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타 크리스토프 저/용경식 역
워낙 수 차례 많은 분들께 호명되는 작품이어서 꼽지 말까 했는데, 저는 이 소설의 1부를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달콤한 로맨스 같은 해적판 제목으로 먼저 만났어요. ‘나를 반하게 하는 것은 별을 꿈꾸는 악동들의 눈빛이다’ 완전 본격 건전 성장소설 같잖아요. 그래서 착각하고 책을 덥석 사서 읽기 시작했네요. 첫 페이지부터 뭔가 전쟁 이후의 참상 같긴 한데 포화 속에서 꿈을 잃지 않고 자라나는 쌍둥이의 얘기겠지, 라는 믿음으로 시작해서 읽는 내내 펼쳐지는 치열하고도 사악한 생존투쟁을 지켜보며, 내상을 입고 후유증이 남았지요. 그런데 제멋대로의 믿음에 한방 맞았다는 배신감보다는, 치열한 소설을 쓰게 하는 힘이 내상에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안 것 같아요.
에밀 시오랑 저/김정숙 역
짧게 후려치는 듯한 시오랑의 냉소들을 마주하면, 세상에 남은 거라곤 환멸뿐이다 싶으면서도 동시에 정말 이렇게 살다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함께 들어요.
지그문트 바우만 저/이일수 역
모든 것이 녹아 사라진 다음 그 자리에 있는-흘러가는 나라는 존재는 무엇일까요? 규정된 개념이나 정착된 의미가 하나도 없고 그 어떤 약속도 주고받을 수 없는 세계를 살아내는 인간을 뒤돌아보게 합니다.
이승우 저
지금은 개정판으로 소장하고 있는데요, 대학 입학해서 학교 도서관에서 첫 번째로 대출한 소설로 기억합니다. 그 뒤로 뭔가에 홀리듯 『에리직톤의 초상』과 『가시나무 그늘』 등을 찾아 읽기 시작했어요. 첫 만남 첫 인상이란 소중하면서도 강렬한 거죠. 이 순간에도 너무 많은 좋은 책이 절판되고, 자본주의의 논리가 회전율을 올리는 식당처럼 서점과 출판사 그리고 독자를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이 책의 초판이 발간된 지 20년이 넘었다는 사실도 유의미합니다.
브루노 슐츠 저/정보라 역
『계피색 가게들』이라는, 지금은 절판된 책으로 먼저 만났는데요. 그가 오래 살아서 더 많은 작품을 남겼다면 어땠을까라는 가정만으로도 아찔하도록 환상적이고 아프도록 황홀합니다.
피터 위어
한창 세상 모든 게 싫어질 나이에, 요즘 말로 딱 중2 때겠죠, 동네 동시상영관에서 이천오백 원 주고 봤어요. 그 나이 때 자신이 억압받고 있지 않다고 느끼는 애들이 있을까요. 오래 울었던 것 같아요.
그전까지 보아온 블록버스터의 세계관에서는 외계인이 친구 아니면 침입자였어요. 이 영화에서는 외계인이 말 그대로 나 아닌 다른 것, 핍박 받고 격리되는 타자를 대유했지요. 표현 방식의 세련되었는지 여부를 떠나 그때의 충격과 전율을 잊을 수 없어요.
카츠시카 호쿠세이 원저/우라사와 나오키 그림
“원하기만 한다면 공부는 어디서든 할 수 있다네” 존경하는 교수의 말을 떠올리며 불의와 갑을 관계로 이루어진 대학교수직을 박차고 자기 논문을 지켜낸 주인공의 선택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진실과 거짓, 사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그것을 굳이 구획 지을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가닿았을 때의 카타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