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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축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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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

[편집]

임인년(선조35년)에 중전께서 잉태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유가가 중전을 놀라게 함으로써 낙태하시게 할 양으로 대궐 안에 돌팔매질도 하고 궐내 사람들을 움직여 나인들의 변소에 구멍을 뚫고 나무로 쑤시며 강도가 들었다고 소문을 내니, 이때 궁중에서도 유가를 의심하는 바 없지 않았다.

계묘년에 중전께서 공주를 낳으셨다. 그런데 대군을 낳으셨다고 유가는 잘못 듣고 아무런 대답도 않고 있다가 공주를 낳으셨다는 것을 알게 된 뒤에야 무엇을 주더라니 이로 미루어 보아도 얼마나 중전을 미워했는지 알만하지 않은가.

그 후 병오년에 대군을 낳으셨다는 소식을 듣고 유자신은 집에서 음흉한 생각을 한 나머지 적자가 태어났으니 동궁의 자리가 위태롭다며 동궁을 모시고 있는 권세 있는 신하들과 정인홍에게 동궁을 위하여 굿도 하고 점도 치도록 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임해군이 자식이 없으니 임해군으로 세자를 삼아 대군에게 전하려 하신다는 소문을 냈다. 그러다가 선조께서 병환이 나셨을 때 정인홍 등으로 하여금 상소를 올리게 하였다.

"유영경이 임해군을 위하여 광해군 세자 책봉을 주청하지 않으니 유영경의 머리를 베소서."

상감의 뜻에 거슬리는 이 상소는 그지없이 광포한 것이었다. 상감께서는 이 상소문을 보시고 인홍 등을 귀양보내라고 전교하시고 운명하셨는데, 승하하실 때 광해군에게 다음과 같은 유교를 내리셨던 것이다.

"참언이나 모함하는 일이 있어도 마음에 두지 말고 어린 대군을 가엾게 생각하라."

이로 보아도 대군으로 하여금 왕위에 오르시게 할 생각이 없었음이 분명하건만 주위에 이간질하는 사람이 있어서 임해군을 없앨 계책을 꾸미곤 하였다.

광해군이 어렸을 때부터 불민하다고 여겨 왔으면서도 임진왜란 때 광해군을 왕세자로 정하시고는 항상 교훈하시고 전교를 내리시지만 도무지 순종하는 일이 없어, 상감께서 타이르시면 도리어 원수처럼 생각하니 상감께서는 마땅치 않게 생각하셨다.

"자식이 되어 가지고 어버이에게 하는 도리가 어찌 저럴 수 있으리오?"

그러던 참에 돌아가신 의인황후(선조의 처음 왕비)의 장례도 마치지 않았는데 후궁의 조카를 데려다가 첩을 삼으려 하므로 상감께서 꾸짖으시고 허락하지 않으셨다.

"못 한다. 어째서 부덕한 일을 하려 하느냐?"

광해군은 그 일을 두고두고 원망하다가 병오년에 큰 화를 일으켰을 때 상감을 속이고 들어가서 후궁을 위협하고 나인을 보내 조카를 빼앗아 갔던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을 상감께 아뢰거나 조카를 주지 않거나 하면 후일에 삼족을 멸할 것이니 그리 알아라."

그 후 병오년에 대군이 태어나면서부터는 대군을 없앨 마음을 품어 오다가 대군이 점점 커감에 따라 큰 변을 일으켜서 갑작스럽게 없앨 계책을 유가와 의논하곤 하였다.

정인홍 등이 미처 귀양까지 가지 않았는데 상감께서 운명하시니 광해군은 그 날로 궁궐로 불러들여 절차를 밟지 않고 그들에게 벼슬을 주고, 곧이어 형님인 임해군을 외척으로 몰아 사헌부와 사간원으로 하여금 죄목을 꾸며 올리도록 하고는 그 문서를 보이며 임해군에게 말하였다.

"이제라도 대궐에서 나가면 죄를 벗을 수가 있지만 궐내에 그냥 머문다면 죄가 더 무거워질 것이니 빨리 나가도록 하시오."

임해군이 대궐 밖으로 나가니 미리 잠복해 있던 군사들이 달려들어 교동으로 귀양보내어 감금해 버렸다.

이 때 명나라 사신이 임해군에 대한 사실을 조사하기 위해 서울에 들어오니, 그는 임해군에게 말했다.

"몸을 못 쓰는 체하면 처자와 함께 살도록 해 주겠거니와 만일 명령대로 하지 않는다면 죽이겠다."

임해군은 명령대로 하였다. 그러나 명의 사자가 돌아가자 임해군은 광해군이 내린 독약을 마시고 죽었다. 임해군을 죽일 때 광해군은 대군도 함께 죽이려고 하였으나 조정에서 시비가 벌어져 그만두었다.

"지금 강보에 싸여 있는 어린 몸이고 또 형제를 둘씩이나 함께 죽인다는 건 어려운 노릇이오."

그러나 드디어 난을 일으키고야 말았다. 임자년 겨울에 유자신의 아내 정씨가 대궐에 들어와 딸과 사위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 사흘 동안 자정이 넘도록 의논하였다. 계축년 정월 초사흘부터 저주를 시작하되 털이 하얀 강아지의 배를 갈라 들여오며, 사람을 쏘는 그림을 바깥의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과 또 담 너머와 대전의 책상 밑이며 베개 밑에 놓는다는 것이었다.

사월에는 유가, 이이첨, 박승종 등 심복들과 꾀하여 대비의 친청 아버지요 대군의 외조부이신 김제남이 광해군을 몰아내고 대군을 왕위에 앉히려고 한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사형수 박응서를 달래어 이러이러하게 대답하면 살려 주겠다고 꾀었다. 응서가 그들이 시키는 대로 김제남과 함께 대군을 왕으로 세우기 위해 역적 모의하였다고 거짓 자백을 하게 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김제남과 그 아들, 그리고 많은 나인들을 역적으로 몰아 죽이고 마침내 대군을 끌어내려고 하였다.

"조정에서 대군을 내놓으라고 성화입니다. 처음엔 듣지 않으려고 고집했지만 이제 와서 조정이 노하고 있으니 하는 수 없습니다. 그 노여움을 풀어 주기 위하여 잔치에 참석케 하려 하니 잠깐 문 밖에만 내보내어 노여움을 풀게 해 주소서."

내관의 전언을 들은 윗전께서는 말이 하도 흉측스러워 차마 바로 듣지를 못하시고 모시는 이들도 마음이 그지없이 산란하여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였다. 그러나 말에 대답하지 않을 수 없어 입을 열었다.

"이 세상에서 저지르지도 않은 큰 변을 만나 아버님과 맏동생을 죽이셨으니 내 자식의 일로 인하여 어버이께 큰 불효가 되어 세상에 용납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대군이 나이 들어 제법 철이라도 났다면 자식을 내주고 어버이를 살려 달라 하는 게 옳은 것이지만 이제 내 슬하를 떠나지 못하며 동서도 분간치 못하는 일여덟 살 어린애니 애초에 대군을 데려다 종으로 삼아 제 명이나 다 하게 하시고 아버님과 동생을 살려주십사 하며 내 머리털을 친히 베어 친필로 글월을 써서 보냈건만 받지 않으시고는 이제 와서 어찌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어린애가 어찌 알기나 할 노릇이며 어른의 죄가 아이한테 당키나 합니까?"

다음은 광해군의 대답이다.

"선왕께서 불쌍히 여기라고 하신 유교도 계신 터이고 대군에 대해선 아무 염려 마십시오.머리털은 두지 못할 것이니 도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에 윗전은 말하였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게 된 일을 생각하면 간장이 메어지는 것 같으나 나라의 법이 중하여 내 마음대로 살려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아니는 선왕의 유자인만큼 그래도 좀 생각을 해 주실까 했었는데 새삼스럽게 그런 말씀을 하시니 말의 앞뒤가 맞지 않음을 생각할 때 서러워질 따름입니다. 어린애를 어디다 감추어 두겠습니까? 내가 품에 안고 함께 죽을지언정 내보낸다는 건 차마 못할 노릇입니다."

그러자 광해군은 또 글월을 써 보냈다.

'아무러면 아이더러 아는 노릇이냐고 족치겠습니까? 아무튼 문 밖으로 비접을 나는 일도 예부터 있는 일이니, 그 정도로 여기시고 좀 내보내 주십시오. 조정에서 하도 보채어 그들의 마음을 풀어 주려는 노릇일 뿐입니다. 대군에게 해로운 일이 있을까 하는 근심은 조금도 마십시오.'

이에 윗전은 대답하였다.

"내 낯을 봐서가 아니라 대전도 선왕의 아드님이시고 대군 또한 아들이니 정을 생각해서 설마 해할 리야 있겠습니까? 그러나 대군의 나이 열살도 못 되었고 대전도 아시다시피 한 번도 대궐 밖을 나가 본 일이 없으니 어디다 숨겨 두겠습니까? 선왕을 생각해서 인정을 베풀어주십시오."

"문 밖에 내주십사 해놓고 설마하니 먼 곳으로 떠나 보낼리야 있겠습니까? 이 서소문 밖 궐내 가까운 곳에 벌써 거처할 집을 정해 놓았습니다. 궐내에 두면 조정에서 계속 성화같이 보챌 것이니 내보내어 그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는 게 대군에게도 좋은 일입니다. 어련히 잘 보살피겠습니까?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이 말을 철석같이 믿으시고 부디 내보내 주십시오."

"여러 번 이렇게 말씀하시니 서러운 중에도 감사합니다. 선왕을 생각하고 옛날에 국모라 하시던 일을 생각해서라도 대전께서는 다시 한 번 고쳐 생각하십시오. 사람이 자식을 많이 두어도 하나같이 다 귀여운 법인데, 두 어린애를 두고 선왕께서 돌아가셨으니 내 그 때 바로 죽었을 것이나 지금껏 살아 남았음은 어미의 정으로 차마 어린것들을 버려 두고 죽을 수 없어 지금까지 목숨을 연명해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또 이런 일을 당함은 대왕을 위하여 죽지 않고 살아 남은 죄값인가 합니다. 죽을지언정 차마 어린것을 혼자 내보낼 수는 없습니다. 나도 따라가게 해 주신다면 함께 가겠습니다."

그러나 광해군은 듣지 않았다.

"그 말씀은 옳지 않습니다. 대군이 궐내에 있으면 오히려 조정에서 노하여 죽여 버리고 말 것입니다. 나는 전을 보나 대군을 보나 서로 좋도록 하려 했는데 끝내 이토록 들어 주시지 않으니 그렇다면 나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조정에서 하는 대로 할 뿐입니다. 이제라도 내보내 주시면 살수 있도록 하겠거니와 거역하고 내보내 주지 않으신다면 살지 못합니다."

그리고는 내관을 시켜 다시 말을 전하였다.

"어서 내놓도록 하십시오. 지체하면 그만큼 죄가 더 커집니다."

이렇게 되자 더 이상 버텨도 소용없을 줄을 아시고 윗전은 대답하셨다.

"이 설움을 어디다 견주어 말할 수 있으리까마는 대군을 곱게 있게 해 주마고 벌써 여러 날을 두고 말씀을 전하신 터이니 그 말을 믿고 내보내겠습니다."

그리고 살아 남은 두 어린 동생을 부탁하였다. 이에 광해군은 기꺼이 대답하였다.

"두 동생은 고이 살게 하겠습니다. 대군을 빨리 내보내 주십시오. 종이며 그릇들이며 궐내에 있던 대로 갖추어 보내십시오. 비접을 나가는 것이니 오히려 편안하고 좋을 것입니다. 날마다 안부 전하는 사람을 드나들게 하겠습니다. 먹을 것도 보내십시오. 하시고자 하는 일은 다 들어 드리겠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날 장정내관 여남은 명이 안으로 몰려와 사잇문을 여니 안에 있던 나인들은 하도 두려워 구석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자 그들은 침실에 올라앉으며 말하였다.

"무엇이 부족하며 무엇이 마땅치 않아 이런 일을 저지르시는고? 대군 곁에 천이 없던가 명례궁에 천이 없던가? 대비의 칭호라도 바치시고 대군을 살리려 하실 일이지 어찌하여 이런 역모를 하실꼬? 어린애가 뭘 알까마는 일을 저질렀으니 뉘 탓으로 돌릴고? 어서 대군을 내보내소서."

말이 하도 흉악 망측스러워 사람이 차마 들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도 말 같지 않아 윗전이 잠자코 있으려니 그들은 또 꾸짖는 것이었다.

"다 옳은 말을 했으니 무슨 할 말이 있다고 대답하겠는가? 여러 말씀 안 하시는 걸 보면 정말 우리의 말이 옳군 그래. 너희 나인들이 대군을 어서 나시게 해야지 만약 그렇지 않고 지체하여 더디 내보내시게 한다면 너희 나인들은 모조리 죽음을 당할 것이니 그리 알아라."

윗전께서는 인사불성이 되어 돌아가실 뻔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시고 곁에서 부축하는 나인 우두머리 너더댓 사람을 들어오라 하셨다.

"너희들도 사람의 탈을 썼으면 설마 나의 애매함을 모르지 않겠지? 내가 무신년에 죽지 않고 살아온 것은 대전이 선왕의 아드님이시기에 두 아이를 의탁하여 편안히 살게 해 줄까 함이었는데 여러 해를 두고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이 근심으로 살아왔거니와 이제 흉적에 의해 이 세상에서 용납할 수 없는 대역이란 죄명을 뒤집어쓰게 되었으나 하늘이 알지 못하여 이토록 애매한 처지를 변명조차 안 해 주니 내가 무슨 말을 한단 말이냐. 이제 밖으로는 아버님과 동생을 죽였고, 안으로는 나를 받들던 나인들을 죽였으니 이 어린것의 몸에 죄가 미칠 까닭이 없겠건만 또 대군을 내놓으라고 강요하니 차라리 내가 저희 앞에 바로 죽어서 이런 기막히고 서러운 말을 듣고 싶지 않다. 했더니 대전이 은근한 말로 회유해 오기에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대군을 내보내기로 했거니와 두 어린 동생만은 놓아 주셔서 어머니를 모시게 해 주신다면 대군을 내보내련다. 이 말대로 대전과 내전에 전하도록 해라."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더라도 대전께서 어련히 알아서 잘 하시겠습니까? 속히 내보내도록 해 주십시오."

윗전이 애통해하며 대군을 내보내지 못하고 시간을 끌자 금부 하인들이 밀고 들어와 대군은 업고 나갔다.

그 후 한 달만에 대군 아기는 강화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런데 미리 알려 주지도 않고 늦도록 안부 전하는 사람도 찾아오지 않으므로 윗전께서는 수상히 여기시고 근심하시는 것이었다.

"어째서 오늘은 여지껏 안부도 알려 오지 않는고? 필시 무슨 까닭이 있도다. 아무든지 높은 데 올라가 궁 밖 길의 동정이나 살피고 오너라."

밀령을 받고 한 사람이 전에 침실로 썼던 다락 근처에 올라가 바라보니 사람들이 돈의문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성 위로 올라가 굽어보니 화살을 차고 창과 칼을 가진 사람이 수없이 많고 말을 탄 사람도 많았다. 이제 죽이려나 보다 하고 내려와 바깥 사람들이 길 닦는 곳이 있기에 거기 가서 물어 보고서야 대군을 강화로 옮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윗전께서는 나인을 시켜 내관에게 말하였다.

"안부는 언제고 알 수 있게 해 준다더니 벌써 여러 날째나 안부를 알 수 없으니 어디 가 있으며 어찌 언약과 다른가? 먹을 것을 마음대로 보내라 하셨기에 임금으로서 설마 속이랴 했더니 이제 와서 보면 속인 게 분명하니 간 곳이나 일러라."

그러나 대답조차 없었다.

대군이 아직 밖으로 안 나가셨을 때였다. 대군은 김상궁에게 업혀 슬픔을 이기지 못하니 우시면서 말씀하셨다.

"내 발을 씻겨라. 목욕도 시켜 다오."

김상궁이 물었다.

"무슨 일을 하시려고 목욕을 하시렵니까?"

하자 대군은 슬피 흐느껴 우셨다. 그래서 김상궁이 다시 물었다.

"무슨 일로 그렇게 슬피 우십니까?"

"오늘이 며칠이야?"

"날은 알아서 무엇하시렵니까?"

"알 만한 일이 있어 그렇다."

이렇게 대답하고는 대군은 더욱 서럽게 우셨던 것이다. 그래서 좌우의 사람들이 수상히 여기고 있었거니와 바로 그 날 대군을 끌어내 갔던 것이다.

그 날은 유월 스무 하룻날이었다. 대군은 정신이 기특해서 당신에게 닥칠 화를 아신 것 같았다.

윗전께서는 더욱 서러워서 곡기를 끊고 밤낮 서럽게 우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시더니 주위에서 하도 권하는 바람에 콩가루를 냉수에 풀어 간장 종지로 잡수시고 그것도 하루에 한 번씩도 안 잡수시면 변상궁이 울며 간절히 아뢰었다.

"목이나 적시시고 우십시오."

그러면 겨우 두어 번씩 마시는 것이었다.

계축년, 갑인년, 을묘년까지는 꿀물에 콩가루 탄 것을 하루에 한 번씩만 잡수시더니 문안을 오는 내관더러 말씀하셨다.

"대군의 기별을 알고 싶구나."

그러나 아무리 말씀을 하셔도 내관은 들은 체도 않는 것이었다.

안으로 장정나인 십여 명과 바깥에 장정내관들을 보내는 일은 윗전께서 대군을 데려오시려고 밖에 나가실까 하는 염려에서인 것이었다. 그래서 문을 다 밀어서 닫고 사잇문도 탕탕 소리나게 닫아 버렸다. 그리고 아기나인들이 혹시 울기라도 할 것 같으면 은덕이, 갑이 등이 욕설로 꾸짖으며 때렸다.

"요년들, 대군이 죽든지 살든지 네년들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 어미나 아비가 죽거든 울어라. 대군을 위해 울 까닭이 어디 있느냐? 우는 눈구멍에 재나 집어넣을까 보다."

달포가 다 되어 가도 대군을 강화로 옮겼다는 말을 안 해 주므로 기별을 들을 길이 없어 그들은 그렇게 서러워하였던 것이다.

그런 중에도 한편 또 윗전은 본가의 노모가 살아 계신지 어쩐지 통 알 수가 없어 문안 오는 내관에게 물었다.

"문을 열어 노모의 생사에 대한 기별이나 듣고 죽게 하여라."

그러나 임금의 명을 받은 내관은 아무런 대답도 안 했다. 그러다가 윗전께서 부탁을 임금께 아뢰었다. 그러자 임금은 내관을 시켜 꾸짖는 것이었다.

"역적의 집이란 것은 삼족을 멸하게 그 집을 부수고 못 살게 하는 법이다. 하건만 내 굳이 고집하여 누르고 내수사에 일러 양식이나마 들여보내도록 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지나치게 문 열고 기별을 듣고 싶어하시게 하느냐? 너희들 나인이 붙어 앉아서 어버이의 기별이나 들으시라고 보채니까 그러시는 게 아니냐? 다시 말을 하면 너희들을 다 죽일 것이니 다시는 말하지 말아라."

또 이 해 가을에 윗전께서 문을 열어달라고 날마다 내관에게 일러 보채시니 첫 번 한 번은 들은 체를 않다가 내관에게 전언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한두 해를 닫아 두며 삼 년을 닫아 두겠느냐? 잡지 못한 죄인을 마저 잡으면 문을 열어 주마."

탄일이 되어 내전에서 별문안드리는 내관을 보내시니 윗전께서는 또다시 말씀을 하셨다.

"나도 사람이요 내전도 사람이니 사람의 정은 한가지인 줄 압니다. 모든 일에 그저 탈만 잡고 어버니 동생이며 다 끌어내 죽였고, 대군마저 데려가더니 어디로 갔단 말도 없으니 그 서러움이란 비길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모진 목숨이 죽지를 못하고 살아서 노모의 안부나 듣고자 밤낮으로 바라고 있으니 문을 열어 안부나 듣고 죽게 주선해 주시면 지하에 가서도 잊지 않을 것이요, 죽어도 눈을 감고 죽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 대답이 없었다.

이 해 정초에도 문안 내관을 통하여 또다시 간절히 빌었으나 역시 대답이 없었다.

그렇게 되자 마음을 달리 잡수신 윗전께서는 나인들을 보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설움을 끈기 있게 견디라. 나는 나라의 어른으로서 남에게 잡힌 바 인질이 되어 본가의 안부도 모르고, 잠시도 떠나지 않고 내 곁에 있던 대군을 내주었으니 어찌 분하고 서러우며 답답하지 않으랴. 그러나 어지럽게 내관더러 통사정을 하지말고 나나 너희들이나 답답함을 꿋꿋이 견디자. 너무 그러다가 도리어 화를 입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조심하자."

나인 중환이와 경춘이라는 하인은 예부터 입궐하여 살고 있었다.

임자년 유월 십팔일은 왕자 되시는 경평군의 생일인데, 소주방 하인이 진지 받으러 간 틈을 타 중환이는 망을 보고 경춘이는 잠근 문고리를 뜯고 바리를 내다가 조정의 밀정인 나인 가히에게 주고 오니 사람들이 모두 수군거렸다.

"경춘이와 중환이는 한 통속이다."

그러나 침실 상궁들은 말을 안 하니 뉘라서 그 소문을 낼 수 있으랴. 그들은 닥치는 대로 물건을 훔치는 한편 밤이면 사잇문을 열고 들어가서 윗전의 모든 동정을 알아다가 가히에게 낱낱이 보고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들이 그렇게 어울려 사귀는 줄을 몰랐는데 계축년 변이 일어나자 그들은 그렇게 될 줄을 미리 알고 가히의 심복이 되고서도 우리가 보는데서 아주 슬픈 체하고 다녔던 것이다.

계축년 동짓달이었다. 이렇듯 엉큼한 중환이는 윗전께 아뢰었다.

"대군이 살아나시고 닫힌 문이 쉽게 열리게 하실 방도를 취하셔야지 이렇게 손들고 앉아만 계시면 어찌합니까? 경을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경이란 것은 무엇보다 정성을 드린 것이라야 덕을 입는다 하는데 모든 사람의 마음이 산란하고 내 마음도 주야로 슬픔에 잠겨 있으니 무슨 효험이 있겠느냐? 그만두도록 해라."

윗전께서 말리셨으나 중환이는 다시 열심히 아뢰었다.

"전교는 마땅하오나 덕을 입어 문이 쉽게 열리고 본가댁과 아기씨의 기별을 쉽게 들을 수 있으시도록, 앉아서 괴로워만 할 게 아니라 읽어보겠습니다."

그러자 윗전께서는 너희들이나 읽도록 하라고 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중환이는 경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중환이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꾸며 참소한 것이었다.

"대비 마누라께서 친히 하늘에 제사지내고 대전을 죽으라고 비십니다."

권이

[편집]

계유년 섣달에 중환이가 문상궁에게 말하였다.

"얼마 전에 슬며시 오라비를 불러서 어머니의 안부를 들은 일이 있는데, 혹시 동생의 안부라도 알고자 하시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 이런 말 드리는 것이니 서로 내통한다는 소문이 나면 되겠습니까? 그러니 상궁만 알고 글월을 적어 주십시오."

상궁은 원래 중환에 관해서는 평소부터 가엾게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그 오라비가 옥에 갇혀 있을 때 쌀에 반찬에 입을 것까지 주었었다. 그 은혜를 중환이가 잊지 못하는 듯 항상 이렇게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궁의 은혜는 죽어서 땅 속에 들어가도 결코 잊을 수 없을 만큼 크니 어떻게 다 갚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사이인 만큼 상궁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오라비인 문득람에게 글월을 써서 주었다. 그랬더니 중환은 즉시 답장을 받아다 주었던 것이다.

본전 감찰상궁의 종인 부전이와 천복의 종인 은덕이가 모두 중환의 심복이 되어서 오로지 공을 세워보려고 한패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동정을 살피며 무슨 일이고 보는 대로 고해바치면 중환이는 들어 두었다가 밤이 되면 담을 넘어서 바깥과 내통하곤 했던 것이다.

대비께서 들어 계신 곳은 동쪽 구석이고 중환이 거처하는 곳은 서남쪽 행랑이며 전으로 통하는 곳은 서쪽 구석이니, 동쪽과 서쪽을 통틀어 알고 다닐 만한 사람이 여럿이나 나가 죽었으므로 궁중이 텅 비어 밤이 되면 인적이 끊어져서 일만의 군사가 쳐들어와 날뛰어도 알 길이 없는 형편이었다. 중환의 행동거지를 살펴보면 차차 수상한 점이 드러나고 나라를 향해서도 원망하고 옥에 갇히러 가는 나인을 보고도 꾸짖었던 것이다.

"곱게 살지 못하려고 이런 큰 일을 저질러 서러운 노릇을 당하는 게 다 뉘 탓인지 아는고?"

이러면서도 중환이는 태연자약하게 문상궁에게 드나드니 문상궁은 추호도 의심을 품지 않았고, 혹시 다른 나인이 의심을 하더라도 오히려 그렇지 않다고 두호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신임을 얻은 중환이는 문상궁을 달래는 것이었다.

"시녀 방씨는 그 전에 나가서 아무 탈없이 잘 살고 있고 그의 오라비는 대전별감을 지냈으니, 대군 계신 곳에도 간다더군요. 그러니 기별을 듣기가 쉽지 않을까 합니다."

"대군이 가 계신 곳이 어디라고 그런 무서운 일을 누가 할까?"

"제 오라비를 시켜서 하겠습니다."

이에 상궁은 아기씨의 안부를 알아보겠다는 일념에서 글월을 써 중환에게 주었다.

이 일은 물론 중환에 의해서 곧 폭로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문상궁은 말 할 것도 없고 그 일가가 극형에 처해졌다. 그밖에도 많은 나인들이 걸려들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대군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시위인들의 서러움이 태산 같았으나 그렇다고 함부로 소리내어 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은 다만 가슴을 두드리고 원통해할 따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월이 되도록 대군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윗전께 여쭙지 않았다. 그런데 하루는 윗전께서 꿈을 꾸시니 두 젖이 흐르고 모든 사람들이 아기씨를 안아다가 윗전께 안겨 드렸다. 그러자 윗전께서 우시며 반가워서 젖을 먹이시다가 잠을 깨셨던 것이다. 그리고 놀라서 말씀하셨다.

"마음이 다시금 놀랍고 온몸이 떨리어 지금은 얼른 진정할 수 없을 지경이니 어째서 이런 꿈을 꾸었노?"

이에 가까이 모신 나인이 대답하였다.

"젖이란 것은 아이들 양식의 줄기이니 아기씨께서 장수하셔서 대전의 마음을 자연히 풀어지게 하시고 서로 만나실 좋은 조짐입니다."

그 후에 또 꿈에 아기씨께서 윗전께 와 안기시며 말씀하시고 우시는 것이었다.

"머리 빗을 사이에 하늘의 옥경을 보고 인간의 복과 운명이 다 하늘에서 하시기에 달린 줄 알았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저를 보지 못하시어 서러워하시나 저는 옥황상제를 뵈었으니‥‥‥."

"어디를 갔었느냐? 나는 너를 여의고는 서러워 죽을 지경이건만 어째서 간 곳도 아니 일러 주느냐?"

윗전께서 붙들고 물었으나 아기씨의 대답은 간단한 것이었다.

"아셔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

이러고 보면 심상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윗전께서는 더 이상 참지 못하시고 안달하실 수밖에 없었다.

"죽었는데도 나를 속이는 것 같구나. 바른 대로 일러 주지 않으면 나는 스스로 죽고 말겠다."

상궁은 더 이상 숨기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사실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윗전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졸도하시고 말았다. 상궁은 가까스로 냉수로 윗전을 깨워 정신을 차리게 한 다음 이렇게 여쭈었다.

"아기씨 벌써 범의 입안에 들어감을 면치 못하셨으니 이제 아무리 간장을 태우시고 서러워하셔도 살아오실 리가 없는 일입니다. 아기씨를 위해 옥체를 버리시면 저들이 더 기뻐할 것입니다. 모쪼록 서러움을 참으셔야 합니다.

저희들 종으로서도 어찌 잔인하다는 생각이야 들지 않겠습니까? 형시 좋은 시절에 존귀하게 시위하고 살다가 이젠 나인이 초야에서 김을 매는 하인만도 못한 신세가 되어 해골이 거리에 구르고, 금부 나장에게 뒤를 쫓기게 되었으며, 선왕마마를 가까이 모시던 사람이 모두 중형을 받아 죽었으니 불쌍하고 애처롭기 그지없습니다. 차라리 죽어서 이런 모든 끔찍한 꼴을 안 보고 싶으나 윗전마마를 생각하고 오늘날까지 살아온 것인데, 이제 돌아가시면 우리만 살라고 그냥 둘 리가 있겠습니까? 새로 옥사를 일으킬 것입니다. 한 아기씨를 위하여 이제 남은 신하들을 모두 서럽게 죽게 마십시오."

"난들 그걸 모를 리가 있겠느냐만 동서도 분별치 못하는 어린애 슬하에서 자라는 양이나 보려고 했더니 위력으로 빼앗고 간 곳도 가르쳐 주지 않다가 죽였으니 기가 막히구나. 어머님이며 내 일로 말미암아 서럽게 죽은 동생들을 생각하니 이제 죽으면 저승에 가서도 부형에게도 떳떳이 뵐 수 없어 부끄러운 넋이 외로이 허공을 떠돌 것이니 그래 내 차마 죽지는 못한다지만 무슨 원수를 졌기에 이렇듯 서러운 일을 겪게 하는고. 선왕으로부터 사랑을 못 받은 원한을 내게 풀어 내 친정 가문과 어린 대군을 모두 죽였으니 어쩌면 좋으냐? 앞으로 영원히 다시는 이런 땅에 태어나지 않겠거니와 문 열어 주거든 노모의 안부나 알려다오."

그러나 바깥 경비가 삼엄한 만큼 노모의 안부마저 알 길이 없었다. 이런 중에도 광해군과 그 일당의 음모는 쉴새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인 중에 천이란 년이 있었다. 이 년이 모진 생각을 하고 섣달 열이렛날에 침실 근처에 몰래 불을 놓았다. 이 때가 밤 이경이다. 침실에 잇달은 상랑채에 불이 붙었다. 누군가가 불이야! 외치는 바람에 모든 나인이 다 쫓아나가 옷을 벗어 물에 담가 가지고 쳐서 불을 껐다. 그러나 그 후로도 이와 비슷한 불상사는 쉴새없이 일어났다. 그리고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생필품의 조달이 점점 끊어져 갔다.

이렇게 되고 보니 윗전이 계신 명례궁에서 식칼이 없어 예부터 있던 환도를 둘로 잘라서 식칼를 만들어 쓰고 무딘 가위를 숫돌에 갈아서 날을 세워 쓰고,, 나인들은 떨어진 옷을 누덕누덕 기워 입기도 하였다. 또 쌀 일 바가지가 없어 소쿠리로 쌀을 일었다.

옛집이라 여러 해째 손을 보지 못하니 대들보가 꺾이고 기울어져 사람이 다치게 되었다. 그래서 윗전께서는,

"대전께 아뢰라."

하고 백 번도 더 빌다시피 하였건만 내관은 들은 체도 않는 것이었다. 무오년 여름에 불이 났다. 윗전은 방 속에 갇힌 채 피를 토하셨다. 이 사실을 나인이 내관에게 알리니 내관은 불은 끌 생각도 안 하고 엉뚱한 수작만 하는 것이었다.

"어디가 아프시며 무슨 연로 피를 토하시며 하루 몇 번씩 토하시느냐? 나인의 말이 믿어지지 않으니 의녀를 들여보내 진맥케 하라."

"의녀는 그만두십시오. 우선 문을 열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관은 오히려 나인을 협박할 뿐이었다.

"없는 병을 꾸며 아프다 하니 나인을 모두 죽이겠다."

그리고는 겨우 문을 열어 주었다.

정사년부터는 조정에서 음력 초하루나, 탄일에도 문안을 아니하고 절하러 오지도 아니하는 것이었다.

신유년 칠월에는 조정에서 포수들을 달래고 꾀어서 내장사 밑에서 숙직을 하게 하고 자정 때쯤 해서 야경을 돌게 하니 마치 일만 군사가 들끓는 듯하였다.

나인들은 그들이 들어와서 죽이려는 것만 같아 애가 타서 갈팡질팡하였다. 그러다가 침실에 가서 윗전을 시위하여 함께 죽자고 말하였던 것이다.

나전에 살던 포수가 본궁에 가서 해마다 총을 쏘아 귀신을 몰아서 우리에게로 죄다 오게 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병든 나인들을 밖으로 끌어 내갔다. 이에 남은 나인들은 울며 호소하였다.

"집은 크고 사람 수는 적어서 밤이면 무서우니 앓는 사람만 내가고 성한 나인은 내가지 말아 주십시오."

그러자 대전 내관은 말하는 것이었다.

"대군도 내갔는데, 나인들 따위야 무엇이 대간하다고 그러느냐? 잔소리 말아라."

이러고 내간 일이 대여섯 차례나 되었던 것이다. 계해년 정월 초사흗날에는 죽은 나인의 종을 다 잡아 내가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윗전께서 비셨다.

"죽이려는 생각으로 이 곳에 가두었으니 서러운 생각을 한다면야 벌써 죽었어야 한다. 그러나 내 명은 하늘에 달린 것이니 사람을 뜻대로 못 하리라. 나인 삼십여 명을 다 죽였으니 이제 궁중이 텅 비어 까막까치와 도깨비만 꾀어 들끓는 형편인데 죽은 나인들의 종들까지 내놓으라니 그러고는 나 혼자서 무서워 살 수 없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들은 체도 않고 어서 내놓으라고 독촉만 하는 것이었다. 두어 나인의 종만 내주자 조정에선 데려다가 개 부리듯 심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는 삼월 열 하룻날에 또 내관을 보내어 앓는 사람을 내놓으라고 독촉하는 것이었다.

열 이튿날에는 가죽에다 마마 귀신을 그리고 붉은 작은 주머니에 죽은 나인들의 이름을 써넣고 산 나인들의 이름은 밖에 써 매달아 가지고 내관이 와서 말하였다.

"이 가죽은 침실 문안에 걸고 주머니는 거기 써 있는 나인들의 이름을 보여 주고 나인들에게 차게 하라. 없애 버리면 일러바치겠다."

윗전께서 보시고 곧 땅 속에 파묻게 하였다.

계축년부터 겪은 서러운 일이며, 항상 내관을 보내어 공갈하고 꾸짖던 일이며, 도리에 어긋난 일이며, 박대하고 불효한 일들을 이루 다 쓸 수 없어 그 중 만분의 일이나마 여기에 쓰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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