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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극단적인 상황에서 모드전환을 할 수 있는 마음의 근력 키워주기

2024.07.05. 오후 5:11

우리는 주변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를 종종 목격하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저렇게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또는 '극단적 선택의 배후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슨 음모가 있는 건 아닐까' 등등 다양한 생각을 한다. 우리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비합리적인 마음을 이해해지 못하고 있고, 이해하려는 노력 또한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남의 일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 주변에서 또는 우리 가족에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실존적 위협이다. 하지만, 우리는 극단적 선택을 이끄는 불합리한 마음에 대해서 아는 바가 하나도 없으면서 마치 우리에게는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하면서 강너머 불구경하는 자세를 취한다.

이제 우리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비합리적인 마음의 원리를 이해하고, 가족이나 지인들이 이런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예방적 대응조치를 취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극단적 선택에 대해서 나름의 종교적 신념과 철학적 관념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 이 글을 읽고 있는 이 순간만이라도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저자에게 잠시 귀를 기울여 주었으면 한다.

먼저, 비합리적인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인 우주의 세 가지 힘에 대해서 이해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동서양의 고대영적 전통에서는 창조의 신을 중심으로 유지의 신과 파괴의 신이 상호 균형을 맞추면서 우주의 질서가 유지된다는 믿어왔다. 인도의 힌두교는 창조의 신 브라흐마를 중심으로 유지의 신 비슈누(Vishnu)와 파괴의 신 쉬바(Shiva)의 삼신체제를 이루고 있다. 창조 → 유지 → 파괴가 순환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우주의 질서라고 본 것이다. 기독교도 형태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창조신인 유일신 야훼를 중심으로 극선이 그리스도와 극악인 사탄의 상호 보완적인 균형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근대에 들어와서 프로이트는 인간에게 '쾌락 충동'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쾌락충동은 니체의 '삶의 의지'나 쇼펜하우어의 '본능의 의지'와 같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명유지에 대한 본능이다. 우주의 모든 이치가 그러하듯이 생명유지 본능이 있으면 반대의 힘인 파괴 본능이 존재하게 되어있다. 프로이트는 말년에 인간에게는 쾌락 충동 이외에도 '죽음 충동'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자신의 기존입장에 수정을 가하지만 두 가지 충동 간의 연관관계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제 배경설명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검토된 사실들을 정리해 보자면, 인간은 합리적인 마음 상태에서는 생명유지를 위한 쾌락 충동이 존재하지만, 비합리적인 마음 상태에서는 파괴 본능의 하나인 죽음 충동을 지향한다는 사실이다. '합리적인 마음은 생존을 추구하고, 비합리적인 마음은 죽음을 지향한다.'라는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사람들의 일상은 대부분 합리적인 마음의 지배를 받고 있다. 합리적인 마음은 생존과 성공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애를 쓴다. 합리적인 마음에게 있어 죽음은 두려움과 공포 그 자체다. 현대인은 건강하고 오래 살기 위해 운동, 건강 보조식품, 건강검진 등에 필사적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존에 진심인 사람들이 아이러니하게도,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손쉽게 죽음을 선택한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 인간은 비합리적인 마음의 지배에 있을 때는 근원으로 돌아가거나 근원으로 돌려놓고 싶어 하는 강한 힘이 작동한다. 인간에게 근원은 창조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죽음을 통해 근원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살이고, 타인을 근원으로 돌려놓는 것이 살인행위이다.

즉, 자살과 살인은 비합리적인 마음이 만들어내는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거대한 힘이고 프로이트는 이를 죽음 충동으로 표현했다. 법정에서 살인자들의 최후진술을 들어보면, "그 순간 흥분해서 정신이 나간 것 같다"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합리적인 마음이 어떤 외부의 극단적인 자극에 의해 한 순간 비합리적인 마음으로 변하면서 대상을 근원(죽음)으로 돌려놓고자 하는 유혹에 빠진 것이다. 합리적인 마음 상태에 있을 때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행동이 비합리적인 마음이 지배할 때는 강력한 유혹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오디세우스를 유혹했던 사이렌의 참을 수없는 노랫소리처럼 말이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지인이 보내준 신문기사이다. 수능 만점을 받은 의대생이 건물 옥상에서 여자친구가 헤어지자는 말에 흥분해서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했다는 기사였다. '수능 만점의 의대생', '여자친구의 헤어지자는 말', '여러 차례'의 키워드를 주목해 보자. '수능 만점의 의대생' 키워드는 이 학생이 일상에서 얼마나 자기 절제력이 강하고, 열심히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증표이다.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수능 만점을 받으려면 피나는 노력을 해야만 가능하게 때문이다.

여자친구가 헤어지자는 말'의 키워드는 이 학생은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고, 진심으로 많이 좋아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렇게 평소에 열심히 살았고, 진정으로 많이 좋아한 자신의 여자친구를 여러 차례 흉기로 찌른 것이다. 합리적인 마음의 의도적 살인이라면 딱 한 번만 찌르면 된다. 그런데, 여러 번 찔렀다는 것은 제정신이 아니었고 비합리적 마음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기사를 보면, 우리 자녀도 언제든 이런 극단적인 상황과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 자녀는 문제없어라고 한다면,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튀어나오는 자녀의 비합리적인 마음과 마주해 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나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자녀는 합리적인 마음 상태일 때의 자녀이다. 비합리적인 마음 상태일 때의 자녀는 사춘기에 잠깐 맛보기 정도로 경험했을 뿐이다.

우리의 자녀도 신문기사의 학생과 같이 극단적인 상황과 마주하면, 동일하게 행동한다고 가정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비합리적인 마음에 사로잡히면 모든 걸 근원으로 돌려놓고자 하는 유혹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남녀의 사랑 문제는 현실에서 하나 될 수 없다면, 죽음을 통해 영원히 하나 되겠다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극단적인 상황에서 합리적인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모드 전환을 할 수 있으려면, 자녀에게 어떤 마음의 힘을 길러줘야 하는 걸까? 극단적인 상황은 한순간에 온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모드전환이 가능하려면 짧게라도 잠깐의 멈춤 상태, 즉 마음의 여백이 필요하다. 부모들이 자녀에게 이런 마음의 여백을 만들어줘야 한다. 잠깐의 멈춤 상태는 비합리적인 마음이 가속화되는 것을 막고 합리적인 마음이 극단적인 상황 속으로 비집고 들어올 수 있는 여유 공간을 만들어 준다.

먼저, 비합리적인 마음 상태에서는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강한 힘의 지배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시켜야 한다. 자녀가 비합리적인 마음 상태일 때, '아!! 내가 지금 비합리적인 마음 상태이구나. 이럴 때는 세이렌의 유혹을 받는다고 했지. 나도 오디세우스처럼 몸을 돛대에 묶어 놓아야겠네'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마음의 근력을 키우는 것을 두 단계로 나누어 생각해 보자. 극단적인 상황에서 비합리적인 마음에 빠지지 않은 방법과 비 합리적인 마음에 빠졌을 때, 자신의 몸을 돛대에 매는 방법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듯하다. 여기서는 평소에는 합리적인 마음 상태가 지속되는 사람에 대해서만 한정하고자 한다.

극단적인 상황에 대비한 마인드 컨트롤

일반적으로 극단적인 상황에 빠지는 경우는 무시당했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와 내 것을 빼앗겼다고 생각할 때이다. 무시당했다고 생각이 드는 경우도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상대는 나를 무시하지 않았는데 내가 무시당했다는 마음이 드는 경우와 상대가 실제로 무시하는 말과 행동을 한 경우를 나누어 볼 수 있다.

전자인 경우에는 자신의 결핍에 함몰되어 자존감이 심각하게 저하된 상태로, 자존감 회복을 위해 전문 상담 센터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자녀가 자존감 저하 상태라면 대화도 많이 나누고 보고, 자존감 회복에 심혈을 기울여줘야 한다. 자존감이 저하된 자녀는 관계, 학습, 성과 등 모든 일에서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자존감 회복에 최우선 목표를 두어야 한다.

후자는 경우에는 무시하고 잘 넘어갈 수 있도록 지도해 주면 된다. 남을 무시하는 사람은 별 볼일 없는 수준의 사람이다. 이런 사람의 말에 휘둘릴 이유가 없다. 이런 점을 잘 설명해 주고, 부정적인 기운을 불러오는 사람들과는 관계를 정리하도록 안내해 주면 될 것 같다.

전자이건 후자이건 간에 부모는 타인의 반응에 자신의 미래를 맡기면 안 되다는 의식을 만들어줘야 한다.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타인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타인의 평가에 냉정하게 반응하는 게 쉬운 것은 아니지만, 이런 이야기를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스미도록 자주 들려주면, 자녀가 비합리적인 마음에 빠지는 것을 막거나 지연시켜 줄 수 있다.

비합리적인 마음 상태에서 자기 통제

비합리적인 마음 상태에 빠지게 되고, 이런 비합리적인 마음 상태가 지속되면 위험해진다. 잠깐의 여유 공간을 만들고, 이를 마중물 삼아서 즉시 합리적인 마음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이 상태는 영화 등에서 자주 보게 되는 선과 악의 싸움과 다를 게 없다. 한쪽에서는 정신 차려야 한다고, 다른 한쪽에서는 근원(죽음과 파괴)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속삭인다.

비합리적 마음 상태에 빠졌다는 이야기는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힘이 강해졌다는 이야기이다. 이때 우리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다름 아닌 현실 세상에 대한 애착일 것이다. 이런 애착의 근원은 가족애, 이타적인 사랑, 믿음과 신뢰 등을 통해 만들어지는 자신을 가치 있게 여기는 자존감과 세상에 대한 희망이다. 이런 힘만이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강한 마음에 잠깐의 여유 공간을 만들어 준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애착의 세 가지 근원적 마음은 부모가 지금도 자녀에게 베풀고 있는 마음이다. 그렇지 않은가? 가족애, 이타적인 사랑, 믿음과 신뢰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부모들이 이런 마음과 사랑을 자녀에게 온전하게 표현하고 전해주지 못한다는 게 문제이다. 평소에 부모 마음속에 있는 자녀에 대한 사랑을 잘 표현하고 온전히 전해주자.

자녀가 바라는 것은 성공한 아버지도 아니고, 돈 많이 주는 어머니도 아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사랑과 진솔한 마음, 그리고 자녀에 대한 믿음을 필요로 한다. 모범생 자녀가 별문제 없겠지 하는 마음을 접어두고, 다시 한번 자녀들을 잘 살펴보자. 망아지처럼 날뛰고 반항하는 자녀보다 모범생 자녀가 더욱 위험할 수 있다. 평소에 자녀와 대화를 나누면서 자녀에게 부모의 사랑과 믿음을 느끼게 해 주자. "세상 모두가 우리 딸(아들)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상황일지라도 아빠와 엄마는 언제나 너희 손을 잡아줄게"라는 믿음을 자녀에게 심어주어야 한다.

지속적으로 비합리적인 마음 상태가 지속되는 사람은 거의 대부분 부모와의 애착관계에 문제가 있다. 특히, 엄마와의 애착관계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예외는 없는 듯하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 보면 이렇게 생각해 봐도 좋을 듯하다. 현실 세계의 근원인 어머니(부모)에게 돌아갈 수 있는 통로를 잃어버린 사람은, 죽음과 파괴를 통해 더 큰 우주의 근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 같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모드전환을 할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은 부모의 사랑과 자녀에 대한 믿음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런 근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속적이고 꾸준히 사랑과 믿음을 주다 보면, 어느덧 단단한 마음의 근력이 만들어져 있을 것이다. 현명한 부모님들!! "회사일에 바쁘고 일상의 삶이 고단하겠지만, 잠깐의 짬을 내서 자녀와 진솔한 대화도 나누면서 사랑과 믿음을 전해주도록 해요. 부모 역할이 어디 쉬운 가요? 자녀는 부모의 성숙을 위한 신의 선물이라고 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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