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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레 단눈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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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레 단눈치오
Gabriele d'Annunzio
작가 정보
출생
페스카라
사망
Gardone Riviera
국적이탈리아 왕국
언어이탈리아어
직업극작가, 정치인, 군인, 시인, 언론인, 작가, 수필가, 각본가, 비행사, 리브레토 작가
학력로마 라 사피엔자 대학교
Convitto Nazionale Cicognini
수상레지옹 도뇌르 훈장
Military Order of Italy
몰타 기사단
Croix de guerre 1914–1918
Medal of Military Valour
Officer of the Military Order of Savoy
Knight of the Military Order of Savoy
배우자Maria Hardouin
동거인Eleonora Duse(1898~1901)
Alessandra Carlotti di Rudinì
Margherita Besozzi di Castelbarco(1919~)
Maria Gravina Cruyllas
자녀Mario D'Annunzio, Gabriellino D'Annunzio, Ugo Veniero D'Annunzio, Renata D'Annunzio, Gabriele Cruillas
주요 작품
Il Piacere, Le vergini delle rocce, Francesca da Rimini, The Intruder, The Dream of a Spring Morning
서명

묘비
묘소Vittoriale degli italiani

가브리엘레 단눈치오(Gabriele d'Annunzio, 1863년 ~ 1938년)는 이탈리아시인·소설가·극작가이다.

아브루치페스카라에서 태어났다. 카르두치의 영향을 받은 1880년 시집 <조춘(早春)>으로 인정받았다. 정력적인 작가로 시집 13권, 단편집 4권, 소설 8권, 극작 17편, 그 밖에 평론, 산문집 등이 있다. 1893년에 <죄없는 자>의 불역(佛譯)이 나와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다. 1910년에 빚 때문에 프랑스로 도피, 1915년 제1차 세계대전에 조국 이탈리아의 참전을 주장하고 귀국, 그해 7월 의용군에 가담하여 전선에서 활약하였으나 그 이듬해 비행 중 오른쪽 눈이 실명되었다. 종전 후 국제 연맹의 결정에 항의하여 피우메 시(市)를 점령하는 장거를 감행하였다. 1921년 동시를 자국군에 인계하고 귀국, 1924년 몬테 네보소공(公)으로 봉(封)함을 받아 파쇼 정부로부터 예우를 받았다. 1938년 가루다 호반에서 사망하였다.

작품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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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및 소설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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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프랑스 자연주의와 니체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는 풍부한 시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활기에 찬 운율로 생의 환희를 노래하며 관능적 미가 넘치는 것이었다. 특히 <하늘과 땅과 바다와 영웅의 찬가>중의 제3권 <알초네>(1904) 가운데에 우수작이 많다. 19세기 말 퇴폐적인 남부 유럽적 향락을 구가하는 소설도 많이 썼는데, <쾌락>(1889), <죄없는 자>(1892), <죽음의 승리>(1894) 등이 걸작이다. 육체의 쾌감을 추구하면서 항시 불안에 괴로워하는 향락주의자의 심리를 시와 같이 응축된 문체로 묘사하고 있다. 어느 작품에나 대중 취향을 꺼려한 니체적인 초인사상(超人思想)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한없는 미의 추구자이던 그는 동양 문물에도 흥미를 가져 이를 작품 속에 취급한 것이 있다.

희극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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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봄의 새벽꿈>을 가지고 극단에 등장했다. 이듬해에 발표된 <가을 저녁의 꿈>과 함께 대화체의 시(詩)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 연극성은 빈약하다. 산문으로 쓰여진 3작품 <죽은 마을>(1898) <라 지오콘다> <영광>(1913)도 지나치게 대사에만 의존하여 무대에서의 성공을 얻지 못하였다. 이에 대하여, 낭만파가 묘사한 중세라는 이질적인 피비린내나는 황량한 세계에서, 단테로부터 힌트를 얻어 엮은 사랑의 이야기를 전개한 시극(詩劇)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1902)는 단눈치오의 본령(本領)을 보인 것이며, 또한 <요리오의 처녀>(1904)는 원시 기독교를 배경으로 한 농민극으로, 신앙의 기적과 동물적인 욕정의 대립에 고도의 긴장을 보이는 걸작으로, 각기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배(船)>(1906)는 고도의 서정성이 있는 작품으로서 연출가에게 큰 흥미를 주며, 그리스 비극에서 취재한 <페드라>(1909)와 함께 주목된다.

여성 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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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단신에 과히 뛰어난 외모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원한다면 어떤 귀족 부인이든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을 지녔다. 부드러운 음색과 달콤한 수사어로 상대를 찬미했으며, 과감하고도 은근한 눈길로 여성을 사랑에 빠지게 했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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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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