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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해역의 보물선

2024.06.30. 오후 7:34

사람들은 보물선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바다에 침몰한 보물선을 발견하게되면 그야말로 대박인 셈이죠. 우리나라도 수 십년전 신안앞바다에서 보물선을 발견했는데 침몰한 배에는 수백년전에 생산된 중국산 명품도자기가 가득 실려있어서 수백, 수천억원의 가치를 지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태평양을 건너 왕복한 마닐라 겔리온 무역선은 중간에 침몰한 적은 없었을까요? 당연히 있습니다. 갤리온선은 신안앞바다 보물선보다 훨씬 크고 적재한 상품도 훨씬 많았을 것이므로 만약에 침몰한 배를 발견한다면 보물선 역사를 다시 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닐라와 멕시코간의 갤리온 무역선은 250년동안 총 400회의 왕복을 하였는데 중간에 침몰한 선박은 제법 많습니다. 막대한 양의 보물을 싣고서 바닷속 어딘가에 가라앉아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그 배를 발견할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인생 역전을 이룰 것입니다.

이번 글은 250년 태평양 갤리온 무역선의 항해 사고 이야기 입니다.

보물선

년전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하는 소식 하나가 전해졌습니다. 국내 한 기업이 수십조원 가치의 보물이 실린 것으로 추정되는 러시아 철갑순양함 돈스코이호를 경북 울릉도 인근 해저에서 발견했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이 기업의 주장에 의하면 돈스코이호에는 어마어마한 금괴와 금화가 실려 있다는 것입니다. 돈스코이호는 1905년 러일전쟁에 참여했다가 일본군 공격을 받고 울릉도 앞바다서 침몰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다만 2000년에도 한 차례 인양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어 이번에도 실제 인양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라고 합니다. 돈스코이호의 재등장으로 인해 난파보물선에 대한 관심도가 다시 높아지고 있습니다. 인양 기술의 발달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꾸준히 보물선이 건져 올려지고 일부는 고고학 역사를 다시 쓸 만큼 방대한 보물이 발견되면서 세간의 비상한 관심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콜롬비아 앞바다에서 300년전 침몰한 스페인 무역선이 발견되었는데 그 가치가 무려 27조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 스페인 무역선은 바로 태평양 갤리온선과 동시대의 무역선으로 만약에 필리핀 해역에 침몰한 갤리온선을 발견한다면 이정도 이상의 큰 가치를 지닐 것입니다. 과연 필리핀 해역에 보물선이 묻혀 있을 까요 ?

참고로, 우리나라 해역에서 발견된 가장 최초의 보물선은 신안선인데, 1323년 원(元)나라 지배하 중국의 경원(현재 중국 저장성 동부 도시 영파)에서 무역품을 가득 싣고 일본의 하카다(博多, 현재의 후쿠오카)와 교토(京都)로 향하던 이 무역선은 지금의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좌초, 침몰했습니다. 이 배에는 유물 2만4000여 점과 28톤 무게의 동전 800만개가 발굴되었습니다.

또한 ‘바다의 경주’라 불리는 충남 태안에서 대규모로 고선박이 발견되면서 수중고고학의 역사를 새롭게 썼습니다. 한 어부가 쭈꾸미를 잡으려다가 고려청자를 낚아 올리면서 시작된 태안선 발굴조사는 2008년까지 진행됐고 청자향로 등 2만5000여점의 유물을 육지로 건져 올렸다고 합니다. 2만3000점이 개당 수백만원의 가치를 가진 고려청자가 화물의 9할 이상일 정도로 보물선이었습니다. 이 태안선은 1131년 탐진(현 강진)에서 개경으로 가던 도중에 침몰한 배라고 합니다.

태평양 갤리온선의 해난사고

250년 갤리온 무역의 역사에서 볼때 갤리온 선의 난파 또는 조난은 하나의 재앙 수준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고는 필리핀 해역에서 일어났는데요, 마닐라와 아카풀코 사이의 무려 1만6천km 왕복여행중에 일어난 해난사고의 90퍼센트는 거의 필리핀, 일본 그리고 마리아나 제도(괌 인근)의 서쪽지역에서 일어났습니다. 특히, 해난 사고의 70퍼센트는 필리핀 해안 및 인근 군도 해역에서 발생했습니다. 아메리카쪽에서는 캘리포니아 북부 해안에서 단 한건의 사고만 발생했을 정도였습니다.

대부분의 해난 사고는 기상조건이 좋지 않을 때 일어났습니다. 태평양 왕복은 그 여정이 상당히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왕복 모두 무역풍을 타면 비교적 순탄하게 항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점을 고려하여 항해할 때는 순풍 및 바다가 좋은 시기를 골라서 출항을 하도록 했습니다. 통상 멕시코에서 필리핀으로 항해는 동북풍이 부는 계절인 11월부터 3월말까지 사이에 이루어졌습니다. 이 시기를 놓치면 남서풍으로 바뀌므로 역풍이 되어 항해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북위 10도에서 14도 사이의 이 무역풍을 타고 마리아나 제도를 거쳐 필리핀까지 비교적 순조롭게 도착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항해가 늦어져 남서풍을 만나게 되면 배는 위험에 처하게 되고 필리핀 제도로 진입할때 엄청난 고생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배가 순조롭게 마리아나 제도를 거쳐 필리핀 제도로 진입하면 여기서부터 마닐라까지는 짧은 거리이지만 매우 어려운 항로로 통상 1~2개월이나 걸렸습니다. 섬사이를 구불 구불 지나서 암초를 피해서 항해해야하는 지역이라서 난파의 위험이 오히려 태평양보다 더 컸습니다. 마닐라에서 아카풀코로 되돌아 가는 항로 역시 이 지역을 지날때가 가장 위험이 컸습니다. 필리핀 군도 해역을 빠져나가는 길은 위험한 조류, 구불 구불한 바닷길 암초, 수심이 낮은 섬 사이를 지나야 하는데 이것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몬순과 예기치 못한 태풍으로 늘 긴장해야 했습니다. 배는 마닐라의 카비테 항을 나와서 민도르 섬 사이의 해협을 끼고 남하하여 루손섬과 사마르섬 사이의 산베르나르디노(San Bernardino)해협을 빠져나와 태평양으로 들어설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갤리온선의 사고는 주로 여기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는 멕시코에서 마닐라로 회항하는 배가 다시 여기를 통과해서 마닐라로 들어갈때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따라서 이 해역에는 틀림없이 수백년전에 침몰한 보물선이 가라앉아 있을 것입니다.

짧은 거리의 이 해역을 통과하는 데에만 30일에서 60일정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필리핀 군도 해역의 통과가 어렵다는 사실은 사고의 70퍼센트 이상이 이 해역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필리핀 해역은 태풍 집중지역으로 이 해역에서는 사고는 갑작스런 폭풍이나 태풍 그리고 과적과 선체의 누수로 인해 발생했습니다.

갤리온선 해난사고의 여파

리온선은 250년동안 마닐라와 아카풀코사이를 총 400회 왕복운행했는데, 그중에서 난파사고는 59건, 조난이나 표류는 35건 이었습니다. 특히, 과적으로 인해 침몰 사고가 많이 발생했는데, 당시 사람들은 갤리온 무역의 이득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고 너도 나도 투자를 했고, 심지어 여성들은 자신들의 보석을 팔아 이 무역에 투자 했습니다. 특히 밀무역은 배의 과적을 초래하였고 선박의 지속적인 난파 원인이 되었습니다. 시기별로 사고의 빈도를 살펴보면, 1565년부터 1600년까지 총 40회의 항해가 있었는데 13건의 해상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1600년대 100년간은 총 161회의 항해에 27건의 사고가 있었고, 1700년데에는 174번의 항해에 18번의 사고 그리고 1801년부터 1815년까지는 24번의 항해중에 1건의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최초 항해부터 날이 갈수록 해난사고는 줄어들었지만, 배의 규모나 화물의 양은 증가하여 한번 사고가 나면 막대한 인명피해와 재물의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예를 들면 1608년에 산프란시스코호가 침목하면서 40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1638년에는 '누에스트라 세뇨라 델라 콘셉시온'호는 침몰하여 400명이 사망하고 54명이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1649년에는 엔카르나시온 호가 침몰하여 200명이 죽고 55명이 바다로 사라졌습니다. 1694년에는 산호세(San Jose)호도 태평양으로 침몰하여 400명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이러한 해난사고로 인한 손실이 마닐라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히 컸습니다. 우선 경제적인 손실을 보면, 콘셉시온 호에는 400만달러 상당의 화물 및 귀중품이 실려 있었는데 사고로 전부를 잃었고, 산토 토마스(Santo Tomas)호는 1601년 재난으로 50만페소(250만달러)의 화물을 잃었습니다. 1616년 일본에서 난파된 산티시마 트리니다드(Santisima Trinidad)호는 300만달러 상당의 화물을 적재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갤리온 무역선의 해상사고로 인한 인명 손실 및 경제적 손실 그리고 무혀의 손해를 포함한 사회적 고통은 엄청났습니다. 특히, 마닐라에 거주하는 스페인 통치관료들, 군인 및 성직자들의 봉급, 그리고 마닐라 총독부의 현지 체제 유지를 위해 멕시코의 부왕청이 매년 보내고 있는 '시투아도' 보조금을 실은 배가 해난 사고라도 당하면 그 피해는 스페인의 마닐라 총독부(인트라무로스)를 비롯하여 현지 사회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갤리온 선의 손실은 필리핀에 사는 모든 이들에게 많은 고통을 초래하기 마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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