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문현 (야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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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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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대한민국 | |||
생년월일 | 1953년 2월 13일 | (71세)|||
출신지 | 경상북도 경산시 | |||
선수 정보 | ||||
투구·타석 | 우투우타 | |||
수비 위치 | 투수 | |||
프로 입단 연도 | 1982년 | |||
첫 출장 | KBO / 1982년 7월 31일 인천 대 OB전 구원 등판 | |||
마지막 경기 | KBO / 1987년 6월 19일 잠실 대 OB전 | |||
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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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현(吳文炫, 1953년 2월 13일 ~ )은 전 KBO 리그 삼미 슈퍼스타즈의 선수이며 선수 시절 지독한 골초였고[1] 1987년 빙그레 이글스를 끝으로 선수생활을 접은 뒤 담배에 대한 규제가 가장 센 호주에 거주 중이다. 한편, 빙그레(한화 포함)에서 본인(오문현)의 뒤를 이어 40번을 달았던 한용덕은 본인(오문현)이 그랬던 것처럼(오문현-82년 7월 삼미 한용덕-88년 빙그레) 연습생 형식으로[2][3] 프로 입문을 했었다. 아울러, 동국대 중앙대가 스카우트 경쟁을 벌인 끝에 중앙대 최종 진학이 결정됐지만[4] 갑작스럽게 영남대로 급선회했고[5] 영남대는 본인(오문현)에 앞서 황규봉 스카우트설이 있었으나 고려대 진학을 선택해 무산됐으며[6] 이선희가 중앙대 경희대를 희망했고 나중에는 기업은행도 거론됐지만 결국 동기생들과 함께 가는 조건으로[7] 농협을 선택했다.
기록
[편집]한시즌에 11경기뛰고 304피안타를 맞은... 전설의 투수.... (현재는 기록이 수정되었다)
각주
[편집]- ↑ 김종건 전문기자 (2012년 11월 28일). “[김종건의 아날로그 베이스볼] 금광옥 “월급은 현찰, 연패때도 술판…삼미, 화끈했어””. 스포츠동아. 2020년 8월 26일에 확인함.
- ↑ 김학순 (1982년 7월 28일). “프로야구 戰力(전력)정비 한창「이삭줍기」스카웃戰(전)”. 경향신문. 2020년 8월 26일에 확인함.
- ↑ 김화균 (1990년 5월 17일). “프로야구 2군선수들"프로선언"”. 경향신문. 2020년 8월 26일에 확인함.
- ↑ “내년 졸업 고교 야구선수 거의 대학진출 내정...드러난 「스카우트」윤곽”. 중앙일보. 1972년 10월 4일. 2023년 12월 14일에 확인함.
- ↑ “내년 졸업 고교 야구선수 거의 대학진출 내정...드러난 「스카우트」윤곽”. 중앙일보. 1972년 10월 4일. 2023년 12월 14일에 확인함.
- ↑ 조광식 (1972년 11월 22일). “高校野球(고교야구)주역들의 進路(진로) 올 實業(실업)·大學(대학) 스카우트 윤곽”. 동아일보. 2023년 12월 14일에 확인함.
- ↑ 박찬형 (2012년 9월 26일). “[전설을 찾아] ‘전설의 좌완’ 이선희, `노히트노런 두 번한 투수 있으면 나와봐`<상>”. MK스포츠. 2023년 12월 14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