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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산호초 마쓰다 세이코의 상징, 버블경제? 군국주의?

2024.07.06. 오후 8:45

마쓰다 세이코, 푸른산호초 싱글 음반

뉴진스의 하니가 도쿄돔 원정 공연에서 마쓰다 세이코(松田聖子)의 푸른산호초(青い珊瑚礁)를 불러 현지 일본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은 뒤로 국내 언론들이 마쓰다 세이코를 집중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론들이 마쓰다 세이코를 설명할 때 마쓰다 세이코를 '버블경제'의 상징으로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어떤 언론에서는 마쓰다 세이코가 일본의 국가(國歌)인 '기미가요(君が代)'를 불렀던 적이 있다면서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다루기도 합니다.

필자는 마쓰다 세이코를 일본이 가장 행복하고 유복했던 시절의 상징으로 서술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일본의 대중문화연구자로 「K-POP現代史」를 저술한 야마모토 조호 (山本淨邦) 박사는 한국 언론들이 마쓰다 세이코를 버블경제의 상징으로 보는 것은 "일본에 대한 무지함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잘못된 서술이라고 알렸습니다.

야마모토 조호 박사의 페이스북 페이지 화면 캡처

야마모토 박사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일본에서 하니의 무대가 이토록 화제가 된 배경에 대해, 한국 매체에서 말도 안 되는 분석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라며 "그 분석은 마츠다 세이코를 버블 시대가 낳은 아이돌 가수(또는 버블 경제의 상징)로 보고, 일본인이 하니의 무대에 열광한 이유는 버블 시대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야마모토 박사는 "마츠다 세이코가 ‘푸른 산호초’로 인기를 끈 것은 1980년, 버블 시대와는 무관합니다. 버블 시대를 80년대와 동일시하는 분석 자체가 일본에 대한 무지함을 드러냅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80년대 초반의 일본은 경기 면에서는 오히려 불경기였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80년대 일본 아이돌들이 등장했습니다. 버블 시대는 80년대 후반으로, 버블 시대에 들으면서 마츠다 세이코와 같은 국민적인 아이돌은 부재하게 되고, 음악 업계는 다른 업계와는 반대로 매출이 저하되어 불황에 빠졌습니다. 과거의 인기 음악 프로그램들 역시 시청률이 하락했습니다. " "버블 시대와 마츠다 세이코의 인기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라면서 한국 언론들에게 정확한 보도를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야마모토 박사의 말대로 마쓰다 세이코의 전성기는 1980년부터 1988년까지입니다. 이 시기 마쓰다 세이코는 24곡 연속으로 오리콘 차트 1위를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버블경제 시기는 경제학계에서는 1986년 12월부터 1991년 2월까지로 보는 것이 통설입니다. 즉 플라자 합의 때부터 제1차 헤이세이 불황이 터질 때까지를 일본의 버블경제 시기로 봅니다.

그래서 마쓰다 세이코를 버블경제의 상징으로 보는 한국 언론들의 보도가 잘못됐다는 야마모토 박사의 말이 맞습니다.

다만 1980년대 초반이 일본 경제의 불황기라고 하는 야마모토 박사의 말도 잘못됐습니다. 1980년대 초반, 마쓰다 세이코의 전성기 시절은 일본이 2000년 역사상 가장 행복하고 유복했던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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