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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박중훈 '비와 당신' : 파전처럼 지글거리던 시절

2024.07.06. 오후 11:05

#1

임종환의 '그냥 걸었어'에 이런 가사가 있다.

"정말이야 처음엔 그냥 걸었어

비도 오고 기분도 그렇고 해서"

헤이즈의 '비도 오고 그래서'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비도 오고 그래서 네 생각이 났어

생각이 나서 그래서 그랬던 거지"

왜 비만 오면 기분이 '그렇게' 되고, '네 생각이 나는' 걸까.

명곡 '비와 당신'을 들으며 비와 당신, 비와 소주, 비와 커피, 비와 파전 등 비와 짝이 되는 많은 것들을 차례로 떠올리며 '비멍'에 잠긴다.

#2

'비와 당신'이 태어난 출생지인 영화 '라디오스타' 얘기를 먼저 하자.

‘쌍팔년도’ 가수왕 최곤(박중훈)이 몰락을 거듭하다 이르게 된 강원도 영월에서 라디오 DJ를 하게 된다. 최곤의 곁에는 20년을 동고동락해온 매니저 박민수(안성기)가 있다.

비와 당신처럼, 현정화와 양영자처럼, 이문세와 이영훈처럼, 안성기와 박중훈은 환상의 짝이다.

'칠수와 만수'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을 통해 오랫동안 명콤비로 자리매김한 두 배우는 이 영화에서 또 한 번 환상의 티키타카를 선보인다.

관객들은 두 배우의 삶과 연륜이 풍성하게 빛난 이 영화를 보며 무장해제됐다.

관객들은 저마다의 왕년, 저마다의 비애와 갈등, 힘겨운 세상살이를 스크린에 투영하며 두 사람의 삶에 깊이 빠져들고 교감했다.

안성기가 버스에서 김밥 먹는 장면, 울음을 참으면서 모자 눌러쓰는 장면 등은 압권이었다.

그리고 영화에 흐른 80년대 감성 흠뻑 담은 노래 '비와 당신'은 그 다양한 감정선에 정점을 찍었다.

#3

영화 속 천문대 장면 중 안성기의 대사가 나온다.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거의 없어.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

영화 속 라디오 DJ 방송 장면 중엔 이 말을 되새기며 읍소하는 박중훈의 명대사가 나온다.

"저도 사람 한 명 찾겠습니다. 이름은 박민수. 나이 마흔여섯. 형, 민수형, 돌아와야지. 지금 장난 치는 거지? 천문대에서 별 볼 때 형이 얘기했지? 자기 혼자 빛나는 별 없다고. 와서 좀 비춰주라. 나도 반딱반딱 광 좀 내보자."

그리고 마침내 비 내리는 방송국 앞에 서 있는 최곤 앞에 민수가 돌아온다.

여느 때처럼 신중현의 '미인'을 에어기타와 함께 부르며 너스레를 떤 민수는 자신의 귀환을 반기는 최곤에게 다가가 우산을 멋들어지게 펼쳐 씌워준다.

우리는 내게 우산을 씌워줄 그 누군가를, 혹은 내가 기꺼이 우산을 씌워줄 그 누군가를 애타게 찾고 있다.

그리고 내 빛을 받아서 반사해 줄 사람을 찾는 험하고 기나긴 여정 또한 포기하지 않는다.

그 악착 같은 아웅다웅 속에 인생은 흐르고 비는 오고 별은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