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지만, 멋진 선택

2024.08.01 20:43 입력 2024.08.01 20:46 수정

<30일의 밤>의 제이슨은 다중우주를 오가면서 인생의 수많은 버전을 경험한다.

<30일의 밤>의 제이슨은 다중우주를 오가면서 인생의 수많은 버전을 경험한다.

우리는 무수한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 대부분은 인생에 큰 영향이 없다.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 어떤 운동화를 살까, 비가 오는데 산책을 갈까 등등. 하지만 때로는 가벼운 선택이 인생의 경로 자체를 바꿔버린다. 우연히 본 영화인데 마음을 흔들어 삶의 방향이나 태도가 달라진다. 우연히 떠난 여행에서 인생의 파트너를 만나기도 한다. 어쩌면 선택은 우리 삶의 정체성일까.

그때 선택하지 않은 길을 후회하기도 한다. 어리석게 자책에 사로잡혀 남은 인생을 고통으로 메우기도 한다. 후회가 없더라도 궁금하기는 하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인생의 변곡점이 몇번 있다. 그때 다른 길을 택했다면 나의 인생은 어떻게 변했을까. 가보지 않은 길은 너무나 궁금하다.

마블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소니의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와 2023년 아카데미에서 작품, 감독, 여우주연, 남우조연 등 7개 부문상을 휩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덕분에 멀티버스는 대중에게 익숙해졌다. 홍콩에서 이주해 뉴욕에서 남편과 함께 세탁소를 운영하는 에블린은 멀티버스를 넘나들며 같으면서 다른 나와 만난다. <에브리씽…>의 멀티버스에는 다른 선택을 했을 때의 나만이 아니라 강가의 돌이거나 외계인의 형상을 가진 에블린도 존재한다. 멀티버스를 다룬 이야기의 교훈은, 지금 나의 모습이 가장 의미 있다거나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각자의 세계가 중요하다는 것 정도로 흘러간다.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인 <30일의 밤>(애플TV )의 제이슨도 궁금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제이슨은 연인 다니엘라의 임신 소식에 고민한다. 두 개의 선택지가 있다. 다니엘라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평범한 삶을 살 것인가. 무균실에서 수년간 연구에 몰두하여 위대한 발견에 도전할 것인가. 후자를 택한 제이슨은 돈과 명예를 모두 얻었다. 다니엘라는 아이를 포기했고, 미술에 전념해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다중우주의 다른 세계로 이동할 수 있는 블랙박스를 만든 제이슨은 다른 선택의 결과가 알고 싶었다.

소설가이며 직접 드라마의 크리에이터와 각본가로 참여한 블레이크 크라우치의 <30일의 밤>은 다중우주의 ‘선택’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전자를 선택한 물리학과 교수 제이슨은 학생들에게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설명한다. 상자 안의 고양이는 열기 전까지 생과 사가 중첩된 상태로 존재한다는 양자역학 이론이다. 상자를 여는 순간, 즉 관찰자가 개입하는 순간 다른 세계가 붕괴하고 하나로 확정된다. 그렇다면 내가 개입하지 않는다면, 세계는 무한히 중첩된 상태인 걸까? 인간의 뇌가 중첩을 인식한다면 다중우주를 경험하는 것이 가능할까? <30일의 밤>은 중첩을 인식하는 약물을 통해 다중우주를 오가는 제이슨을 보여준다.

갑자기 납치당해 다른 세계로 간 물리학 교수 제이슨은 가족이 있는 원래 세계로 돌아가려 한다. 다른 세계 제이슨의 연인이었던 어맨다와 함께 그는 다중우주를 헤맨다. 어떤 세계는 물에 잠기거나 문명이 사라졌고, 어떤 세계는 전염병으로 다니엘라와 아들 찰리가 죽었다. 자신이 원하는 세계로 돌아가는 것은 너무나 어렵고 힘든 일이다. 다중우주를 떠돌면서, 제이슨은 알게 된다. 원하는 세계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세계를 잘 알고 머릿속에 그려야 한다는 것을. 지식과 인식보다는 감정과 욕망이 더 정확하다. 다양한 세계를 함께 경험한 어맨다의 말도 비슷하다. “완벽한 세계는 없어요. 하지만 우린 선택해야 해요. 최대한 멋진 삶을 살기 위해서요.” 자신의 세계를 찾는 것도, 처음의 순수한 상태로 돌려놓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다.

<30일의 밤>은 소박하고, 다정한 선택이 최선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욕망과 이익만을 위해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 악인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가지 않은 길의 행복을 뺏으려 했던 다른 세계의 제이슨은 또 다른 나에게 고백한다. “내가 정말 원하고 훔치고 싶었던 건, 네가 한 선택들이었어, 제이슨. 다른 사람의 필요와 꿈을 위해 네 인생의 공간을 내주는 선택 말이야.”

가지 않은 길을 그리워하며 지금 가는 길의 행복을 만끽하는 것이 최선 아닐까. 무엇인가를 포기하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를 얻는 과정이다. 얻으면 그만큼 포기하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고. 제이슨의 말처럼, “인생의 불완전함은 다른 종류의 완전함으로 이어진다”.

김봉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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