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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새 지폐 인물 열전, 한국 지폐 인물을 바꾼다면 누구를?

2024.06.29. 오후 1:02

일본이 다음 달 7월 새로운 지폐를 발행, 유통합니다. 20년 만의 새 지폐입니다. 지폐에 올라 있는 인물도 바뀝니다. 이번 일본의 새 지폐 도안 인물은 어떤 인물인지 알아봅니다.

일본 지폐의 정식 명칭은 '일본은행권'이지만 양식은 일본은행 총재가 아니라 일본은행법에 따라 재무대신이 정하고 공시합니다. 실제로는 재무성과 일본은행, 국립 인쇄국의 3자가 협의해서 도안을 결정합니다.

일본은행권 도안 인물은 과거에는 쇼토쿠 태자처럼 메이지 시대 이전의 인물도 있었지만 현재는 현대 일본의 정신과 지향할 바를 담는다는 의미로 메이지 시대 이후의 인물로 정한다는 것이 합의되어 있습니다.

먼저 10000엔권의 시부사와 에이이치 (渋沢栄一,1840~1931)입니다.

뒷면 도안은 일본 제국 시대에 지어진 도쿄역 역사입니다.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설립한 일본 벽돌 제조 주식회사에서 만든 벽돌로 도쿄역 역사를 건설했기 때문에 도쿄역 역사가 도안된 것으로 보입니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메이지 시대, 다이쇼 시대에 정부 대장성 관료이자 제일국립은행 초대 총재를 지냈습니다. 생애 동안 약 500여 개 기업 설립에 관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대한제국 시대 경인철도합자회사와 경부철도주식회사 사장을 지내며 경인선과 경부선 부설권을 인수하여 부설한 이력이 있어 한반도를 침탈한 인물로 국내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위인으로 기릴만합니다만...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고 이 정도로 설명을 마칩니다. 관련해서 YTN 유튜브 방송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니 한 번 보시길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zoBAW2_b3o&t=1s

다음으로 5000엔권의 쓰다 우메코 (津田梅子, 1864~1929)입니다.

뒷면 도안에는 등나무꽃이 있습니다. 여성이라서 꽃나무를 도안으로 삼은 것 같습니다. 등나무꽃은 벚꽃과 함께 일본을 상징합니다. 일본 도치기 현에는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큰등나무꽃과 흰등나무꽃이 유명하여 세계의 관광객들을 모읍니다.

쓰다 우메코는 일본의 여성 교육 선구자로 일본의 여성 교육에 평생을 헌신한 인물입니다. 일본 최초의 여자 유학생으로서 6세에 도미, 11년간 수학하고 귀국해서 쓰다쥬쿠대학교(津田塾大学)를 설립했습니다.

당시 일본 여성의 이상적인 모습은 한국의 신사임당처럼 현모양처였습니다만, 쓰다 우메코는 이를 거부합니다.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것 자체가 당대의 일본 사회에서는 받아들여지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쓰다 우메코는 이러한 인습에 저항하여 근대적 여성상을 수립하고 여성의 자립과 남녀평등을 위해 평생을 헌신합니다.

한국에도 우다 쓰메코를 능가할 정도로 경이롭게 훌륭한, 세계적인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이태영 여사죠. 해외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는 위인이지만 한국에서는 저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5천원권에 신사임당을 대신해서 이태영 여사가 등장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쓰다 우메코는 그 외에도 영어 교육과 자유주의, 개성을 존중하는 교육에 힘써서 일본의 근대화와 자유민주주의의 기틀을 세우는 데에 기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1000엔권의 키타사토 시바사부로 (北里柴三郎, 1853~1931)입니다.

뒷면 도안에는 에도 시대 말기의 우키요에 화가인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목판화 그림 '가나가와 해변의 파도'가 있습니다. 그림만 보면 "일본"이 생각나는 유명한 그림이죠.

키타사토 시바사부로는 근대 일본 의학의 아버지, 일본 세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세균학자로 혈청 요법을 확립해 근대 의학의 초석을 닦았습니다. 파상풍균을 세계 최초로 순수배양하며 파상풍 치료법을 찾아내는 등 감염병 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여 제1회 노벨 생리학·의학상 최종 후보까지 선정됐습니다.

키타사토 시바사부로는 일본 국내에서 보다 해외에서 더 명망이 높습니다. 이는 키타사토 시바사부로가 매우 고지식해서 일본의 의학자들의 잘못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일일이 지적하고, 여느 의사들처럼 돈을 버는 데에 집착하지 않고 공익을 위해서 내무성 위생국 관리로 들어가는 등 혼자 잘난체한다고 하여 일본 의학계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가 노벨상을 놓친 이유도 일본 의학계의 시기 질투로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사정을 들기도 합니다. 그런 인물이 다시 일본 의학의 아버지로 일본 의학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일본 지폐 인물 도안의 소개는 이쯤 합니다. 저는 일본의 지폐 도안 인물을 보면 한국의 지폐 도안 인물을 비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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