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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의 짧은 소설] 기쁨 목걸이

<월간 채널예스> 2023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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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오늘 하루를 분석했습니다. 즐거운 순간이 [12번] 있었습니다. (2023.07.03)


"이게 그 유명한 목걸이야?"

나는 조그만 상자에 든 목걸이를 꺼내 허공에 들어 올렸다. 

"그렇다니까. 이거 구하느라 진짜 힘들었어."

나래가 생색을 냈다. 나는 목걸이를 앞뒤로 살펴보았다.

가는 금줄로 된 체인 끝에 손가락 한 마디만 한 하트 모양의 빨간 펜던트가 달려 있었다. 어른이 하고 다니기엔 다소 유치한 디자인이었다. 이게 과연 제 기능을 할 수 있을까.

"오늘부터 빼놓지 말고 하고 다녀. 어땠는지 내일 꼭 얘기해 주고."

나래가 목걸이를 빼앗더니 직접 내 목에 걸어주었다. 그러고는 씩 웃었다. 

"너 목이 길어서 잘 어울린다." 

나는 괜히 목 언저리를 만져보았다. 아직까지는 아무 느낌도 없었다.

'기쁨 목걸이'라는 이름의 이 목걸이는 보기엔 마법 소녀 만화에나 나올 법한 장난감처럼 생겼지만, 벌써 구매 대기자가 몇만 명을 넘어섰을 만큼 인기 있는 물건이었다. 만드는 법은 극비였고 모든 공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는 것만이 알려져 있는데, 물량이 풀릴 때마다 판매 사이트가 다운되는 일은 예사였고, 원래도 비싼 가격에 프리미엄이 붙어, 판매가의 서너 배로 거래되기도 한다고 들었다. 그러니 모르긴 몰라도 나래가 내 생일 선물로 이걸 사느라 무진장 애썼다는 말은 사실일 것이다.

이 목걸이의 기능은 이름만큼이나 단순했다. 착용자의 도파민 분비를 체크해 분비가 늘어나는 순간, 즉 기쁨을 느끼는 순간을 사진 찍듯 캡처해서 원할 때 머릿속에다 역재생해 주는 것. 내장 메모리가 적은 탓에 저장 기한은 하루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대신 인식 시스템은 아주 섬세하기로 유명했다. 스스로는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의 적은 도파민도 여지없이 잡아내어 저장하는 터라 역재생을 해보면 놀라는 일이 잦다고 했다.

뭐, 그렇다고 해도 나한테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러고 보니 정말로 오래되었다. 삶에 어떤 재미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 뭐 사람 사는 것이 다 똑같으니 남들이라고 해서 뭐가 그렇게 매일매일 재미있겠느냐마는 내 경우엔 그게 좀 심했다. 일상이 지루하다고 울부짖는 사람들도 자세히 뜯어보면 사소한 취미쯤은, 좋아하는 것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던데, 내겐 그런 게 하나도 없었다. 그저 아침에 일어나면 자동으로 세팅된 로봇처럼 회사로 갔고, 저녁이면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소파에 앉았다. 남들처럼 텔레비전 리모컨을 딸깍거리거나 유튜브, 넷플릭스를 돌아다니긴 했지만 딱히 뭔가를 보려는 마음은 아니었다. 그저 넘쳐나는 시간에 어떻게 맞서야 할지 모르겠기에, 무기력한 손가락이라도 놀려보지 않으면 도저히 그 시간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아서 하는 발악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서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잠이 왔고 또 똑같은 하루가 시작되곤 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제품 디자이너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직장에서 어느새 8년이나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고 그간 직급은 사원에서 주임, 대리를 거쳐 과장까지 올라갔지만, 늘어난 건 책임뿐, 연봉은 제자리에 일의 보람은 오히려 줄어들었달까. 애초부터 그다지 큰 꿈을 품고 입사한 회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학생 시절엔 나름 즐겁게 공부해 왔던 디자인이 이제는 주문하는 대로 찍어내는 공장이나 다름없이 변한 지 오래였다. 윗분들 입맛대로 로고는 최대한 큼직하게, 색깔은 무조건 화사하게. 어차피 소비자 취향보단 컨펌하는 상사들 취향에 맞추는 게 정답이니까. 아참, '레퍼런스'라는 그럴싸한 미명하에 유명 제품을 살짝 베껴 오는 센스도 잊으면 안 되지. 누군가는 일 머리가 생긴 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재미가 없기로는 이보다 더한 것이 없었다.

물론, 나라고 해서 즐거움을 찾아보려고 애쓰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이대로는 정말 안 되겠다 싶어 이런저런 것들을 해본 적도 있었다. 책을 읽어보겠답시고 팔자에도 없는 독서 모임을 쫓아다닌 적도 있었고, 소모임 애플리케이션을 깔아 동네 친목 모임이며 배드민턴 동호회 따위에 가입한 적도 있었다. 참, 운동을 하겠다며 퇴근 후 필라테스를 6개월이나 끊은 일도 있었군. 그러나 그럴 때마다 열의는 채 일주일을 가지 못했다. 집에 오면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어 소파에 늘어지기를 여러 번, 여기저기 핑계를 대어가며 잡아 놓은 약속을 취소하고 모임에서 슬그머니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나니, 그 짓도 이골이 나고 말았다. 도대체 남들은 어떻게 그렇게 부지런한 건지. 딱히 몸을 쓰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건만 퇴근하고 돌아오면 왜 그렇게도 파김치가 되는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뭔가를 시도할 에너지는 먹고 죽으려 해도 없었다.

그러니 도대체 삶의 기쁨은 어디에 있는 걸까.

별로 신뢰가 가진 않았지만, 어쨌든 오늘 아침엔 옷 속으로 기쁨 목걸이를 숨겨 착용하고 출근했다. 어쨌든 선물한 성의가 있으니까 오늘 어땠는지 정도는 들려줘야겠지.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출근길을 걸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귀에 이어폰을 하나씩 꽂은 직장인들의 물결에 섞여 나도 지하철에 올라탔다. 지하철이 역에 닿을 때까지 남들이 다 그러듯 나도 휴대폰을 뒤적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휴대폰에 집중하고 있어도 내릴 역은 놓치지 않지. 이제는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는 지하철역 출구를 빠져나가 회사로 걸었다. 매일 들르는 테이크아웃 커피점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전체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회의실에 모여 작업 스케줄이며 판매고에 관한 얘기를 주고받고 나니 밀린 일거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 식사는 쌀국수, 아니면 돈가스덮밥? 항상 식사를 같이하는 팀원들과 메신저를 주고받다 덮밥으로 정했다. 막내 직원을 미리 보내 줄을 서게 한 뒤 합류한 덕에 웨이팅 없이 식사를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밥을 먹은 뒤엔 햇볕을 쬐면서 회사 주변을 몇 바퀴 산책하다가 점심시간이 끝나기 일 분 전에 사무실로 복귀했다. 그러고는 오후 내내 말 그대로 일만 했다. 특별한 사건도, 재미있는 일도 없었다.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왔다 갔다 하며 그저 소처럼 묵묵하게 마우스를 놀렸을 뿐이었다.

그러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온 참이었으니, 기쁨 목걸이에 전혀 기대가 되지 않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옷을 훌렁훌렁 벗어놓고 화장부터 지운 뒤 소파에 앉았지만, 목걸이를 만지작대는 내 손은 누르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어차피 뭔가 있다면 목걸이가 재생해 주겠지만, 오늘 하루를 돌이켜 생각해 보니 도리어 평소보다 더 재미없는 일상을 보낸 듯해 도저히 재생할 만한 무엇이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래의 얼굴을 떠올렸다. 먼저 말하진 않았지만 분명 목걸이 착용 후기를 들려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거였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소파에 깊숙이 기대앉았다. 눈을 감은 채 목걸이의 옆면을 손톱으로 꾹 눌렀다. 삑— 소리와 함께 감은 눈앞에 한 줄짜리 문장이 나타났다.

당신의 오늘 하루를 분석했습니다. 즐거운 순간이 [12번] 있었습니다.

뭐, 이렇게 많았다고? 놀라기도 전에 영상이 재생되었다. 첫 번째 영상은 아침이었다. 샤워를 하고 나온 뒤인 것 같았다. 나는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거울을 보고 있었는데, 손바닥 위에는 새하얀 보디로션이 듬뿍 얹어져 있었다. 그걸 보니 그제야 기억이 났다. 새로 산 보디로션을 오늘 아침에 처음 발랐었지. 좋아하는 브랜드가 세일을 하기에 아무 생각 없이 주문한 것이었는데 의외로 발림성도 좋고 향도 마음에 쏙 들어 흡족했었다. 로션을 듬뿍 바르고 매끈매끈한 몸으로 욕실을 나왔던 그 순간. 그래, 이때는 좀 기분이 좋긴 했었지.

영상이 바뀌었다. 아마도 출근길인 듯했다. 오늘 출근길에 무슨 기쁜 일이 있었나? 생각하기도 전에 알 수 있었다.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 길, 매일 지나는 그 골목에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오래된 빌라가 여러 채 있었는데, 개중 한 집의 담장에 꽃이 만개한 능소화 덩굴이 흐드러지게 늘어져 있었다. 여름을 그대로 담아놓은 것 같은 그 아름다운 주황빛에 매번 마음을 빼앗기곤 했었다. 오늘도 그걸 보며 지났었구나. 무미건조하다고 생각했던 출근길에도 이런 예쁜 색깔이 있었구나.

그다음 장면에서 나는 커피를 들고 있었다. 하긴 매일의 첫 커피 한 모금은 생명수이긴 하지. 무심코 빨대를 쭉 빨아올리면 크으, 온몸에 카페인이 쫙 퍼지며 잠시 동안이지만 피로가 화악 가시는 이 느낌.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은 아침 회의 시간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회의 때는 즐거운 일이 전혀 없었는데? 하지만 다음 장면을 보니 알 수 있었다. 옆자리에 앉았던 막내 직원이 책상 밑으로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건네준 노트, 거기엔 지금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는 대표님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그려져 있었지. 고개를 푹 숙이고 몰래 끅끅거렸던 기억이 났다. 그래 뭐, 이것도 기쁨이라면 기쁨이었지.

그리고 점심시간. 맛집 없기로 유명한 동네이지만, 그래도 그나마 가장 좋아하는 가게의 메인 메뉴인 김치돈가스덮밥의 첫 돈가스를 한 입 깨물었을 때. 배부르게 밥을 먹고 나왔을 때 가게 앞 골목길로 여름 햇살이 찬란하게 부서지고 있는 걸 보고, 팀원들과 "날씨가 좋다"며 한 마디씩 주고받곤 약속이나 한 듯 회사 근처 길목으로 산책을 하러 갔던 일. 매일 똑같은 일상이라고 생각했건만 목걸이가 재생해 주는 장면을 보니 나는 꽤나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래, 그때 누군가 인터넷에서 봤다며 웃긴 얘기를 해주었었지. 덕분에 사무실에 돌아올 때까지도 배를 잡고 웃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오후 시간. 묵묵히 일만 했다고 생각했던 이때도 기쁜 순간은 있었다. 윗선에서 별로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지 않다고 여겨져 올리면서도 찝찝했던 제품 시안들이 의외로 반응이 좋다는 귀띔을 들었을 때.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동시에 돌리니 버티지 못하고 회색 화면을 띄우며 뻗어버렸던 고물 컴퓨터가 갑자기 기적처럼 제정신을 차렸을 때. 탕비실에 갔다가 다 떨어져 있던 얼음을 누군가 잔뜩 얼려놓은 걸 발견했을 때. 물론 뛸 듯이 기뻐 발을 동동 구를 만큼의 일들은 아니었지만 막상 다시 재생시켜 보니 모두가 입가에 미소 정도는 띄울 수 있을 만한 사건들이었다. 

그래, 오늘 이런 일들이 있었지.

장면이 바뀌어 퇴근길이었다. 지하철역 안, 개찰구 옆 작은 꽃가게에서 프리지어 꽃다발을 꺼내놓고 팔고 있는 것을 보았다. 줄 사람도 꽂아둘 곳도 없지만 한 다발 사볼까 싶을 만큼 탐스러웠고, 결국 사진 않았지만 눈요기를 한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향이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의 골목길. 열기가 서서히 식어가는 여름 저녁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걷다 놀이터에서 소리를 지르며 노는 아이들을 보았다. 뭐가 그렇게도 재미있을까, 나도 저러고 놀았던 적이 있었겠지. 경찰과 도둑, 탈출, 얼음땡 같은 어렸을 적 하고 놀던 놀이들을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좋았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바로 몇 분 전의 일이었다. 소파에 앉아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던 순간. 나는 이 목걸이를 목에 걸어주었던 나래를 떠올리고 있었다. 사는 게 재미없어 미치겠다는 친구를 위해 이걸 구하느라 애썼을 나래. 씨익 웃던 나래의 얼굴을 떠올리던 때. 그래, 나는 조금 행복했었던 것 같다.

이윽고 영상이 꺼졌다. 나는 눈을 떴다. 소파에 앉아 있는 나는 그대로였지만 뭔가 새롭게 느껴졌다. 오늘이 이렇게 기쁜 일로 가득 찬 하루였었나.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누구에게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살짝 민망하기도 했다. 나는 뒷머리를 긁적거리다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휴대폰을 가져와 나래에게 메시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길게 쓴 메시지를 전부 지워버리고는, 대신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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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유리(소설가)

소설가. 식물과 고양이를 사랑하고 싱그러운 기운이 가득한 소설을 쓴다. 문학 플랫폼 <던전>의 운영진으로 활동했고 『괴담』, 『인어의 걸음마』에 표제작을 수록하는 등 여러 SF 앤솔러지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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