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자승스님의 사망 사건은 불교계뿐 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 줬다. 소신공양(燒身供養)이라는 조계종의 공식 입장과는 달리 자승스님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과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조계종 총무원 기획국장을 지낸 진우스님은 지난해 12월, 오마이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승스님의 죽음은 소신공양이 아니라 명백한 방화 사건이며, 조계종 상층부는 혀 깨물고 반성해야 한다며 일갈했다.
자승스님 죽음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불교계가 ‘혀 깨물고 반성해야’ 할 정도의 위기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불법을 빙자하여 자기 권위를 내세우기에 연연하는가 하면 명예와 이익의 길에 구차히 헤매고 있습니다. 그리고 속진(俗塵)에 골몰한 채 도덕(道德)은 닦지 않고 호의호식만을 탐하고 있으니 출가한들 무슨 공덕이 있겠습니까?
윗글은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 교단의 쇄신 운동을 제창하면서 그 취지를 적은 『정혜결사문(定慧結社文)』의 일부다. 무려 800년 전의 일이다. 보조국사 지눌이 누구이던가? 그는 돈오점수(頓悟漸修)를 주장한 불교계의 고승이자 조계종의 창시자로 우리나라 불교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지눌이 활동한 시기는 고려 중기에 해당하며, 이 당시 불교는 점차 세속화되고 권력화하면서 그 폐해가 심각해지기 시작한 무렵이다. 바로 이때, 타락한 불교의 개혁을 강조하며 결사 운동을 주도한 것이 바로 지눌이었다. 지눌이 주창한 불교 개혁의 핵심은 석가모니의 정신을 따라 불경을 읽고 참선을 행하며, 실천하는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 가운데 하나가 현재 한국불교의 커다란 기둥으로 자리 잡은 조계종(曹溪宗)의 탄생이다.
800여 년 전, 지눌이 한탄해 마지않던 불교계의 혼란과 악습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른바 ‘조계종 사태’와 총무원장 선출을 둘러싼 각종 갈등과 혼란, 잊을 만하면 터지는 불교계 내부의 비리 문제는 사부대중(四部大衆)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이 밖에도 교단 내에서조차 차마 입에 담지 못할 각종 비리와 은처(隱妻) 문제가 불거지면서 한국 불교계는 또 다른 위기에 처하게 된다.
지난 2015년, 이른바 ‘용주사 사태’라고 불리는 문제로 불교계가 떠들썩했을 당시, 대한불교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가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먼저 그 내용을 조금 읽어 보자.
한국 선(禪)의 종가(宗家)를 표방하고 있는 용주사의 주지(住持)가 은처(隱妻) 의혹에 휩싸여 유전자 검사를 종용받고 있는 전대미문의 희극을 연출하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현실은 이 의혹의 당사자들을 정파적 이익과 호적상 독신임을 주장하며 끝까지 비호하고 있는 종단 집행부의 비승가적 태도이다. 의혹의 당사자는 이것이 사실이면 지금 즉시 승복을 벗고 집으로 돌아 가는 것이 가장과 아버지로서의 양심을 지키는 일이며, 만약 무고에 의한 명예훼손이라면 즉각적인 법적조치로 명예를 회복하고 제기자들을 무고죄로 죄값을 치르게 해야 할 것이다.
용주사의 주지인 성월스님이 숨겨 둔 처(隱妻)와 자식이 있고, 이를 알고도 묵인. 방조하는 조계종단을 비판하는 것이 이 성명서의 요지이다. 얼핏 보면 종단 내부의 계율 문제, 특히 은처(隱妻)를 비롯한 범계(犯戒)의 문제로만 한정해서 볼 수 있지만, 사실 수좌회가 비판한 핵심은 우리 불교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향해 있다.
지금 조계종은 종단 수뇌부를 중심으로 한 일부 범계자들이 화려한 대웅전의 단청 뒤에 숨어 은처, 도박, 절도, 간통, 술집 출입, 파당 형성, 나눠 먹기 등 온갖 말법의 폐풍을 연출하고 있다. 이러한 범계 행위가 만연하여 종단이 그 근간으로부터 흔들리고 있음에도, 감히 누가 주인이 되어 파사현정의 당간을 세우려고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불가(佛家)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은처, 도박, 절도, 간통, 파당 형성이라는 단어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범계, 아니 범죄 행위가 ‘대웅전 단청 뒤에 숨겨진 채’, 은밀하게, 그러나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 수좌회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불교계 내부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고개를 끄덕일 만한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