 공장을 찾았다가 신도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를 당한 사업가는 박순자 등을 고소했고 경찰은 수사에 착수해 오대양 직원 13명을 구속했다. 이후 "박순자에게 돈을 빌려줬다"는 채권자들의 신고가 계속됐다. 경찰은 수사를 확대했다.

박순자는 8월24일 경찰 수사를 받았는데 그는 조사 도중 기절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다음날 병원을 빠져나온 후 잠적했다. 엄청난 사채에 더해 경찰과 언론의 압박까지 더해지자 박순자는 8월25일 신도들을 용인 공장에 모이도록 지시했다. 박순자와 3명의 자녀, 공장 직원들, 운영하던 보육원 아이들까지 총 80여명이 대전에서 사라졌다.

자살인가 타살인가… 여전히 '의문'

당시 수사당국은 오대양사건에 대해 오대양 대표 박순자가 사이비 교주 행세를 하면서 신도들에게 돈을 빌리다 사채 170억원을 갚지 못하고 신도들과 집단 자살극을 벌인 것으로 추정했다. /사진='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제공


4일 동안 사라졌던 이들 중 일부는 용인 공장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49명은 공장 벽 너머 밀실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던 상황. 남은 32명의 행방을 찾던 경찰과 박순자 남편은 공장의 천장 위에서 사라진 32명을 발견했다.

박순자 등의 시신은 8월29일 천장 일부가 내려앉은 것을 이상하게 여긴 오대양 직원에 의해 발견됐다. 이 사건이 발생한 초기에는 집단 자살의 원인이나 자세한 경위 등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채 수사가 마무리됐다. 그러다가 1991년 7월 오대양 종교집단의 신도였던 김도현 등 6명이 경찰에 자수하면서 사건의 의문점이 어느 정도 밝혀졌다.

자수자들의 진술에 따라 이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을 것으로 경찰이 추정하던 오대양 총무 노순호와 기숙사 가정부 황숙자, 육아원 보모 조재선 등 3명이 자살사건 전에 이미 계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오대양 직원들에게 살해당한 뒤 암매장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경찰은 사건에 대해 전면 재조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 사건이 경찰의 발표대로 집단자살극인지, 외부인이 개입된 집단타살극인지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부검의는 3구의 시체는 자살이 분명하지만 교주 박순자를 비롯한 나머지 시신은 교살에 의한 질식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37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 사건의 진상은 밝혀지지 않은 채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