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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송 일기] 달라진 삶에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

2024.07.17. 오후 6:10

이번 주에는 김민섭 작가님이 탁송을 하며 쓰신

<탁송 일기>로 찾아 뵐게요.

<대리사회>에서 대리운전자로서 타인의 욕망을 대리하는 삶에 대한 고찰을 보여주셨던 작가님이

탁송운전자로서 지내며 경험하고 느낀 것에 대해 쓴 글입니다.구독자님들과 함께 글을 읽을 수 있어 기쁩니다 😊

[달라진 삶에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

2023년 5월 23일 새벽, 나는 울산역 근처의 모텔에서 나와 울산 시내로 나가는 광역버스를 탔다. 오전 9시부터 울산 사회복지사협회의 연수강의를 해야 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다시 택시를 타면 늦지 않을 것이다. 전날에는 점심에 강릉에서 출발해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서울 서대문구의 가좌고등학교에서 고등학생들과 만났고, 오후 8시부터 9시 반까지는 서울 도봉구의 평택시 장학관이라는 학생 기숙사에서 대학생들과 만났고, 서울역에서 오후 10시 반 KTX를 타고 울산역으로 와서 하루 숙박했고, 이제 울산 중구 성안동에 있다는 사회복지사협회로 간다. 강릉-서울 서대문-서울 도봉구-울산, 에 이르는, 나름대로 여정이라 할 만한 이동을 한 셈이다. 그러나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최근 몇 년 간 나의 일상이란 대개 이러했다. 나를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연락이 오면 가서 만난다. 북토크, 북콘서트, 작가와의 만남, 인문학 강의 같은 것을 한다.

첫 책인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2015)를 썼던 때만 해도 누가 나를 이렇게 찾아주는 일이란 없었다. 1년 동안 10개 남짓의 도서관, 학교, 독서모임 등의 강의가 들어온 게 전부였다. 그 시절의 강의 요청이란 모두 감사했지만 그래도 더 기억에 남는 두 개가 있다. 서울 모 대학에서 열린 대학원 총학생회 세미나에서 30분 남짓의 발제를 제안받았다. 그것이 대학 바깥에 했던 나의 첫 외부 강의였다. 10여 개 대학교의 대학원 학생회장들이 와서 숙연한 표정으로 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의 사례비는 20만 원이었다. 강원도 횡성에서 열린 모 대학생 교회 단체의 연합수련회에 초청받은 게 두 번째 강의였다. 청년들에게 1시간쯤 나의 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다. 현장에서 5만 원짜리 3장을 받았다. 이 두 강의를 기억하는 것은 내가 그 사례비에 무척 감격했기 때문이다. 내가 어디에 가서 한두 시간 일하고 10만 원이 넘는 돈을 받을 수 있나. 그해에 파주 교하도서관에서 50만 원을 받았을 때는 감사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되었다. 이런 노동이 있어도 괜찮은 것인가. 교통비라든가 세금이라든가 기회비용 같은 걸 계산하는 일은 사치였던 한 시절이었다. 그런 건 조상님이 내 주시겠지.

출처: 유퀴즈온더블럭 153화 '내 손을 잡아' 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