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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시] 10. “아직도 하고 있냐”

2024.07.05. 오후 6:10

꿈과 현실에 대한 이야기… 친구 허벌에게

석사과정생 시절에 나는 페이스북에 가입했다. 박사과정 선배 S가 보낸 초대 메일에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응한 것이다. 막상 초대한 선배는 몇 번인가 근황을 올리는 듯하다가 곧 탈퇴했지만, 나는 공부하는 일부 자료를 올리거나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기록하는 용도로 종종 사용했다. 그러다가 SNS는 인생의 낭비다, 하는 누군가의 명언을 떠올릴 만한 일이 한 번쯤 벌어지고, 그러한 계기로 인해 계정을 닫는, 평범한 수순을 밟았다. 아마 별것 아닌 글에 대학원 선배 누군가가 반응했고, 술자리를 통해 행동을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계정을 닫거나 일부 공개로 전환했을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페이스북에 다시 접속한 것은, 당시 연재하던 지방시를 왠지 친구로 등록된 같은 처지의 대학원생들이 공유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실제로 내 글이 공유되고, 좋아요를 얻고, 아픈 공감의 댓글을 적당히 얻고 있었다. 특히 누군지 궁금해하는 글들이 많았다. 우린 예전부터 친구로 등록되어 있었어, 하며 쓰게 웃고 있는데 친구 요청이 한 통 도착했다. 연락이 끊긴 지 5년 정도 된 고등학교 친구, 내가 ‘허벌’이라고 부르던 녀석이었다. 성이 허씨였는데, 첫 만남 때부터 그냥 허벌이라고 부르면 되겠다 싶은 부담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반가워서 정신없이 수락 버튼을 누르고, 메시지를 보내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곧 통화에 들어갔다. 서른이 갓 넘어 소원했던 친구에게 연락이 오면 보통 ‘결혼’이나 ‘돌잔치’ 초대 같은 것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 친구는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 것이고 내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 소설을 쓰겠다고 항상 책을 가지고 다니며, 노트에 무언가 끄적였다. 쓰고 싶은 소재가 생기거나, 어떤 좋은 표현이 떠오르면 기록했다. 오답 노트나 단어 암기장 대신 습작 노트를 곁에 두며 소설을 쓰고 여러 종류의 습작을 했다. 입학할 때 문과 3등 안에 들었던 성적이 어느새 반에서 3등으로, 그리고 다시 쭉쭉 떨어졌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누구나 서울대를 꿈꾸겠으나, 나는 인문학 전공이라면 어디나 상관없겠다 싶었다. 중학교 때부터 이미 그렇게 마음먹고 있었고, 고1 때까지도 의대나 법대보다 인문계열의 합격선이 더 높으리라 막연히 생각했다. 내가 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지도 교수의 권유보다도 이미 나 스스로 생각하고 있던 바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데 나와 닮은 녀석들이 한 교실에 몇 있었다. 내 뒷자리에 앉은 C는 음악을 하겠다고 했는데, 항상 음표를 그리고 이런저런 코드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했다. 나를 부를 때 야 작가, 하고 불렀는 데 나는 그런 그가 좋았다. 한번은 나를 지역 청소년 문화센터에서 지원하는 자신의 밴드 공연에 초대해 다녀오기도 했다. 내게 작사를 부탁하기도 했는데, 뭔가 메탈한 음악이라고 하던가…… 내가 해줄 수 없는 일 같아 그만둔 기억도 있다. 허벌은 만화를 좋아해서 만화 책을 자주 보고 애니메이션 같은 것에 대해 잘 알았다. 그래서 만화를 그리겠다는 것 같더니 시 한 편을 읽고서는 갑자기 문학을 하겠다고 했다. 모교의 문학 교사인 정희성 시인이 자신의 대표 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직접 낭독해준 일이 있는데, 그 후 그는 문학이 가진 힘에 매료되었다. 허벌은 ‘orphan2000’이라는 아이디로 인터넷에 종종 습작을 올렸다. 이러한 친구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은 내색하지는 않아도 무척 감사한 일이었다. 그때는 정작 몰랐지만 시간이 흐르고 보니 서로를 지탱해주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고 추억 혹은 미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