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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악기 다루던 베테랑 시니어들, 음악 봉사 위해 뭉치다

■ 은퇴 음악인 동아리 ‘사운드파파’

6080으로 이뤄진 음악인들의 모임

복지관, 요양원 등 돌며 음악으로 봉사

“무료함 잊고 봉사로 성취감·보람 느껴”


지난 25일 경기 수원시 버드내노인복지관.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에 들어서자 철문 틈으로 악기 조율 소리가 들려왔다. 드럼 스틱이 금속을 리듬 있게 치는 소리, 부우웅하는 저음의 색소폰 소리와 부드럽고 따뜻한 클라리넷의 소리가 섞여 나왔다. 강렬하게 들리는 소리는 계단을 울릴 정도. 문을 열자 시니어 밴드 ‘사운드파파’의 연습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시니어 밴드 ‘사운드파파’의 연습 현장. 정예지 기자


현재 사운드파파를 이끄는 김진제(73) 단장이 음악을 시작하게 된 것은 10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교 밴드에 속한 친구가 같이 활동하자고 권해서 시작했어요. 그때의 학교 밴드는 군대만큼이나 위계질서가 엄격했지요. 제가 색소폰을 선택한 것도 아니에요. 선배가 ‘진제는 색소폰 불어라’해서 시작한 거지요.”

우연히 밴드에 입단했지만 김 단장은 밴드 생활과 색소폰에 크게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선배를 따라다니며 어깨너머로 색소폰을 배웠고, 졸업 후에도 자연스레 선배를 따라 ‘음악 생활’을 하게 됐다. 1970~1980년대만 해도 밴드가 업소의 초청을 받아 라이브 공연을 하거나 손님들의 요청곡을 반주하는 일이 잦았다. 그도 그렇게 색소폰을 들고 전국을 누볐다. 우연히 시작한 밴드가 취미가 되고, 일이 됐지만 호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1990년대에 이르자 노래방이 성업하기 시작하고, 1997년 외환위기로 경기가 어려워지자 무대 공연이 없어지다시피 했다. 밴드를 초청해 무대를 꾸미던 업소들은 폐업하거나 노래방으로 사업을 변경했다. 라이브 반주가 기계 반주로 대체되자 김 단장은 마흔부터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점차 음악 생활과는 멀어졌다.

연습에 앞서 악보를 살펴보고 있는 김진제 단장. 정예지 기자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던 색소폰을 김 단장이 다시 들게 된 건 우연한 계기였다.

“2014년에 퇴직해서 쉬고 있었죠. 그런데 7년 전에 한 결혼식에 갔다가 같이 음악 생활했던 선배를 만나게 됐어요. 선배가 버드내노인복지관에 시니어 밴드가 있는데 같이 하자고 해서 들어오게 됐지요. 2년 전에는 단장이 됐고요.”

사운드파파는 2009년 버드내노인복지관이 문화복지사업의 일환으로 시작한 예술 동아리다. 복지관이 장소와 악기 제공해서 음악인 두어 명이 알음알음 시작한 동아리가 15년을 넘겼다. 이제는 활동하는 인원만 스무 명인 ‘빅 밴드’가 됐다. 단원 모두가 60~80대로 이뤄진 시니어 밴드이기도 하다. 모두 군악대나 밴드 활동으로 악기를 오랫동안 쥐었던 이들이고, 아직도 매주 월요일에 모여 두 시간씩 연습한다. 모두 ‘베테랑’이다 보니 취미로 악기를 몇 달 다뤄본 것이 고작인 이들이 사운드파파에 들어오면 얼마 안 가 두 손 들고 그만두기 일쑤다.

버드내노인복지관과 지난 21일 진행한 기대콘서트. 기부금은 지역사회 소외된 어르신의 겨울나기 비용으로 사용됐다. 버드내노인복지관 제공


사운드파파의 주요 활동은 요양원이나 복지관, 주간보호센터를 찾아가서 하는 음악 봉사다. 버드내노인복지관과 콘서트를 열고, 관람료는 전액 기부하는 자선 행사도 연다.

소외된 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찾아가 즐거움을 주고 싶지만 드럼과 앰프 등 장비를 옮기려면 차량과 유류비 등 경비가 제법 든다. 복지관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사비를 들여야 할 때도 있고, 단장 개인이 봉사처를 발굴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복지관에 가서 가요를 연주해 드리면 손뼉 치시면서 참 좋아하세요. 여건만 된다면 더 많은 곳에 찾아가고 싶지요.”

‘빅 밴드’라 요양원이나 복지관에서는 공연할 장소가 마땅치 않을 때도 많다. 음악을 주업으로 하던 단원들은 더 큰 무대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사운드파파는 지난 9일 수원 남문로데오아트홀에서 창립 15주년을 맞아 사비로 대관을 하고, 첫 단독 연주회를 열었다.

“우리가 지하에 모여 연습만 하는 게 아니라 이런 연주회도 한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 성취감도 들고 좋았지요. 팝과 재즈 등 장르도 다양하게 할 수 있고요. 기회가 된다면 매년 열고 싶어요.”

시니어 밴드 ‘사운드파파’의 연습 현장. 정예지 기자


음악이 주는 즐거움에 사운드파파 창립부터 현재까지 긴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도 있다. 테너 색소폰을 부는 김순경(81) 씨는 수원농고(현 수원농생명과학고) 밴드에서 음악을 시작해 군악대에서 복무하는 등 테너 색소폰과 60년을 함께 했다.

김진제 단장도 사운드파파 활동 덕분에 은퇴 후 무료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운드파파에 안 나왔으면 뭐 하고 있었겠어요. 매일 TV나 봤겠죠. 제가 평생 해왔던 음악으로 성취감과 보람도 느낄 수 있고요.”

지역사회에 봉사할 수 있고, 같은 취미를 가진 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이만큼 더 즐거운 게 없다고 한다.

“악기 하나 다룰 수 있으면 악보를 봐야 하니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음악이라고 거창하게 시작할 것 없어요. 여러분도 통기타나 하모니카 등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작은 걸로 시작해 보세요.”
정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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