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몬과 위메프에서 최근 불거진 정산 지연 사태의 책임을 따지면 2022년과 2023년 두 회사를 잇달아 인수한 큐텐에 올라가 닿는다. 티몬과 위메프는 2010년 설립 이래 한 번도 영업이익을 낸 적이 없지만 15년 가까이 매월 수백만 명이 접속해서 쇼핑을 즐기는 e커머스 플랫폼의 기능은 잘 수행했다. 회사가 돈을 벌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판매자들이 물건을 팔고 대금을 정산받는 플랫폼 구조는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산은 e커머스 플랫폼 유지의 핵심 기반인데 두 회사의 모기업 큐텐은 이것을 가볍게 여겼다.
큐텐의 창업자인 구영배 대표가 우리나라 e커머스 1세대 인물이라는 점은 그래서 아이러니하다. 그는 e커머스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구 대표는 인터파크에서 근무하다가 사내 벤처인 ‘구스닥’을 모태로 G마켓을 창업했다. 2009년 이베이에 G마켓을 매각한 뒤 2010년엔 이베이와 51대 49로 합작해 싱가포르에 지오시스를 설립한 뒤 동남아를 중심으로 하는 e커머스 플랫폼 ‘큐텐’을 내놓았다. G마켓 매각 계약서에 '10년간 한국에서 동일한 업종으로 경쟁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큐텐은 싱가포르를 비롯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중국 등 5개국에서 7개의 e커머스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2019년에는 인도의 오픈마켓 ‘샵클루스’도 인수했다. 국내에서는 해외 직구 사업을 펼쳤다. 이들 쇼핑몰 상품 배송을 위한 물류 자회사 ‘큐익스프레스’도 만들었다. 큐익스프레스는 11개국 19개 지역의 물류 거점을 활용해 배송을 지원한다.
경업 금지를 약속했기에 G마켓 매각 이후엔 해외에서 사업했지만 구 대표는 한국 복귀를 벼르고 있었다. 금지 기간이 끝나자 큐텐을 통해 국내 업체인 티몬과 인터파크, 위메프를 잇달아 인수했다. 이어 지난 2월 글로벌 플랫폼 위시를 인수하고 3월에는 애경그룹 AK플라자의 온라인 쇼핑몰 ‘AK몰’도 사들였다. 업계에서는 큐텐이 벌인 이런 일련의 공격적인 인수 전략이 문제의 단초가 됐다고 보고 있다. 특히 위시 인수에 1억7300만달러(약 2400억원)를 냈다. 구 대표가 잇달아 인수를 결정하자 업계에선 큐텐이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을 염두에 두고 거래 규모를 키우기 위해 취했던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큐텐의 자회사도 몸집이 커졌다. 지난달 기준 티몬과 위메프의 결제 추정액이 각각 8398억원, 3082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몸집을 불리기 위한 무리수는 화를 키웠다. 티몬은 제출 기한인 지난 4월까지도 감사보고서도 제출하지 못한 상황이다. 위메프는 지난해 1000억원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거래 규모 확대를 위해 공격적인 인수합병에 나섰지만, 돈의 흐름이 어느 한 곳에서 어긋나자 전체가 어그러지는 사태로 이어진 셈이다.
구 대표는 "전 세계의 판매자와 구매자를 잇는 ‘글로벌 e커머스 생태계’를 한국을 중심으로 완성할 것"이라고 말해 왔다. 그의 원대했던 구상이 최대 위기를 맞았다. 국내 자회사인 티몬과 위메프가 부실화하면서, 전 세계를 아우르는 e커머스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큐텐의 글로벌 목표까지 흔들리게 됐다.
김철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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