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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노숭, 종을 꾸짖다.

2024.07.13. 오후 9:18

심노숭(沈魯崇)이라는 선비가 계셨다.

'아내의 무덤에 나무를 심으며'라는 수능특강에도 수록되어 있고 출제도 가끔되는, 그 글을 쓰신 어른이다.

1762년(영조 38)∼1837년(헌종 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태등(泰登), 호는 몽산거사(夢山居士)‧효전(孝田).

이 어른이 그렇게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긴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일화가 하나 있어서 아주 흥미롭다.

어느 날 비가 몹시 쏟아졌다.

종이 고하기를, 비가 많이 와서 '낙수'가 심합니다.

그 말을 듣고 이 어른이 그 종을 매우 꾸짖었다.

'낙수'라니.

사실 이 어른 부친의 함자가 '낙'자 '수'자였던 것이다.

물론 한자는 다르다.

부친의 함자는 '낙(樂)'자 '수(洙)'자였다.

그러나 설혹 한자가 다르더라도 음이 같거든

감히 어른의 함자를 함부로 입에 올리다니.

그래서 이 어른이 종을 꾸짖었던 것이다.

아마 늘 삼가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자랄 때에 어른께서 앉으시는 자리, 어른께서 쓰시는 물건에는 절대로 앉거나 손을 대지 말아야 한다고 배웠다.

아버지께서 아주 가끔 사용하시는 책상의 의자에도 우리들은 허락 없이 앉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께서 쓰시는 만년필 등과 같은 작은 물건들도

절대로 손을 대서는 안 되었다.

안방의 아랫목.

거기는 늘 비워 두어야 했다.

아침에 배달되는 신문.

아버지께서 펼쳐 보시기 전에는 그 누구도 볼 수 없었다.

설혹 아침에 못 보시고 그냥 출근을 하시더라도

우리는 저녁이 되고 밤이 되어

아버지께서 결국은 그 신문을 다 보시고 물려 주신 다음에야 볼 수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어른 앞에서 큰 소리 내면 안 되고

어른께서 들으시는데, 한숨 같은 거 쉬면 안 되고

어른께서 출타하시거나 귀가하실 때에, 자기 방에 그대로 있으면 안 되었다.

다 나가서 배웅을 해야 했고, 다 나가서 맞아 드려야 했다.

겸상을 해 본 적은 없다.

겸상은 할머니를 모시고 있어서 할머니와 아버지께서 하셨다.

어른들과는 다른 상에서 밥을 먹어도, 어른들께서 수저를 드시기 전에

우리가 먼저 숟가락을 드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특별히 무슨 의식이나 노력이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낙수'

감히 어른의 함자를 입에 담다니......

여하튼 심노숭, 이 어른의 일화가 가끔 떠오를 때가 있다.

우리는 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정말 시대가 다르다고 해서

그런 것들이 모두 무시되어도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효전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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